
필자는 헌책방 등에서 초등학교 3, 4학년 수준의 영어책을 구해 하루 15분 동안 소리 내어 읽을 것을 권한다.
필자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소리 내어 영어책 읽기를 권하면서 아르카디 레오쿰(Arkady Leokum)이 지은 ‘The Big Book of Tell Me Why’를 추천한다. 623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세 권이 하나로 합쳐져 있고, 이야기 하나가 1~2쪽 분량이라 아침 15분간 소리 내어 읽기에 적합하다. 주로 과학 이야기를 다루면서 초등학교 3, 4학년 수준의 표현을 사용해 문답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100권 읽기에 도전하자
영어 공부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상황영어’부터 자연학습해야 한다. 영어는 말소리를 통해 의미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맑은 유리와 같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는 ‘보이지 않고’ 의미만 오고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일상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드물기 때문에 대신 소리 내어 책읽기를 권하는 것이다. 영어를 상대방에게 말하듯 들려주면서 자기 소리를 듣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경험 교육의 핵심이고 경험 교육은 영어를 배우는 최선책이자 자연학습법의 하나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영어 관련 과외 활동을 많이 했다. 실제 영어로 말해야 하는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영어로만 진행하는 수요일 점심시간의 기독학생회, 매주 영어로만 진행하는 토론 모임, 영자신문 읽기 클럽 등 끊임없이 영어 사용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학과 군대, 대학원을 거쳐 영어가 필요한 직장으로 자리를 몇 번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책들을 저울로 달아 파는 가게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다른 곳에서 그와 비슷한 가게를 또 발견했다. 그때부터 책더미를 뒤지면서 필요한 책을 사 모으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됐다. 몇 권씩 모은 책이 족히 500권은 넘었던 것 같다.
그때 책 ‘100권 읽기’ 계획을 세웠다. 6개월 안에 100권을 읽기로 작심했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밤을 새워서 읽기도 해 하루나 이틀이면 대개 한 권을 떼버렸다. 1973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였다. 거의 모두가 페이퍼백 픽션이었다.
책 100권 읽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어 말하기와 듣기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한 권을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서 영어 말소리에 충분히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글이다. 영어 글에 익숙해지려면 일상적인 영어 책을 100권 정도 독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과 말은 상당히 다르다. 글쓰기는 말하기보다 생각을 몇 번이고 다듬어서 표현한 결과물이다. 글의 짜임이 생각의 짜임을 반영한다. 글을 쓰려면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말로 쓰는 이 글도 몇 번째 고쳐 쓰는지 모른다.
목표는 ‘교육영어’다. 글로 적힌 영어 문장은 일상의 여러 상황에서 한두 마디 주고받는 ‘상황영어’와는 다르다. 정연한 생각을 표현하며, 길이도 길다. 그 생각 속에는 깊고 넓게 언어로 생각하는 언어사고의 너울거림과 출렁임이 있다.
생각과 지식을 담은 긴 말과 긴 글을 iBT TOEFL에서 평가한다. 언어사고가 발달해야 긴 글을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고, 책 100권 읽기를 통해 일정 수준의 언어사고력을 갖출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부분에 줄을 긋고, 맨 뒷장 공백에 해당 쪽을 적어놓는다. 한 권을 떼면 권당 수십 개의 주요 부분이 추려진다. 어휘나 어구나 특정 의미 구성에 매력을 느끼면 읽는 도중 즉시 그 부분에 줄을 긋고 뒷장에 쪽 번호를 써넣는다.
중요한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어떤 단어의 의미를 특별히 정의하는 부분, 대화나 서술의 전개 속에서 사물의 종류를 새로 나누거나 거기에 색다른 조명을 하는 부분을 예로 들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해 새로운 원리를 깨닫게 하는 부분과 평범한 사실을 뚫고 추론의 근거를 제시하는 부분도 중요하다.
당시 읽은 책 중에는 속독법을 다룬 것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폴 리디(Paul D. Leedy)의 ‘A Key to Better Reading’도 있다. 이 책 맨 뒤에는 국제독서학회(International Reading Association, IRA)의 윤리강령(Code of Ethics)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IRA의 주소도 나와 있었다. 너무나 반갑고 가슴 설레는 정보였다. 이 정보를 놓칠세라 필자는 2주일에 걸쳐 계획을 세우고, 다시 1주일에 걸쳐 IRA에 편지를 썼다. 중고등학교 시절 펜팔에게 편지를 쓴 뒤로는 영어로 처음 편지를 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