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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남북정상회담 동행기

자부심, 부끄러움 솔직하게 드러낸 ‘유연한 北’

  • 신경림 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skyungrim@paran.com

신경림 시인의 남북정상회담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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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남북정상회담 동행기

북한의 아리랑 공연 모습. 이 공연은 인간이 어디까지 자기희생적, 집단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개성에 공동 공연장을 만들자는 주장도 우리 쪽에서 나왔고, 남쪽에는 없는 백두산의 소나무 목재를 남쪽의 고궁을 보수하는 데 쓰게끔 해달라는 주장도 나왔다.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이날 좌담회는 상호 의견 제시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정치적 해결이 우선돼야 할 사항이 많았기 때문이다.

좌담회가 끝난 뒤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을 참관했는데, 젊은이들이 기예를 열심히 닦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600석의 대강당이었는데 마침 교향악단의 연주와 소프라노, 알토의 실연이 있었다. 모두들 기능에서는 떨어지는 데가 없어 보였지만, 아무래도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예술의 한계 같은 것은 극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느낌은 오후에 만수대 창작사를 방문, 여러 공훈 화가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서도 받았는데, 한쪽 벽에 붙은 김정일 위원장의 훈시가 북쪽 예술의 성격과 한계를 잘 말해주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화폭에 등장시킨 모든 사람이 수령님을 우러러보는 것으로 하여야 하며, 군중을 수령님의 영상 뒤에 비치하여야 합니다.”

易地思之 발상 필요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 한 점심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잠시 참석했다. 그 동안의 경위를 얘기하는 그는 피로한 빛이 역력했다. 아직도 불신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는데, 말하자면 북쪽이 좀체 남쪽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악한 국제환경 속에서 생존하자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면서, 그렇더라도 우리는 화해와 협력의 끈을 놓지 말고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힘과 대결의 시대를 극복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발상이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예컨대 북쪽에서는 남쪽에서 말하는, 남쪽의 자본과 북쪽의 저렴한 임금이 결합되는 경제협력 같은 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어서다. 또 우리가 예사롭게 말하는 ‘개혁’ ‘개방’이라는 단어에도 반감을 갖는다. 이 말 뒤에는 흡수통일에의 유혹이 있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경협이나 개혁 개방 같은 문제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해야 할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점심 뒤의 모란봉 산책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점심 먹으러 오는 차 안에서 누군가 평양까지 와서 그 유명한 모란봉을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면 말이 되겠느냐면서 안내원한테 식후 모란봉 산책을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평양에 여러 차례 온 적이 있는 한 수행원이 이런 일은 전에는 있을 수 없었다면서 이것을 북쪽이 많이 유연해진 증거로 들었다. 우산을 쓰고 오른, 늙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싼 모란봉의 을밀대에서는 대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지만, 그 건너의 아름다운 평양 거리는 안개에 가려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국보 유적 19호로 지정된 을밀대는 6세기경 고구려가 평양성을 축성하면서 내성(內城)의 장대(將臺)로 쌓은 것이라고 안내판에 씌어 있다. 또 을밀대에서는 바로 발 아래로 웅장한 영명사(永明寺)가 내려다보이는데, 31본산의 하나인 이 절은 대동강이 범람만 하면 제일 먼저 물이 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왜 굳이 그곳에다 절을 지었는지에 대한 안내원의 설명이 재미있다. 평양 사람들의 어려움을 제일 먼저 겪는다는 살신(殺身)의 정신이 이곳에다 절을 짓게 했다는 것이다.

이어 만수대 창작실을 방문해서 화가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관람했는데, 모두들 빼어난 솜씨의 화가로 보였다. 하지만 너무 사실에만 충실한 나머지 자신의 관점과 생각은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중공업관을 참관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라 할 아리랑 공연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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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skyungrim@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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