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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 되새길 때

‘한여름 밤의 악몽’ 대만 大정전이 주는 교훈

  • 최창근|대만 전문 저술가,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 caesare21@hanmail.net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 되새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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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만 가구 불 꺼진 대만’ vs ‘탈(脫)원전 꾀하는 한국’
  • ●文정부 新재생에너지 포트폴리오까지 대만과 똑같아
  • ●‘프레임’에 따라 ‘주장’만 하며 다투는 것도 닮은꼴
  • ●대만은 국민투표로 결정키로… “급할수록 돌아가야”
성탄 전야(前夜)! 1년 중 가장 낭만적인 밤, ‘God’란 별칭의 인공위성이 수명을 다해 지구로 떨어졌다. 파편은 도쿄(東京)와 그 일대로 튀었다. 이로 인해 초유의 대정전이 발생한다. 정전으로 도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다. ‘문명의 빛’이 사라진 도시는 적막강산이다. 교통신호 체계는 마비됐고 도로는 아수라장이다. 상점과 식당도 철시(撤市)했다. 복구 전망은 난망(難望)이다. 밤하늘 별빛만이 도쿄 하늘을 비춘다.

병원, 도로, 재즈바, 호텔, 엘리베이터 등 문명의 이기(利器)는 전기로 작동한다. 사람들이 의지할 것은 촛불뿐이다. 옹기종기 모여든 이들은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고, 문명의 빛이 가린 진실을 대면한다. 암흑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아픔, 걱정을 하나둘씩 꺼내 놓는다. ‘오늘은 성탄 전야니까’ 떠나버린 옛 애인을 그리워하는 남자, 말 못할 사연을 가진 아기를 배속에 품은 여자, 아내와 애인 사이에서 방황하는 샐러리맨, 남편과 결별을 생각하는 아내, 암 투병에 지쳐 삶을 포기하려는 모델, 직장 상관과 불륜에 빠진 여자….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는 이들은 ‘사랑’으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한다.



‘수출 대만’ 이끈 ‘값싼 에너지’

미나모토 다카시(源孝志)의 ‘대정전의 밤에(大停電の夜に)’ 이야기다. 작가는 ‘대정전’으로 암흑천지가 된 도쿄의 풍경을 낭만적이고 따스하게 그려 호평받았다. 다만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세계’에서 대정전의 밤은 로맨스물이 아니다. 잔혹 스릴러다.

2017년 8월 15일, 타이베이(臺北)는 적막에 싸였다. 도시를 밝히던 불빛은 사라졌고 교통신호가 사라진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다. 대만 경제 번영의 금자탑, 타이베이세계금융센터(타이베이 101) 조명도 꺼졌다. 북부 타이베이를 시작으로 중부 타이중(臺中), 남부 가오슝(高雄)까지 순차적으로 대만 섬 대부분이 어둠에 싸였다. 오후 4시 50분 시작된 정전 사태는 긴급복구가 완료된 밤 10시께까지 이어졌다. 정전으로 대만 전역 17개 직할시·현·시 828만 가구에 직·간접 피해가 발생했다. 이는 대만 전체 가구 수의 64%다. 피해도 줄을 지었다. 대만 전역에서 730명 이상이 승강기에 갇혀 공포의 시간을 보냈다.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먀오리(苗栗)현의 70대 부부는 정전 속에서 촛불을 켜고 공예 작업을 하던 중 촛불을 쓰러뜨려 40대 아들이 사망했다. 피해자가 지체장애인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전으로 냉방기도 일제히 가동을 멈췄다.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대의 대만, 그것도 여름 한복판에서 사람들은 폭염에 시달렸다. 사고 당일 타이베이의 수은주는 섭씨 36도를 가리켰다. 전날 낮 최고기온은 38도, 타이베이에서는 10일 연속 낮 최고기온 36도 이상의 무더위가 이어졌다. 대만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1897년 이래 120년 만의 무더위였다.

대만 사람들은 태풍과 지진으로 대정전 사태가 발생한 18년 전 ‘한여름 밤의 악몽’을 되새겼다. 1999년 태풍과 지지(集集) 대지진 여파로 대만 전역에 대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8월 대정전 사태가 1999년의 그것과 다른 점은 단 하나다. 전자가 인재(人災)라면 후자는 천재(天災)다.

대만 전역을 혼란에 빠뜨린 대정전은 실수에서 비롯됐다. 대만 북부 타오위안(桃園)시 다탄(大潭)화력발전소에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을 책임지는 국영 중국석유(中油, CPC) 직원이 조작 실수로 에어 밸브를 2분간 잠갔다. 연료 공급 중단으로 순차적으로 총 여섯 기, 438만kW 발전용량의 대만 최대 화력발전소 전체가 4시 51분께 멈춰 섰다. 비상사태 속에서 발전소 운영을 책임진 대만전력공사(TPC)는 6시부터 순차 제한 송전 조치를 취했다. 237만 가구를 시작으로 195만 가구, 236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정전된 5시간 동안 대만 사람들은 불편과 고통에 시달렸다. 이는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다.



대만 “2025년 완전 탈핵(脫核)”

대정전 사태가 인재인 다른 이유는 경제부·대만전력공사 등 관계 당국의 에너지 수급정책 실패가 빚은 일이기 때문이다. 역대 최장의 ‘살인적’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은 무더위 속에서 전력 예비율은 지속적으로 위험수치를 기록했다. 사고 전날 전력예비율이 3.17%였다. 사실 전력 예비율은 지속적으로 경보음을 울렸다. 예비율 6% 미만의 ‘전력수급 주의단계’ 발령일수는 2013년 연간 1일에 그치던 것이 2014년 9일, 2015년 33일, 2016년 80일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2016년 10월에는 예비율이 사상 최저치인 1.62%를 기록했다. 어떤 이유를 대든 관계 당국은 에너지 수급 조절에 실패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국가 배전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었다.

문제를 더하는 것은 대만의 기후 사정이다. ‘늘 여름인 나라’라는 뜻의 상하국(常夏國) 대만의 여름은 빨리 찾아온다. 냉방기 사용량 수치도 비례해서 상승 그래프를 그린다. 사고 한 달 전인 6월 12일 대만 일부 지역 낮 최고기온이 섭씨 35도를 넘어서면서 전력 예비율이 3.52%에 그쳤다. 단 한 기의 발전소라도 가동 중단되면 ‘블랙아웃’을 피할 수 없는 위험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행정원 원자능위원회(原子能委員會)는 고육책으로 가동 중단 중이던 핑둥(屛東)현 마안산(馬鞍山) 원전 2호기 재가동을 승인했다. 이보다 3일 앞서 신베이(新北)시 궈성(國聖) 1호기도 터빈을 돌리기 시작했다. 탈원전 정책 기조에 반하는 조치였다. 그럼에도 평균 3%대의 예비율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대정전 사태가 인재 논란을 빚는 마지막 이유는 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다. 2017년 1월 입법원(立法院, 한국 국회에 해당)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핵심은 ‘2025년 원전 가동 중지와 완전 탈핵(脫核)’이다. 가동 중인 총 6기의 원전은 설계수명 만료 시점에 맞추어 차례로 가동을 완전 중단할 예정이다. 2012년, 2016년 대선 당시 민진당 핵심 선거공약이던 탈핵정책은 개정안 가결로 열매를 맺었다. 아시아 첫 ‘원전 제로(Zero)’ 국가 선언이라는 상징성도 더해졌다.


완공 직전 원전도 폐쇄

민진당 정부의 탈핵 정책 중 논란의 중심에는 수도 타이베이시 외곽의 신베이시 궁랴오(貢寮)구에 건설 중이던 제4기 원전 룽먼(龍門)이 있다. 1999년 3월 공식 기공 후, 2014년 98% 공정률로 완공·시험운용을 앞둔 원전은 잠정 폐쇄 상태다. 부지 매입 작업부터 헤아리면 20년 넘는 공기(工期)에 공사비용만 3300억 신(新)타이완달러(11조3000억 원)가 소요된 제4기 원전의 운명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국민투표’가 운명을 가를 예정이다. 화력발전소 전환도 검토 중이라지만, 현재로선 흉물로 방치돼 있다.
제4기 룽먼 원전을 둘러싼 논란은 길고 복잡하다. ‘대표적 위험·혐오시설’인 원전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1980년대 시작됐다. ‘수출 대만’ 시대, ‘메이드인 타이완(Made in Taiwan)’ 제품 경쟁력과 직결된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만 정부는 ‘값싼 에너지’의 대명사인 원자력을 대안으로 택했다.

1980년 행정원 원자능위원회는 제1·2·3기 원전에 이어 제4기 원전 건설계획안을 입안했다. 건설 부지로 신베이시 궁랴오구를 택했다. 건설 예정지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비밀리에 추진되던 제4기 원전은 사업 계획 누설 후,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그 과정에서 1991년 분신(焚身)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대만 정부는 공사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10년 넘게 공사 중단과 재개-재중단의 혼란을 겪던 제4기 원전의 운명은 입법원으로 넘어갔다. 1996년 5월, 원전 반대론자인 민진당 입법위원 장쥔슝(張俊宏)은 ‘원자력발전소건설계획폐지안(廢止所有核能電廠興建計畫案)’을 발의했다. 폐지안은 입법원 1독회(讀會·법안 및 결의안 심사 첫 과정)를 통과했고 집권 국민당은 이에 반발했다. 원전건설폐지안은 재의결에 부쳐졌으나, 2년여 여야 간 공방전 끝에 부결됐다. 1999년 3월 17일, 제4기 원전은 공식적으로 첫 삽을 떴다.

이듬해 3월, 국민당의 분열 속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이 당선돼 입법원 내 공수 교대가 이뤄졌다. 집권 민진당과 야당이 된 국민당, 친민당(親民黨·국민당에서 분당한 보수정당)이 입법원에서 본격적으로 격돌한 첫 안건은 제4기 원전이었다. 천수이볜은 주무부처인 행정원 경제부의 보고서를 근거로 ‘원전 중단 지시’를 내렸다. 공군 총사령(참모총장)·국방부장을 역임한 국민당적의 행정원장(국무총리 해당) 탕페이(唐飛)는 총통의 일방 지시에 반발해 취임 5개월 만에 행정원장직을 사임했다. 그는 국민당 정부의 원전 건설 정책을 계승·추진하고자 했으나 반대에 부딪히자 행동으로 옮겼다.

국가원수 총통과 정부수반 행정원장 간 갈등은 입법원으로 파급됐다. 야당으로 전락했지만 원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 범람(泛藍·pan-blue)연합의 국민당·친민당·신당(新黨) 등은 정부의 원전 건설 중단 방침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급기야 야당 연합은 총통·부총통 파면안을 상정했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행정부 일방 독주에 제동을 건 사법원의 판결 끝에 2001년 1월, ‘원전 건설 재개 결의안’은 135대 70으로 입법원을 통과했다. 다음 달, 행정원장과 입법원장 간 합의로 제4기 원전 건설은 재개됐다. 이후 2008년 3월, 8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정부 집권기 동안 제4기 원전은 건설에 속도를 내 2011년 공정률 90%를 달성했다.



범람(泛藍) vs 범록(泛綠)

‘완공’을 향해 나아가던 제4기 원전 건설이 다시금 벽에 부딪힌 것은 2011년 3월이다. 3월 11일 동(東)일본을 강타한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의 여파는 대만으로도 밀려들었다. 안전제일·세계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던 일본 원전 신화(神話)는 자연의 힘 앞에 무너졌고 파장은 대만으로까지 전해졌다. 태풍·지진 다발지역이라는 일본과 유사한 자연조건을 가진 대만이기에 이웃나라 사건의 파장은 더 컸다. 대만 국민은 방송으로 전해지는 후쿠시마의 참상을 보면서 불안에 떨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민진당을 위시한 재야 세력은 반핵(反核)·탈원전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국민당 정부는 지지율 하락, 마잉주 총통의 도청 스캔들 등으로 국정 운영 동력을 잃었고, 2016년 대선·총선에서 정권 교체는 기정사실화됐다. 2015년 7월, 대만 정부는 제4기 원전 ‘봉인’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16년 대선·총선에서 압승하며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차이잉원(蔡英文) 정부는 지난 선거의 핵심 공약인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8년 후 완전 탈핵을 입법화했다.

8월 대정전 사태의 여진이 여전히 대만 섬을 흔들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리스광(李世光) 경제부장이 사임했다. 9월 4일 린취안(林全) 행정원장도 취임 1년 4개월여 만에 사실상 경질됐다. 대만전력공사는 최종 집계한 정전 피해 592만 가구의 하루치 전기요금 3억6000만 신타이완달러(135억 원) 감면을 발표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차이잉원 총통도 유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정전 사건은 추락을 거듭하는 그의 지지율 하락세에 일조했다. 입법원에서는 사건 책임을 두고 연일 여야 간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불똥, 한국으로 튀다  

불똥은 한국으로도 튀었다. 한국에서도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한국과 가장 닮은 나라로 꼽히는 대만의 대정전 사태가 논란에 기름을 부은 양상이다.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대만의 판박이기 때문이다. 2025년 에너지믹스를 화력 80%(천연가스 50%, 석탄 30%), 신재생에너지 20%로 재편하겠다고 밝힌 대만의 에너지 포트폴리오 로드맵과 구성비까지 똑같다. 정부·여당은 ‘탈원전 모범국가’로 대만 사례를 들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중 뜨거운 감자는 신고리 5·6호기다. 2016년 6월 현재 공정률 28.8%에서 공사는 잠정 중단 상태다. 이미 집행된 공사비 1조5693억 원, 계약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비용 9912억 원, 공사 중단 기간 유지비용 865억 원 등이 함몰비용으로 예상된다. 갈등으로 인한 기회비용까지 더한다면 함몰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7월 24일 출범한 공론화위원회가 3개월 활동 후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이 갈릴 예정이다.

공론화위원회 자체도 문제다. 출범 초부터 인적 구성·권한 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활동 개시 후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초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에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미래를 맡긴다고 발표했으나 위원회의 법적 성격과 이에 따른 정책 결정의 법적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자 입장을 번복했다. 중대 정책 결정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위원회에 부담을 떠넘기고 위원회는 다시 정부에 되받아넘기는 양상이다.


갈등 장기화, 법정 소송, 헌법 소원…

7월 27일 청와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 지속 여부와 관련해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한다”고 발표했다. 위원회 의견은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교통정리한 것이다. 다만 ‘참고’의 수준이 어디까지일지는 불명확하다. 활동 기한 3개월이 지나치게 짧다는 지적도 있다. 대만 제4기 원전을 둘러싼 정책변동 과정에는 20여 년이 소요됐다. 국가 백년지대계 중 하나인 에너지 정책을 행정부 단독으로 결정한다는 것도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대만은 헌법재판소를 겸하는 사법원의 판결 후 입법원 표결 과정을 거쳐 제4기 원전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2014년 봉인 처리된 원전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는 것도 2018년까지 실시하기로 한 국민투표다. 대의기구인 국회의 견해와 주권자인 국민의 직접 의사가 반영되는 것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지지율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게다가 현 정부는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소수(少數) 정부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졸속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대만의 전례를 볼 때 문재인 정부가 원전 건설 중단 결정을 내리면 정책 결정의 당위성을 둘러싼 갈등 장기화, 법정 소송, 나아가 헌법 소원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하여 이는 문재인 정부의 향후 국정 운영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해 지지율 하락에 일조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각자의 ‘프레임(frame)’에 기반을 두고 편을 갈라 싸우는 모양새도 기시감이 들게 한다. 대만 국민당 등 보수 색채 범람 진영은 경제성·효율성을 내세워 원전 가동을 찬성한다. 부존자원이 절대 부족하고 전체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대만 형편에 원전은 필요악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대체에너지원에 기반을 둔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민진당을 위시한 범록(泛綠·pan-green)파는 원전의 위험성·일본과 유사 사고 발생 가능성을 논거로 이에 반대한다. 섬나라 대만이 가진 자연조건을 활용하면 풍력·태양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원전 부족분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한국 상황도 오십보백보인 가운데 발생한 대만 대정전 사태는 원전을 둘러싸고 비슷한 고민을 안은 한국에서 시빗거리가 되었다. 시점도 절묘하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한국 정부는 “대만 대정전 사태는 탈원전 정책 탓이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물음표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전력 수급 예측 정교해야”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한국과 대만의 또 다른 논쟁거리는 전기요금 문제다. 계산식에 따라 달라지지만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은 필연이다. 완공 직전 제4기 원전을 포기하면서 대만전력공사는 부채 93억 달러를 떠안았다. 대만 정부는 이를 전기요금 인상으로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소비자의 지불 의사다. 2017년 6월 국민당 싱크탱크 국가정책연구재단이 대만 국민 10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2.6%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더 높은 전기요금을 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2.3%는 전기요금 인상을 감수하면서도 원전 폐기 정책을 지지했다. 전기요금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 반대 의사 비율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 추계에 따르면 탈원전 후 연간 가구당 추가 부담 금액은 8367원 선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2022년까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야권에서는 독일·일본 등의 사례를 들어 20~30%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탈원전을 둘러싼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선 한국에서도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질 경우 탈원전에 부정적 여론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조심스레 전망할 수 있다. 이 역시 추후 문재인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차이잉원 정부는 대정전 사태 후에도 ‘2025년 완전 탈핵’ 목표는 변함없다고 밝힌다. 정전의 원인은 단순 조작 실수였을 뿐이라고도 한다. 불의의 사고일 뿐, 정책 실패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만을 벤치마킹해 탈핵 정책을 추진 중인 문재인 정부도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십분 이해해 받아들인다 해도 대정전 사태와 이로 인한 직·간접 피해가 발생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도 수급 예측이 빗나가 전력 부족 사태가 온다면 대정전은 ‘오래된 미래’일 수도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각자의 입장에 기반을 둔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가 필요하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최창근
● 1983년 경남 고성 출생
●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대만 국립정치대 석사(커뮤니케이션학)   
● 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원, ‘월간중앙’ 타이베이 통신원
● 現 한국외국어대 행정학 박사과정, 동아시아학통섭포럼 총무이사
● 저서 : ‘대만 :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 ‘대만 :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타이베이 :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 ‘가희 덩리쥔 : 아시아의 밤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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