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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앞둔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89년 학생들 요구로 교수 임용… 이제 ‘부르주아 서울대’는 마르크스를 버릴 것인가”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정년퇴임 앞둔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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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앞둔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생각했을 때, 주류 경제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주류 경제학에서는 시장이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고 모든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공황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현상이라고 가르치죠. 하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은 자본주의에서는 공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공황에 관한 연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에 돌아가서가 문제였죠. 마르크스를 공부했다고 하면 한국에서 받아주는 데가 없을 텐데…. 그때 아내가 ‘이왕 공부하는 거, 좋아하는 걸 연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줬기에 마르크스 경제학에 몰두할 수 있었어요.”

그가 신세진 사람이 또 있다.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이다. 김 교수는 외환은행 조사부에서 일하다 재무부로 1년여 파견을 가 있었는데, 그때 재무부 이재국장이 이용만씨였다. 이 전 장관은 그에게 런던에 갈 기회를 주고, 통일혁명당 사건(1968년 신영복 당시 육군사관학교 교수로부터 북한 서적 2권을 빌려 읽은 혐의로 체포됐으나 기소유예처분됨)에 연루된 탓에 여권 발급이 안 되자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담판을 짓고 여권을 받아줬다. 김 교수가 중·고등학교 시절 테니스 선수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재무부에서 테니스 강습을 했는데, 그때 매일 아침 이 전 장관과 테니스를 치고 같은 차로 출근한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에 관해 일본과 유럽의 경제학자들이 잘못 해석한 측면을 지적하고,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은 이윤율 저하경향 법칙을 제대로 이해할 때 올바로 확립된다는 내용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논문 제목은 ‘Theories of Economic Crises: A Critical Appraisal of Some Japanese and European Reformulation.’ 원래 맨 앞에 ‘The Marxist’가 붙어 있었는데, 논문 심사를 목전에 두고 지도교수와 상의한 끝에 수정했다. 귀국했을 때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김 교수는 한동안 사람들이 뭘 전공했냐고 물으면, ‘경제학사’라고 대답하곤 했다.

“나, 마르크스주의자 맞아요”

▼ 논문 제목을 바꾼 건 현실과의 타협인가요.



“타협이라기보다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으니까, 마르크스 공부했다고 하면 취직이 안 될 테니까, 지도교수와 상의해서 논문 제목을 바꾼 거지요.”

▼ 얼마 전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니까, 마르크스주의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셨더군요. 마르크스 경제학을 연구하는 것과, 실천적 운동가로서 마르크스주의자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전자는 마르크스를 연구해서 마르크스의 분석 방법에 따라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현실운동을 하는 건데, 그 운동이라는 게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지요. 나는 사실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사회로 넘어가는 방법이 프롤레타리아 혁명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의 자본주의 현실을 자꾸 개혁하면, 그게 축적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을 계속 하고 있으니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맞지요.”

김 교수는 마르크스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의 학술문화제 ‘맑스꼬뮤날레’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여름, 김수행 교수가 쓴 맑스꼬뮤날레 초대글에는 ‘자본주의를 타도합시다’라고 씌어 있다. 자본주의를 고쳐 나가는 것과 자본주의 타도는 분명 다르지 않은가.

“궁극적으로 타도될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자본주의 아닌 새로운 사회로 넘어가려면 자본주의는 타도돼야 하죠. 하지만 무력이나 봉기에 의해 노동자계급이 헤게모니를 잡는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붕괴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회적·경제적 혁명이라는 건 긴 이행기간이 필요합니다. 재벌이나 자본가가 헤게모니를 놓지 않고는 새로운 사회로 넘어갈 수 없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가 타도돼야 한다는 얘기죠.”

▼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방식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는데요.

“자본주의를 어떻게 타도해야 한다든가,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해야 한다는 데까지 마르크스 연구가 미치지 않았어요. 그걸 연구한 건 레닌이죠. 실제로 혁명을 했으니까. 자본주의적 잔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은 레닌이 연구를 많이 했죠. 그런 점에서 앞으로 연구할 게 많아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 것인가, 평화적으로 넘어가는 방법이 있는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마르크스 이론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까지만 유용한 것 아닌가요.

“분석만 하는 것으로는 모자랍니다. 새로운 사회로 가려면 자본주의체제가 무너져야 하죠. 물론 무력이나 봉기만이 방법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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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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