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스페인 말라가

Costa del Sol, 안달루시아의 태양 한 줄기

  • 입력2008-01-07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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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말라가

    프랑스 쪽에서 바라본 지중해 옥색 바다는 마치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스페인 남부의 해안 도시 말라가, 시내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쓴다. 창 밖으로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뿌옇게 흐려진 차창 너머 지중해의 도시 풍경이 조금은 을씨년스럽게, 조금은 몽환적으로 다가온다. 안달루시아를 통틀어 두 번째로 크다는 대도시여서일까. 버스는 꽤 세련된 분위기의 사람들로 붐빈다. 뒤에 앉은 남자에게 알카사바로 가는 길을 묻자 자기가 내리는 정류장의 다음이라며 이따가 알려주겠다고 한다. 그의 작은 친절에 대한 고마움으로 내 마음속에서 도시 전체의 인상이 바뀌는 것을 느끼는 순간, 인간은 그리 이성적인 동물이 못 된다는 생각을 새삼 확인한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 현지인들과의 이런 작은 만남인 것을 생각하면, 사람과의 만남이 그 장소에 대해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것임은 틀림없지 않은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내다보는 말라가는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멀리 보이는 하늘에는 벌써 구름 사이로 햇살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친절한 남자가 다음 정류장을 알려주고 옆에 서 있던 다른 아가씨가 또 알려주어 알카사바 앞 정류장에 쉽게 내렸다.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쳤다. 회색 구름들은 서서히 다른 길을 재촉한다. 지중해 안달루시아의 정열적인 태양이 ‘Costa del Sol’, 태양의 해변에 당도한 방문객을 환영한다. 당신에게도 안달루시아의 태양 한 줄기를 보낸다.

    스페인 말라가

    히브랄파로 성에서는 말라가의 전경과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온다.(좌) 한겨울에도 야자수가 울창한 말라가의 지중해성 기후는 계절을 잊게 한다.(우)



    스페인 말라가

    열대 식물들이 늘어선 말라가 거리를 여유롭게 거니는 시민들.(좌) 무엇으로도 깨기 어려울 듯한 알카사바의 성벽.(우)

    스페인 말라가

    피카소의 고향답게 거리 곳곳에는 그의 그림이 걸려 있다.(좌) 햇빛이 풍부한 안달루시아에는 이국적인 과일과 채소가 많다.(우)

    카르타고인, 로마인, 무어인

    적색의 견고한 성채, 알카사바가 저 멀리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장식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어 오로지 외적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만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위용을 과시하며 언덕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을 보니 ‘난공불락’이라는 말의 이미지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아 든든하게 여겨질 정도다.



    스페인 말라가

    알카사바의 층층이 쌓인 벽돌은 견고함의 상징마냥 듬직하다.

    알카사바를 지나면 산 위에 히브랄파로 성이 있어 우선 그곳에 들르고 내려오는 길에 알카사바를 찾기로 했다. 그런데 그리 쉬운 길이 아니다. 이리저리 굽이지고 꽤 경사가 진 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게다가 이제는 뜨거워진 대기까지 가세하니 숨이 차오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등반을 잠시 멈추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옆을 보면 말라가 시내와 항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땀방울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시원한 풍경이다. 남부 스페인의 이 중요한 항구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던가 생각한다.

    말라가는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말라카라는 이름으로 건설했고 그 후 카르타고인의 지배를 받았다. 카르타고와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벌인 피나는 전쟁이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끝나자 말라가는 로마의 수중에 들어갔다. 711년 스페인을 정복한 무어인들에 의해 이 지역의 중요한 항구도시로 개발됐고, 다시 1487년 무어인들을 완전히 몰아낸 기독교인들이 이 도시의 지배자가 됐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31년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장군에 항거하는 공화주의자들이 1937년까지 투쟁을 벌이는 등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일 뿐인가.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은 그저 유유하다.

    스페인 말라가

    육지로 둘러싸인 탓인지 지중해의 물결은 늘 잔잔하다.(좌) 히브랄파로 성의 특이한 무어식 건축양식은 이곳이 지중해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우)

    19세기 영국 병사의 구레나룻

    드디어 히브랄파로 성에 도착했다. 이 성은 원래 페니키아인에 의해 건설된 후 14세기에 인근 그라나다의 군주에 의해 재건됐다. 오는 길이 힘들어서일까, 사람을 찾을 수 없이 한산하다.

    하지만 꼭대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멋진 전경이 날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는 스페인 국기와 안달루시아 지방의 상징 깃발이 펄럭인다. 깃발 옆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순간 내가 이 성을 지키던 병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투쟁과 저항의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고향을 떠난 여러 인종과 국가의 병사들이 저 지중해를 지키기 위해 바로 이 자리에서 바다를 뚫어지게 보았을 것이다. 때로는 고향을 생각하고, 때로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바람에 세차게 펄럭이는 깃발이 발길을 재촉한다.

    성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에 이 성의 간략한 역사와 유물을 소개하는 박물관에 들렀다. 히브랄파로 주변을 축소해서 만든 모형과 옛날 범선 모형, 각종 화기, 실물 크기의 병사 인형 등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이 많다. 시기별로 정리가 잘 돼 있어 이곳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내게는 19세기 영국 병사로 보이는 인형의 구레나룻이 인상에 남았다.

    히브랄파로에서 알카사바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에 비해 편하다. 알카사바는 웬일인지 표지판에 잘 표시되어 있지 않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중간쯤 오른쪽에 있는 큰 성 쪽으로 난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어 걸어가면 나타나는 알카사바는 전형적인 무어 양식의 건축물로 소박한 인상에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무어인들은 이곳에 성을 쌓고 그들만의 궁전을 지었다.

    스페인 말라가

    알카사바의 정원에 붙어 있는 작은 방. 이슬람풍의 소박한 멋을 풍긴다.(좌) 히브랄파로 성의 박물관에 있는 병사 인형.(우)

    미로 같은 길을 따라가다 만나는 벽돌로 쌓은 문에는 부서진 고대의 하얀 기둥이 끼워져 있다. 기둥의 투박한 결은 마치 고대 로마의 폐허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이따금 나타나는 샘은 더위를 식혀주고, 작은 분수가 있는 화단은 잠시 쉬어 갈 것을 권한다. 전형적인 이슬람 양식의 정원은 고졸하지만 품위가 있다.

    하지만 알카사바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성벽이었다. 밑에서 올려다봐도 위에서 내려다봐도 참 멋있다. 그 견고한 구조와 오랜 시간의 흐름이 묻어나는 색깔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안정감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들른 성 안의 고대미술관에는 로마 시대의 조각과 무어 시대의 도자기 같은 유물이 조용히 시선을 끌었다. 나는 이곳에서 유물들 사이를 거닐며 천년이 넘는 세월을 산보한다.

    Tips

    말라가에 가려면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한다. 말라가가 속한 안달루시아를 감상하고 싶다면 세비야를 거쳐서 오는 길을 권할 만하다. 말라가는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일컫는 피카소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1881년 이곳에서 태어나 10년을 살고는 미술교사이자 화가이던 아버지가 전근 하면서 이 도시를 떠났다. 말라가에는 이 거장을 기념하는 피카소미술관이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둘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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