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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_망우리 별곡-한국의 碑銘문학

‘조봉암과 삼학병’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아니 하면 안 될 일이기에 목숨 걸고 싸웠다”

  • 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조봉암과 삼학병’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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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과 삼학병’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죽산 조봉암 선생 묘소(위 오른쪽)와 그 앞면의 연보비.

필자는 이곳에서 비문을 읽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다. 죽음에서 오히려 삶을 발견했다면 과장일까.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이곳에서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고인이 묘비에 남긴 글을 읽으면서 삶을 돌아보게 된다. 시인 조병화는 이렇게 노래했다.

“살아서 무덤을 도는 마음이 있다. 사랑하면 어두워지는 마음이 있다. 몽땅 다 주어도 모자라는 마음이 있다. … 밤이 가면 아침이 온다.”

망우리묘지는 근현대사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인물들의 삶을 비명(碑銘)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금석학은 오래된 돌 등에 새겨진 내용을 연구하는 학문. 종이는 불에 타서 없어지지만 돌은 타지 않으니 오랜 세월 그 내용이 전해질 수 있다. 고인의 비석에서 우리는 그 시대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별한 자’들이 잠든 국립묘지는 이렇다 할 향취가 없다. 그에 비해 이곳 망우 ‘공동(共同)’ 묘지는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다. 시대가 애국자로 지정한 자뿐 아니라 친일과 좌익의 멍에를 짊어진 억울한 죽음도 허다하다. 시인, 소설가, 화가, 작곡가, 가수, 의사, 학자, 정치가 등 다양한 삶이 있고, 부자와 빈자, 유명인과 무명인이 함께 있다.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렸거나 생활에 지친 도시인은 여기에서 고인의 삶을 되새기는 행위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학생들에겐 한국 근대 역사와 문화를 체험학습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망우리 고개는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다. 묘지의 숲에서 시내를 보면 삶과 죽음의 사이에,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사이에 내가 서 있음을 느낀다.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필자는 비석을 통해 고인의 마음과 고인의 시대를 읽어 글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시인 함민복의 말처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묘지 여기저기에 지난 추석 때 놓인 꽃다발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말라가는 이 겨울, 나는 망우공원에 묻힌 고인에게 한잔의 술을 바치며 이 연재를 시작한다.



글 없는 조봉암 비석

비명문학 기행의 첫 번째 코스는 죽산 조봉암 선생 묘지의 ‘글 없는 비석’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1980년대, 대학생이던 필자는 당시 망우리 공동묘지를 산책하다 우연히 죽산의 묘를 발견했는데, 비석의 크기로 보아 꽤 유명한 분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필자는 교과서에서건 어느 책에서건 그의 이름을 본 적이 없었다. 다른 많은 월북인사처럼 죽산 조봉암은 대한민국에서는 입 밖에 낼 수 없는, 오로지 그 시대를 산 사람의 머릿속에서 존재하다 사라지는 기억의 하나였다. 태초에 말이 있었지만 죽산의 말은 사라졌다. 말은 입술의 침을 먹고 목숨을 이어가는 것인데, 아무도 말을 나누지 않아 말은 그 시대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바싹바싹 마르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필자 같은 후세 사람에게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고 수십년간 오로지 유족과 일부 지인의 머릿속에서만 그들 가슴의 고동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 크게 조명을 받는 월북작가 임화, 백석, 이태진의 말은 접할 수 없었다. 일본에선 아쿠타가와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6·25전쟁 당시 인민군 종군기자로 죽은 김사량도 동대문 도서관 한구석에 꽂힌 일어판 일본문학 전집 안에서 우연히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난해 이곳 망우리공원에서 찾은 소설가 최학송과 극작가 함세덕의 말도 내겐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망우리공원 관리사무소에서 50m쯤 올라가면 순환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왼쪽 길로 1km 정도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길 좌우로 유명인 묘소 입구에 서 있는 연보비가 나타난다. 연보비는 고인의 연혁과 말을 새겨놓은 큰 돌을 말한다. 동락천 약수터를 지나 한용운 선생 묘 다음에 죽산의 묘가 있다. 입구에는 연보비가 서 있고 계단도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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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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