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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과 삼학병’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아니 하면 안 될 일이기에 목숨 걸고 싸웠다”

  • 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조봉암과 삼학병’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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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과 삼학병’ 글 없는 비석이 전하는 침묵의 소리

1956년 조봉암 선생이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

2006년 봄 20여 년 만에 다시 죽산의 묘를 찾았을 때 큰 비석의 앞면에는 단지 ‘죽산조봉암선생지묘(竹山曺奉岩先生之墓)’라고 새겨져 있을 뿐 비석 좌우 뒷면에는 아무런 글이 없었다. 보통 이 정도 유명한 사람, 혹은 이 정도 크기의 비석이라면 생몰년과 경력, 그리고 추모의 글이 가득한 게 상례다. 그때 내가 답사한 다른 유명인의 비석에는 글이 가득했다. 그래서 묘지 입구의 연보비를 찬찬히 훑어보기로 했다.

‘1898-경기도 강화군에서 출생, 1919-3.1 독립운동 가담 1년간 복역, 1925-‘조선공산당’ ‘고려공산청년회’ 간부로 모스크바 코민테른 회의 참석, 1930-항일운동에 연루되어 신의주 감옥에서 7년간 복역, 1946-조선공산당과 결별. 중도통합노선 제시, 1948-제헌국회의원. 초대농림부장관 역임, 1950-국회부의장 역임, 1952-제2, 3대 대통령 출마, 1956-‘진보당’ 창당 위원장 역임 및 평화통일 주창’

그런데 이 연보비에도 적혀 있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언제 죽었는지는 단 한 자도 씌어 있지 않았다. 필자는 조봉암 비석 주위를 맴돌며 ‘왜 아무 글이 없을까’ 하고 혼잣말을 되뇌고 있었다. 그때 옆을 지나던 어른이 “고인이 사형을 당해서 그렇다”고 알려주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연보비의 제일 마지막에 들어갈 말은 이것이었다.

‘1959년-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선고, 처형’

죽산의 장남인 조규호씨는 “비석에 글을 새기고 싶어도 국가가 허락하지 않아 새기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역적의 묘에 비석을 세우지 못하게 한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그는 “이 비석 또한 아주 훗날에 세운 것이지, 매장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즉 조봉암 묘소에 자리 잡은 무언의 비석은 X자를 그린 마스크를 쓴 채 ‘침묵의 항변’을 한 게 아니라, 국가가 ‘불온한 무리’의 준동을 억제하려고 죽은 사람의 말문을 막은 결과물이었다. 도산 안창호가 죽어 망우묘지에 묻혔을 때 일본 순사가 묘를 지키고 불순분자의 방문을 막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다행히 2007년 9월27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1959년 사형당한 조봉암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그 피해를 구제하며 명예를 회복시킬 것을 국가에 권고했다. 조규호씨는 “현재 진행 중인 재심에 대해 공식적인 판결이 나오면 비로소 비석에 글을 새길 것”이라고 다짐한다.

‘거짓 운명’을 받아들이다

부끄럽지만 필자는 조봉암이 과거의 유명 정치가라는 사실만 알았지,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조봉암 묘지 비석에 글이 없는 사연을 알고자 나는 도서관에서 조봉암에 관한 당시의 신문기사와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나름대로 정리한 조봉암의 삶은 이랬다.

반공이 국시(國是)이던 시절, 죽산은 극우와 극좌를 배척하는 중도의 길을 걸었다. 제2대 대통령선거 때는 불과 57만표를 얻었으나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200만표를 넘게 얻어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떠올랐기에 당시 정권의 제거 대상이 됐다고 한다. 나라의 공식 선언이 없는 한 함부로 말할 처지는 아니나, 진보당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읽어볼 때 이는 다분히 이승만 정권의 과도한 정치행위로 보인다.

재판 당시에도 언론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고, 미국도 계속 이승만 정권에 경고를 보냈으나 자유당 강경파는 1959년 끝내 조봉암의 사형을 집행했다. 이를 전환점으로 미국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고 차기 정부 수립을 위한 전략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4·19 혁명 때는 결국 이승만의 하야를 권하게 된다. 물론 미국의 미온적인 태도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학자도 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죽산의 죽음이 오히려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앞당기게 했다는 역설도 가능할 것이다.

조봉암의 인물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광복 후 경찰청장으로 좌익 검거에 앞장서 국무총리까지 지낸 장택상은 자신의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죽산의 사형이 집행되자 후에 이렇게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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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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