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뒤 그 멤버의 라커에 있던 물건은 북쪽에 있는 클럽으로 보내졌다.
필자는 오거스타와 클리퍼드에 관련된 이런 몇 가지 얘기를 들먹인 후 남부CC 관계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장기에서 차(車)는 가고 싶은 대로 몇 칸을 움직일 수 있지요. 포(包)는 언제나 하나를 넘어서만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졸(卒)은 앞이나 좌우로 한 칸씩만 움직일 수 있을 뿐 뒤로는 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 장기를 하는 이들은 이와 같은 규칙을 아무런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규칙들도 애당초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훗날 사람들이 이를 바꿀 수도 있다 할 것인데, 후세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바꾸려들지 않습니다. 남부CC 내장객에게 골프 치러 올 때 재킷을 착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진정 명문 골프장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대로 밀고 나가시지요. 1년쯤 지나면 골퍼들은 남부CC에 갈 때는 재킷을 입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주었다.
“클리퍼드씨, 배지를 제시하시죠”
로버츠 클리퍼드의 친구들조차 그에 대해 말할 때는 그가 독재적이고 깐깐하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그가 오거스타를 진심으로 아끼고 오거스타와 대회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도 따라붙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마스터스 대회 기간 중 클리퍼드가 클럽하우스 정문으로 들어가려 할 때 보안요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실례합니다만, 배지가 있습니까?”
“나 클리퍼드요.”
“네 클리퍼드씨, 배지를 갖고 계시냐고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저는 로버츠 클리퍼드입니다.”
“네, 로버츠씨 이해합니다. 배지가 있습니까? 배지를 제시하면 바로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클리퍼드는 그의 집무실로 가서 배지를 챙겨서 다시 왔다. 그러고는 보안요원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보안요원이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자리는 자네가 원할 때까지 자네의 자리일세.”
남부CC 관계자에게 그런 얘기를 들려준 후 10여 년이 지난 어느 해, 필자는 어떤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10여 년 전에 이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분에게 구차하게 장기 이야기나 로버츠 클리퍼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깃 있는 셔츠 착용은 의무
1920년 10월3일. 전미오픈 무대로 알려져 있던 매사추세츠 주 프레아반컨트리클럽에서는 클레멘스컵 대회가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다. 낮은 핸디캡의 아마추어들이 경쟁하여 1~3위 입상자에게는 전미오픈 출장 기회를 주기로 했다. 당시로서는 규모가 큰 대회였다. 경기 시작 직전에 클럽 이사장 마이크 도브넨은 1번홀 티잉그라운드로 빨리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달려가 보니 아무래도 골퍼로는 보이지 않는 중년남성 3명이 경기위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복장은 단번에 눈에 띄었다. 근처를 지나가는 철도 회사인 ‘유니온트레일’의 작업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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