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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별곡─한국의 碑銘문학 5

동화처럼 떠나간 식민지 아이들의 산타 소파 방정환

“검은 마차가 날 태우러 왔네, 가방을 주게”

  • 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동화처럼 떠나간 식민지 아이들의 산타 소파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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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처럼 떠나간 식민지 아이들의 산타 소파 방정환

동아일보 1923년 5월25일자(1000호)에 실린 ‘어린이 천사람’ 합성사진.

줄리아와의 ‘러브스토리’만 해도 그렇다. 줄리아에게 소파는 아동문학가이기 전에 출판인이자 언론인이었다. 소파는 공전의 베스트셀러 잡지인 ‘어린이’ 외에도 ‘학생’ ‘신여성’ ‘혜성’ ‘개벽’ ‘별건곤’ 등에 직간접적으로 깊이 관여했다. 김일엽과 신준려 등이 ‘신여자’를 기획하면서 소파를 편집고문으로 위촉한 것도 출판인, 언론인으로서 그의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비석에 쓰인 그의 일생과 업적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무덤 오른쪽 비석 앞면에는 그의 이력이 짤막하게 정리돼 있다.

어린이의 진정한 동무

‘연보. 1899년 11월9일 서울 당주동에서 출생, 1908년 ‘소년입지회’ 조직, 1917년 손병희 선생의 셋째 따님 용화 여사와 결혼, 1918년 보성전문학교 입학, 1919년 3·1운동 때 일경에 피검, 1920년 3월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에 입학, 1920년 8월25일 ‘어린이’라는 말을 개벽지에 처음 씀, 1921년 ‘천도교 소년회’ 조직, 1922년 5월1일 ‘어린이의 날’을 발기 선포, 1922년 6월 번안동화집 ‘사랑의 선물’ 간행, 1923년 3월20일 개벽사에서 아동잡지 ‘어린이’ 창간, 1923년 5월1일 ‘어린이날’ 확대 제정. ‘색동회’ 창립, 1928년 10월2일 ‘세계아동예술전람회’ 개최, 1931년 7월23일 심신의 과로로 대학병원에서 별세, 1936년 7월23일 유골이 이곳 망우리묘지에 묻힘, 1940년 5월1일 ‘소파전집’ 간행, 1971년 7월23일 남산에 동상이 건립됨, 1974년 4월20일 ‘소파 방정환 문학전집’ 간행, 1978년 10월20일 금관문화훈장을 받음, 1980년 8월14일 건국포장을 받음’

비석 뒷면에는 후대의 아동문학가가 소파의 삶을 반추하면서 쓴 글이 있다.



동화처럼 떠나간 식민지 아이들의 산타 소파 방정환

‘어린이’ 잡지 동요 공모에 입선한 아동문학가들의 당시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덕출, 윤석중, 이원수, 최순애.

“사람이 오래 살기를 어찌 바라지 않을까마는, 오래 살아도 이 민족 이 겨레에 욕된 이름이 적지 않았거늘 불과 서른셋을 살고도 이 나라 이 역사 위에 찬연한 발자취를 남긴 이가 있으니 그가 소파 방정환 선생이다. 나라의 주권이 도적의 발굽 아래 짓밟혀 강산이 통곡과 한탄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선생은 나라의 장래는 오직 이 나라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라 깨닫고 종래 ‘애들’ ‘애놈’ 등으로 불리면서 종속윤리의 틀에 갇힌 호칭을 ‘어린이’라고 고쳐 부르게 하여 그들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존댓말 쓰기를 부르짖었으니 이 어찌 예사로운 외침이었다 하겠는가. 선생은 솔선하여 어린이를 위한 모임을 만들고 밤을 지새워 ‘사랑의 선물’이란 읽을거리를 선물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의 날’을 확대 정착시키며 어린이를 위한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였으니 이는 반만년 역사에 일찍이 없던 일이요 봉건의 미몽 속에 헤매던 겨레에 바치는 불꽃같은 그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리하여 나라 잃은 이 나라 어린이에게 우리말 우리글 우리얼이 담긴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어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는 일에 주야를 가리지 않았으니 그를 탄압하려는 일제의 채찍은 선생으로 하여금 경찰서와 형무소를 사랑방 드나들 듯하게 하였다. 오직 기울어가는 나라의 장래를 내일의 주인공인 어린이에게 바람을 걸고 오늘보다 내일에 사는 어린이를 위한 아동문화의 개화와 아동문학의 씨뿌리기에 신명을 바쳐 이바지했으니 실로 청사에 길이 빛날 공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애닯다. 그처럼 눈부신 활약이 끝내는 건강을 크게 해쳐 마침내 젊은 나이로 홀연히 이승을 하직하면서 다만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한다’는 한마디를 남기셨으니 뉘라서 이 정성이 애틋한 소망을 저버릴 수 있으리오. 여기 조촐한 돌을 세워 민족의 스승이요 어린이의 어버이이신 그의 뜻을 이 겨레의 내일을 위해 천고의 역사 위에 새겨두고자 하는 것이다. 1983년 어린이날 사계 이재철 짓고 월정 정주상 쓰다.”

이 비석은 1983년 한국 최초의 ‘본격적’ 아동잡지 ‘어린이’ 창간(1923) 60돌을 맞아 아동문학인과 출판인, 뜻있는 어른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것이다. 비문을 쓴 이재철(단국대 명예교수)은 시인이자 아동문학가로 ‘아동문학개론’ ‘현대아동문학사’ 등을 저술하고 ‘소파전집’을 편찬했으며 세계아동문학대회(1997)를 개최했다. 그는 한국아동문학학회장과 아동문학평론사 주간을 맡아 방정환문학상을 시상(올해는 18회째)하는 등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이론적 정립과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글씨를 쓴 정주상은 아동문학가이자 서예 교과서를 집필한 저명한 서예가다.

비석에 쓰인 연보를 읽던 필자는 그의 연대기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 개최’와 관련해서다. 소파 무덤 근처에는 한국 화단의 거두 이인성(1912~1950)이 묻혀 있는데, 그가 바로 이 전람회 출신이다. 이인성의 비석 뒷면 연보에는 16세 때 이 전람회에 ‘촌락의 풍경’을 출품해 특선에 입상했다고 새겨져 있다. 이는 전람회 측이 ‘동아일보’ 1928년 10월12일자에 발표한 수상자 명단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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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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