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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칩 미술가 순례 4

합법과 일탈, 균형과 변화의 경계인 김아타

해체하고 박제하고 소멸시키며 인간 성찰

  • 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합법과 일탈, 균형과 변화의 경계인 김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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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과 일탈, 균형과 변화의 경계인 김아타

뮤지엄 프로젝트 #149, 니르바나 시리즈, 2001.

‘해체’ 시리즈는 씨앗을 뿌리듯 인간의 나신(裸身)들이 대지 위에 흩뿌려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폭력적인 살육의 현장을 떠올리게 하고, 역설적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대지를 딛고 올라오는 생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진사적으로 본다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1864~1946)의 이큐발란트와 에드워드 웨스턴(1886~1958)의 즉물사진을 바탕으로 세속의 세계와 신성한 세계의 만남, 과학적인 기계에 의한 새로운 예술형식과 신비한 영지적 인식과의 조화로운 결합을 시도한 마이너 화이트(1908~ 1976)에게 기대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사진들은 콘트라스트가 강조된 것도 아니고 극적인 서정성을 지니지도 않는다. 무덤덤하게 먼 곳을 단순하게 촬영한 것처럼 보인다. 존재로서의 인간은 없고 자연의 일부이거나 자연에 함몰된 채 하나의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로 파편화하면서 비의적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나의 풍경 구성요소로서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그는 해체 시리즈를 스스로 ‘설치(Installation)’라고 규정했다. 이는 결과물로서의 사진보다 찍히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더 중점을 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연출력은 사진계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1995년 그는 흩뿌려졌던 인체들을 사각의 유리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도심이나 불특정 또는 특정장소에 설치한 후 그 상황을 촬영하는 뮤지엄(MUSEUM) 시리즈로 이어갔다. 하나의 오브제로 화한 인체는 ‘해체’ 시리즈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박물관의 유물상자에 담긴 하나의 주체로 현존한다.

뮤지엄 시리즈



합법과 일탈, 균형과 변화의 경계인 김아타
뮤지엄 시리즈는 다시 몇 가지 주제로 나뉘어 진행된다. ‘자연과 인간’ ‘섹스’ 시리즈와 ‘홀로코스트’와 ‘전쟁기념관’ 시리즈, 그리고 ‘니르바나’ 시리즈가 그것이다. 당시 그의 뮤지엄 시리즈는 박제된 인체(?)가 주는 충격과 생경함으로 인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마치 구경거리가 없던 19세기 말 파리 사람들에게 진귀한 볼거리가 돼준, ‘모르그’라 불리던 ‘시체공시소’처럼.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홀로코스트 시리즈는 형상은 드러나 있는 모습이라는 의미에서 이미지의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지의 대체적 진실에 익숙한 나머지 형상에 대해서는 어떤 사물의 형상이라고 특정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김아타의 그것은 형상이다. 그래서 사물과 동등한 존재론적 가치를 획득한 자족적이고 독자적인 하나의 형상이 된다.

전쟁 시리즈는 상이용사들의 형상을 통해 절실하게 전쟁을 기념(?)한다. 단순하게 전쟁의 폭력성만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전쟁의 결과물로 인간의 외형뿐 아니라 내면까지 드러내는, 이미지가 아닌 형상을 시도했다.

뮤지엄 시리즈의 백미는 역시 ‘니르바나 시리즈’다. 그는 유리상자 안에 삭발한 비구니 스님의 나신을 나란히 앉힌 작품을 발표하면서 불교계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마음의 경계를 깨는 걸림 없는 것’을 잇달아 작품으로 발표했다.

그는 부처를 ‘마른 똥 막대기’라고 하며 젠 체하는 선승들의 비난을 일축하고 절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연출해서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이렇게 그는 합법과 일탈이라는 최전선에 자신과 자신의 모델들을 놓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그 논쟁의 가식적이고 세속적인 틀을 통해서 다시금 자신의 사진에 눈을 돌리도록 요구한다. 따라서 그는 규제와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부분 사이의 균형을 흐트러뜨리면서 변화를 꾀하는 이미지를 선택해 경계인을 자처한다.

뮤지엄 프로젝트를 계기로 그의 사진은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다뤄지고 읽히기 시작했고, 2002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그의 사진은 이미 단순한 사전적 의미의 사진이 아닌 퍼포먼스와 현상의 현현이자 대상의 지적, 심리적 상태를 표상하는 하나의 존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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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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