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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칩 미술가 순례 4

합법과 일탈, 균형과 변화의 경계인 김아타

해체하고 박제하고 소멸시키며 인간 성찰

  • 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합법과 일탈, 균형과 변화의 경계인 김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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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아닌 형상으로

합법과 일탈, 균형과 변화의 경계인 김아타

김아타의 사진은 특히 미국인들을 매료시켜 작품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후 그는 장노출과 이미지의 중첩이라는 기법을 사용한 ‘ON-AIR’ 시리즈에 접어들었다. 이 시리즈는 다시 만다라와 섹스, DMZ, 얼음, 뉴욕 시리즈로 연결된다. 그는 장노출 기법을 통해 고정된 사물이나 건축물은 남기고 움직이는 모든 것은 움직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사라지게 만든다. 세계에서 가장 번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뉴욕을 생생하게 그의 카메라로 박제화한다.

그러나 박제가 돼야 할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만 존재로 남는 결과를 얻기 위해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4시간 이상을 대상(사물)과 대면해야 한다. 그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는 지구력과 끈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결과 세상은 마치 영화 세트처럼 텅 빈 채 거리만 남아 있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천안문 광장의 고요 또는 적막은 김아타에 의해 시간 속에서 지워진다. 잊힌다는 것과 지워진다는 것, 그리고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사라져야 한다. 그는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과 이에 반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사진이라는 익숙한 매체를 통해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결정을 요구한다. 사라질 운명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라지지 않기 위해 부질없이 욕망의 바벨탑을 쌓을 것인가를.

이처럼 장노출 기법을 통해 사라지는 것들의 사라짐을 통해 진실한 존재의 의미를 일깨우려 했다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서 만든 중첩 이미지를 통해 본질의 원형을 파괴했다. 남녀 15쌍의 섹스 장면을 찍어서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도록 만든 사진은 장노출 기법으로 사라진 존재들의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열락의 상태에 빠진 인간들의 교미는 비록 하루라는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짝을 지어 잊히지 않으려는 하루살이들의 본능적 행동처럼 희화화할 뿐이다.



또한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자연스러운 이치를 통해 세상 어느 것도 사라짐을 보여준다. 마오쩌둥도 마릴린 먼로도 작가인 김아타도 모두 물이 되어 하나가 된다. 자화상 시리즈에서도 인물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은 잃지만 자신의 민족이라는 거대담론에 의해 소멸된 문화인류학적 사진 한 장으로 귀결된다. 현대미술의 거대 화두인 정체성의 문제, 주체와 타자의 문제는 이렇게 교묘하게 위장된 채 실존의 문제로 남는다.

역설의 변증법

그의 작품을 ‘역설’과 ‘철학적 사유’라는 진부한 용어와 ‘동양’과 ‘신비주의’로만 읽는 것은 서양인들의 시각일 뿐이다. 그의 작품은 사실 자신의 ‘이미지 트레이닝’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방식일 뿐이다.

그의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테제는 요즘의 세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하고도 당연한 것이다. 그의 작품이 갖는 힘은 공간을 압도하는 스펙터클한 화면과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지키는 시간과 끈기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피사체를 중심으로 한 패닝(Panning) 기법의 역차용과 대각선 구도도 그의 사진을 ‘철학적’이나 ‘역설’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진 그 자체로서 바라보는 즐거움을 준다.

합법과 일탈, 균형과 변화의 경계인 김아타
정준모

1957년 서울 출생

중앙대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 석사 (미술학)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 국립 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덕수궁 미술관장

現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중앙대·고려대 강사

논문 : ‘미술품은 땅인가’ ‘제3의 미학, 새로운 출구’ ‘한국의 모던이즘, 모더니즘’ 등


그의 작품에는 단순하고 명징한 주제가 존재하지만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대하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이나 준비과정에서 많은 스토리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다. 제작과정의 이런 일상성과 에피소드는 역설적으로 또 다른 흡인력이기도 하다.

최근의 ‘인다라’ 시리즈에 이르면 그는 역설 그 자체가 된다. 타지마할, 케롤박, 찬드니촉이라는 서로 다른 장소가 밝기만 다를 뿐 하나로 귀결되면서 언제나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는 진리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사진의 매력은 사진으로서의 완벽한 존재감과 사진에 담긴 피사체들의 공허함을 통해 뚜렷한 역설의 변증법을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부재하는 피조물들을 통해 사진으로 현존하는 극적인 전이는 그의 사진에서 서양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다.

신동아 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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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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