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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35

종로경찰서 투탄 사건

거사 앞둔 김상옥이 정말 폭탄을 던졌을까?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종로경찰서 투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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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의 교전, 그리고 장렬한 최후

이창규가 자고 있는 이혜수를 깨워 유리창 너머 지붕을 쳐다보게 했다. 이혜수가 찬찬히 살펴보니 경찰임이 확실했다. 이혜수는 조용히 대청으로 나가 김상옥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시오. 김 동지. 경찰들이 몰려왔소. 일어나 어서 피하시오!”

“뭐라고?”

“글쎄 지붕 위에 그것들이 바글바글해요. 어서 반침(半寢·큰 방에 딸린 조그만 방) 안으로 들어가요.”



김상옥이 이혜수가 가리키는 반침 안으로 들어갔다. 반침 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한적(漢籍)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김상옥은 한적 뒤에 숨어 사태의 추이를 살폈다. 형사대가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동안 집안사람들은 새벽부터 죄다 일어나 미닫이를 여닫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는 등 부산을 떨었다. 지붕 위에서 집안을 감시하던 경찰이 우물쭈물하다가는 또다시 김상옥을 놓칠 것 같아 상부에 상황을 보고했다.

“아직 시야가 어둡다.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는 한, 계속 기다려!”

이마노는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꼼짝도 하지 말라고 거듭 지시했다. 겨울밤은 길어서 오전 7시가 지나서야 먼동이 텄다. 특별한 이상 징후는 없었다. 7시30분, 이마노가 드디어 작전개시 명령을 내렸다. 동대문경찰서 고등계주임 구리타(栗田) 경부를 선두로 지붕 위에 포진하고 있던 형사대가 권총을 꺼내들고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김상옥! 김상옥 나와!”

구리타 경부가 공포를 쏘아대며 김상옥을 찾았다. 집안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형사대가 방문을 죄다 열어보았지만 김상옥은 보이지 않았다. 구리타가 찬찬히 방안을 둘러보니 벽장문이 조금씩 움직였다. 구리타가 벽장문을 버럭 열어젖히자 김상옥이 한적 더미 뒤에 숨어 양손에 권총을 든 채 구리타를 노려보고 있었다.

탕… 탕.

“으악”

구리타가 쏜 총탄은 허공을 갈랐고, 김상옥이 쏜 총탄은 구리타의 오른쪽 어깨를 뚫었다. 구리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경찰이 벽장을 향해 일제히 사격했다. 효제동 일대는 마치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총성으로 뒤덮였다. 김상옥은 방문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락의 담벼락을 발로 차서 뚫고 옆집인 효제동 74번지를 지나 76번지로 피신했다. 김상옥이 집주인 김학수에게 사정했다.

“주인장 이불을 좀 주시오. 이불을 뒤집어쓰고 탄환을 피해 몇 놈 더 쏘아 죽이고 나도 죽을 테니….”

화들짝 놀란 김학수가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도둑이야! 강도야! 우리 집에 쌍권총을 든 괴한이 들어왔소!”

김상옥은 76번지 담을 넘어 72번지로 달려갔다. 담을 넘을 때 동상에 걸린 발가락 하나가 떨어졌다. 수사대가 72번지를 에워싸고 항복을 권했다.

“김상옥! 항복하라! 더는 도망갈 곳이 없다!”

72번지 담벼락을 경계로 김상옥과 400여 명의 수사대는 30분 동안 대치했다. 대치하는 동안 이마노는 경찰 수십명을 72번지를 둘러싼 집들의 지붕에 배치했다.

“닥치는 대로 쏴버려!”

30분 동안의 회유에도 김상옥이 항복하지 않자 이마노가 일제사격 명령을 내렸다. 김상옥도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응사했다. 72번지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집주인 이진옥 노인은 억울하게 유탄에 맞아 죽었고, 김상옥도 온몸 수십 군데에 총상을 입었다. 장독이란 장독은 모조리 깨졌고, 기둥과 벽면이 벌집이 됐다. 김상옥이 마당 옆 변소로 뛰어들어가 몸을 숨긴 채 빈 탄창에 총알을 쟀다. 총알도 이제 몇 발 남지 않았다.

‘다 다 다 다 다…’

총탄이 변소간을 향해 빗발처럼 쏟아졌고, 이에 맞서 김상옥도 맹렬히 쌍권총을 쏘아붙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깨진 변소간 문짝 사이로 총탄이 날아들었다. 김상옥은 온몸에 총상을 입었다.

탕.

탄창에 총알이 한 발밖에 남지 않았을 때, 김상옥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김상옥은 양손에 권총을 움켜쥐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효제동 72번지 변소간에서 3시간 동안의 교전을 마치고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폭탄은 누가 던졌나?

종로경찰서 투탄 사건
전봉관

1971년 부산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 석·박사(국문학)

서울대, 아주대, 한신대, 한성대, 덕성여대에서 강의

現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 과학부 교수

저서 및 논문 : ‘1930년대 한국 도시적 서정시 연구’ ‘황금광시대’ ‘경성기담’ ‘럭키 경성’ 등


경찰은 종로경찰서 투탄 사건의 범인으로 김상옥을 지목했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 될지언정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김상옥을 따르던 동지들도 그렇게 믿었다. 오늘날까지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영웅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과연 김상옥이 사이토 총독 암살이라는 중차대한 과업을 코앞에 두고 경솔하게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수십명의 동지들과 3년 가까이 준비한 거사를 그르쳤을까?

김상옥은 교전 도중 자살했고, 목격자는 아무도 없다. 결국 누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는지 정확히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확실한 것은 1923년 1월12일 누군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그것은 영웅적인 행위였으며, 그 덕분에 총독부는 등골이 서늘해졌으며, 매일신보 사원 5명과 기생과 어린아이가 다쳤고, 김상옥이 3년여에 걸쳐 준비한 거사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사학계에서는 종로경찰서 투탄 사건의 실행자가 김상옥이라는 설을 통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무명지사 김상환, 맹호단원 이강연, 고려공산당원 이한호가 실행했다는 설도 이설(異說)로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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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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