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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40주년 특집

철학의 새 천년,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되다

“도망쳐라, 동지여! 낡은 세계가 너를 뒤쫓고 있다”

  • 정재영 철학 저술가 seoulforum@naver.com

철학의 새 천년,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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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새 천년,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되다

68운동의 진원지인 파리 낭테르 대학 교정.

동유럽으로 가면 민주화 운동 성격이 더 뚜렷해진다. 서구 언론의 보도로 널리 알려진 체코 ‘프라하의 봄’, 당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하나였던 크로아티아에서 피어난 ‘크로아티아의 봄’은 전체주의 성격을 띤 공산 정부에 저항한 동구 68 민주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는 ‘틀라텔레코(Tlatelel- co)의 밤’으로 불리는 비극이 일어났다. 집권 제도혁명당 군부가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 시위대에 총을 난사한 것이다. 1968년 멕시코 하계 올림픽 개막 열흘 전이었다. 정부 발표는 4명 사망에 20명 부상. 수십년 동안 이 학살은 쉬쉬하며 입에서 입으로만 떠돌아다녔다. 소문에 따르면 사망자만 수천명에 이른다고 했다. 뒤늦게 밝혀진 사망자 수는 200명에서 300명 사이. 마치 1980년 광주를 보는 듯하다.

영국 역사학자 홉스봄이 지적한 대로 68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세계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난 사회 격변이었다. 그 세계사적 격변의 원동력은 좌와 우의 이념을 떠나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 요구였다. 이 점에서 68운동은 무늬뿐인 민주주의로 위장한 낡은 세계에 돌멩이를 던진 것이다. 사이비 민주주의의 가면을 폭로한 것이다. 그 낡은 세계에서 소외된 흑인, 여성, 그리고 그 밖의 사회적 소수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 것이다.

이 점에서 68운동은 이전에 일어난 사회운동과 다르지 않다. 특히 정치적 맥락에서 볼 때, 68운동은 과거와의 단절이 발견되지 않는다. 인간 존엄에 기초해서 사회적 소수의 인권을 외쳤고,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폭로했다. 그리고 강대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도사린 제국주의적 성향을 고발했다. 최루탄과 곤봉, 심지어 총탄까지 동원된 벌거벗은 폭력 앞에 시위는 진압됐다.

‘근대 설계도’ 키워드는 이성



시위가 멈춘 지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역사의 눈으로 되돌아보면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바뀌었다. 권위주의 정부는 이미 역사 무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탱크를 앞세워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련-동구 공산주의 블록은 지난 세기말 맥없이 무너졌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고 베트남은 통일됐다.

여성과 흑인, 그리고 그 밖의 사회적 소수에 대한 권리는 68운동을 계기로 크게 신장됐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소외됐던 제3세계의 비중이 커진 것도 68운동 이후의 일이다. 완전한 성공은 아니지만, 68운동이 제기한 기존 사회에 대한 이의제기는 충분히 받아들여진 셈이다.

그러면 이것으로 68운동 이야기는 끝인가. 아니다.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아니,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한 시대가 종막을 고하고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로서의 68운동과 그 후폭풍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이 우리가 파리 철학여행을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간추려서 미리 말하자면, 그것은 ‘근대’ 또는 ‘근대성(modernity)’으로도 불리는 역사의 한 시대가 마감되고, 아직은 무엇이라 규정하기 힘든, 그래서 편의상 ‘근대 이후에 온 것(postmodernity)’이라고 부르는 새 시대의 징후가 68운동을 계기로 포착됐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우리는 서구 근대가 르네상스, 종교개혁, 그리고 계몽주의 등 그 성격을 달리하는 사회문화운동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사회 교과서를 통해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가 근대를 지탱하는 두 가지 축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이 근대 시기에 유럽인들은 시민혁명을 통해서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웠다. 생산력 증대를 위한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피와 땀의 산물이었다. 유럽에서 시작한 근대는 20세기 들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세기에는 근대화와 산업화가 국가 경영의 화두였다.

이처럼 근대는 그 시작과 성격이 분명하다. 그러면 근대의 끝은 어디인가. 어느 지점이 근대의 종착역인가. 근대를 설계한 기획자들은 그 마지막 단계를 상정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근대의 설계도는 하얀 백지(tabula rasa)에서 시작한다. 이전 시대를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백지로 만든 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근대는 그 이전 시대인 중세를 철저히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근대의 눈으로 본 중세는 깜깜한 암흑의 시대다. 그 암흑을 벗기고 새로 태어난 근대는 새로운 계몽의 시대다. 그러나 근대를 설계한 기획자들은 근대의 설계도가 근대 이후의 시대에 또 하나의 백지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아예 상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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