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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過半의 경고장’ 받은 이명박 정권 4개월 진단

국정철학 ‘실용(實用) ’, 그대들이 먼저 실천해 보여라!

  • 전진우 언론인 youngji@donga.com

‘過半의 경고장’ 받은 이명박 정권 4개월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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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pragmatism)’라는 말은 ‘행위’를 뜻하는 그리스어 ‘프라그마(pragma)’에서 나왔고, 프라그마는 ‘실천(practice)’ ‘실제적(practical)’의 어원이다. 그런 만큼 실용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 실천의 방식에 가깝다. 하지만 실용주의가 20세기 미국의 철학사상으로 자리 잡은 데는 방법론의 차원을 넘는 역사적 문화적 토양이 그 바탕이 됐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남북전쟁(1861~1864) 이후 미국 사회는 전쟁의 후유증과 혼란에서 벗어나 낙관적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상에 목말라 있었다. 미국인의 프런티어 정신에 맞는 새로운 사상은 관념보다는 현실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실용주의였다. 실용주의를 널리 알린 하버드대 교수 윌리엄 제임스는 “실용주의는 고정된 원칙과 폐쇄 체제, 그리고 가장(假裝)된 절대와 기원에 근거를 둔 모든 추상과 현실을 거부한다. 실용주의는 한마디로 열린 마음이고 구체적인 것에 전념하며 행동과 힘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실용주의는 반대되는 사고방식을 조화시키는 행복한 조화자”라고 했다. 유용성을 중시하되 의견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얘기다.

강력한 도덕성과 열린 마음

어떤 독단이나 독선도 실용주의의 적이다. 과속이나 일방통행도 금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용주의는 강력한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실용주의가 20세기 미국 사상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미국인 특유의 낙관성과 함께 엄격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작용했다.

물론 다분히 미국적 사상인 실용주의와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실용주의가 같을 수는 없다. 역사 정치 사회 문화의 풍토가 다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이념 중심의 좌파정권을 비판하고 차별화하기 위한 우파정권의 정치적 레토릭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용주의를 정부의 성격으로 차용하려 한다면 최소한 실용주의의 가치인 열린 마음, 조화, 도덕성 등에 대한 성찰과 고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대통령 당선 이후 이명박 정권이 보인 모습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성찰이나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일만 열심히 하고 성과면 내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편의주의나 성과주의에 매몰된 듯한 느낌이다. 문제는 기업이라면 편의주의와 성과주의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국가라는 다양한 이해공동체에서는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지금은 ‘박정희-정주영 시대’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은 공직자가 지켜야 할 지침으로 칙궁(飭躬·스스로를 바르게 함), 청심(淸心·마음을 깨끗이 하여 청렴함), 제가(齊家·집안을 바르게 다스림), 병객(屛客·외부 청탁을 물리침), 절용(節用·아껴씀), 낙시(樂施·즐거운 마음으로 베풂)의 여섯 가지를 들었다. 물론 오늘의 공직자에게 도덕군자가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공직자라고 해서 한 시대, 사회의 가치관 및 삶의 양태로부터 통째로 벗어나기는 어렵다. 공직자의 부패는 그 사회의 전반적 부패도 및 부정한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그들은 대개 투자라고 말하지만) 또한 일반적 재테크 관행에 따른 것일 수 있다. 돈 많고 능력 있는 이들이 대개 그렇게 사는 사회에서 공직자만(또는 공직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만) 깨끗하고 바르게 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내각의 인사 청문회에서 어느 장관후보가 한 “공직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관이 될 줄 알았더라면) 신변을 조금 더 깔끔하게 했을 것”이란 말은 그래서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 자신 공직자로서 적절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것을 실토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의 면면은 그 정도를 넘어섰다. ‘강부자(강남 땅 부자) 내각’은 그들이 모두 ‘1%의 부자들’이기 때문보다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인식의 천박함으로 실용정부에 대한 기대를 절망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들은 청와대가 항변했듯이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富)에 대한 관념에서부터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배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사회의 평균 도덕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이 아니라는 검사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기념으로 사준 것” “부부가 교수를 25년 했는데 재산 30억원은 다른 사람에 비해 양반인 셈” 등의 분별없는 발언은 그들의 인식 수준 자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 인물들이 실용주의의 본뜻이나 알겠는가. 그런 인물들이 장관이 된다면 과연 열린 마음과 조화로 국민을 통합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인물들이 모여 실용정부를 구성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인물들을 첫 내각의 후보자로 내세운 대통령을 진정 실용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유감스럽게도 그 답은 ‘노(No)’일 수밖에 없다.

‘강부자 내각’의 천박함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영어몰입교육’ 파동을 보자. 이 문제 또한 인수위가 실용주의에 대한 철학적 사고 없이 단순히 ‘영어’ 수준으로 접근함으로써 빚어진 오류다. 독해 중심, 문법 중심의 영어교육을 듣고 말하기 중심으로 바꿔나가자, 이른바 실용영어를 하자는 방향은 옳다. 그러나 ‘영어몰입교육’은 다르다. 그것은 자원의 낭비, 교육 내용의 질적 저하 등 현실적인 문제 외에도 헌법 정신인 평등의 가치를 훼손시켜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본질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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