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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칩 미술가 순례 5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보자기로 사람, 자연, 역사를 감싸고 치유

  • 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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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자신의 작품 ‘Planted Names’ 앞에 선 김수자. ⓒRyan king

보따리가 된 보자기는 김수자와 여행을 떠난다. 사실 한국의 보따리는 안으로는 포용과 감싸 안음인 동시에 외적으로는 배척과 경계를 상징한다. 보따리의 안은 내 식구지만 밖은 남이다. 하지만 이 경계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 보따리를 푼다는 것은 정착과 안식을 뜻하는 정주(定住)를 의미하고, 싼다는 것은 결별과 방랑을 의미하며 유목민의 삶을 의미한다.

이런 보따리의 양면성은 김수자 작업의 키워드이자 핵심이다. 김수자는 보따리를 통해 일상과 예술을 때로는 동시에, 때로는 분리해서 조망한다. 이런 그의 보따리는 1994년부터 유랑을 떠난다.

보따리의 이중적 의미

1993년 ‘연역적 오브제-옷과 천’을 통해 자신의 신체와 옷감의 일체화를 실험했던 그는 퍼포먼스와 비디오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보따리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런 그의 행동은 보따리의 이중적 의미를 확인, 실천하기 위한 실험이자 실천이었다. 이듬해 그는 관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전시장 밖에 옷을 담은 보따리를 쌓아올리더니 이후 경주 옥산서원 계곡에서 이불보를 헤쳐 계곡을 덮었다가 다시 보따리에 사는 퍼포먼스 ‘자연에 눕다’를 통해 전통과 자연이라는 절대적인 환경 속에서 보따리로 상징되는 삶의 의미를 보여주었다.

자연과 일체를 이루는 설치와 행위는 경주 양동마을과 인천 용유도 백사장에서 다시 환생한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지금 돌이켜 보니 먼 길을 떠나기 전 천지신명께 길 떠나는 것을 고하는 제(祭) 의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의 유랑벽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군인들은 대개 1~2년 단위로 임지가 바뀌는지라 가족들까지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단출한 살림살이와 이부자리 두어 채를 보따리에 싸서 떠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쓸쓸한 유랑민의 가장 호사스러운 가재도구는 아마 이불보가 아니었을까. 이불보의 그 처연한 아름다움은 짧은 시간이지만 사귀었던 친구들과의 이별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기대를 아울러 의미하기도 했다. 미지의 장소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라는, 보자기의 안과 밖 같은 이중적 구조는 김수자의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분자다.

그의 보자기는 ‘Sewing into Walking’(1995), ‘Bottari in Deductive Object’(1996)로 이어진다. 또한 화려한 이불보들이 현란한 향연을 이루는 가운데 화려하지만 슬픔이 묻어나오는 ‘Encounter-looking into Sewing’(1998~2002)과 ‘Laundry Women’(2000), ‘A Mirror Women’(2002)으로 이어지면서 놀랄 만큼의 일관성을 지닌 작품들로 우리 앞에 섰다. 즉 그의 작업 여정은 꾸준하게 천과 보따리의 다중적 의미와 그 의미 속에 관계를 맺어가는 관계항으로서의 보따리, 그리고 낯선 장소와 새로운 만남 속에서 빚어지는 긴장과 기대가 점철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보따리가 된 작가

1990년대 중반부터 김수자는 본격적으로 퍼포먼스와 비디오가 결합된 작품들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비디오작품은 수백개의 보따리를 트럭에 싣고 11일 동안 전국을 달리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2727킬로미터’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비디오작품인 동시에 그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기록물로 그의 작품의 골간을 이루는 유랑(Nomad) 개념의 집합이자 결산이다.

이 비디오작품에서 작가는 보따리를 실은 화물차 짐칸에 마치 보따리처럼 함께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통해 보따리에 삶을 맡긴 익명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표현한다. 그에게 몸은 움직이는 또 하나의 보따리다. 사랑과 욕망, 겸손과 자만, 절제와 욕망, 채움과 비움, 편협과 포용, 이기심과 배려 같은 상충된 현상들이 천의 피부를 통해 안과 밖으로 갈라서는 접점에 그는 그들을 대신해서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움직이는 트럭의 화물칸에서 마치 석고상처럼 움직임이 없는 작가의 뒷모습을 뒤로하면서 주변은 물처럼 흘러간다. 움직이는 것은 트럭인데 마치 주변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과연 진실일까 아니면 착시현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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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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