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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칩 미술가 순례 5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보자기로 사람, 자연, 역사를 감싸고 치유

  • 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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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이러한 비디오작업은 ‘바늘여인’(1999~2001)으로 이어진다. 수만의 인파가 지나가는 도쿄와 상하이, 뉴델리, 뉴욕의 도심에서 인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 있는 작가의 모습과 일본 기타쿠슈의 돌산 위에 비스듬히 누워 안식을 취하는 작가의 모습이 담긴 작품이다. 이어 카이로, 멕시코, 라고스의 도로 위에서 보시를 요구하는 ‘A Beggar Woman’(2000~2001), 뉴델리와 카이로에서 길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A Homeless Woman’(2001), 델리의 바라나시로 유명한 야무르 강가 저편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잡은 ‘A Laundry Woman’(2000)으로 이어진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된 ‘A Needle Woman’(2005)도 눈길을 끈다. 네팔의 파탄과 쿠바의 아바나, 예멘의 사나와 예루살렘에서 예의 뒷모습을 보인 채 사람들과 함께 걷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모습을 통해 숭고한 역사와 시간의 견고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도시가 갖는 노예무역이라는 치욕스러운 인간의 욕망, 살육과 투쟁, 그리고 역설적으로 평화라는 장소성과 역사성을 김수자는 작품을 통해 일깨워준다. 이를 통해 아름다운 화면에 감추어진 인간의 욕망과 절제 사이의 간극은 더욱 넓어지고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놀라움은 더욱 확대된다.

위로와 치유의 보따리

이런 그의 박애주의 또는 휴머니즘적 태도는 우리 어머니의 사랑, 희생과도 맥을 같이한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재료와 작업 방식을 보고 그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하지만 그는 작업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교감하고 소통하는 인간의 모습과 삶을 담아낸다.



김수자는 가해자도 마음의 상처를 입은, 치유해야 할 피해자라는 시각을 갖고 있으며, 불쌍하고 처참하게 희생된 사람들 모두 어루만지고 아픈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보자기 같은 넉넉함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서사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서정적이다. 그의 이런 인본주의적인 태도는 상처를 어루만지고 영적인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치유의 의미를 갖는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중외공원 소나무 숲에 쏟아놓은 2.5t의 헌 옷과 보따리들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또 1996년 나고야 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Deductive Object-dedicated to my Neighbors’(1996)는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일본과 한국민들을 지배자와 피지배가가 아닌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본 화해와 상생을 위한 작품이었다. 1999년 48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d’APERTutto or Bottari Truck in Exile’(1999)는 코소보 내전으로 인한 인종청소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헌정했다.

때로는 정치적인 발언으로 비치는 이런 작업도 그간의 김수자의 작업에 비춰본다면 겉과 안이 서로 통하는, 즉 호흡해서 그 겉과 안을 구분할 수 없는 보자기처럼 모든 것을 감싸 안으려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의도의 작품은 2000년과 2001년에도 이어진다. 아즈텍 문명의 피라미드를 파괴하고 그 위에 건설된 멕시코의 조칼로 광장에서의 비디오작업과 노예무역이라는 인류의 야만적 치부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는 나이지리아의 알파비치에서의 작업들이 그것이다.

그의 치유와 화해 그리고 관용을 위한 작품은 경우에 따라서는 예술과 일상의 간극을 해체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에든버러의 푸르트마켓 갤러리, 로테르담의 보이닝겐 미술관, 일본의 세타가야 미술관, 2002년 휘트니비엔날레 출품작으로 센트럴파크의 카페테리아에서 보여준 작품이 그렇다.

김수자는 미술관의 카페테리아나 식당의 테이블에 예의 현란하고 화려한 이불보를 테이블보로 사용했다. 사람들은 그 위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잠자리의 침대 커버로 쓰이는 이불보가 일상이 되어 또 다른 의미소로 전환된 사례다.

이렇게 그는 일상과 예술의 간극을 넘나들면서 사람들의 고정된 관념을 해방시킨다. 관념과 관습으로부터의 일탈은 자유로운 영혼을 의미한다. 불안정한 오브제로서 예술작품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지만 이불보를 일상 속 예술로 재구성함으로써 일상의 예술화를 시도한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 안음으로써 모든 역사와 가치를 화해시키는 도구인 그의 보따리는 빛이라는 광대한 보따리로 전이된다. 그는 미국의 치부인 남북전쟁의 발발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모리스 섬 등대를 빛으로 감싸 안는 ‘A lighthouse Women’(2002)으로 노예제도에 희생된 흑인들의 영혼과 이 땅의 원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의 원혼, 남북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혼백을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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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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