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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북자 영화 ‘크로싱’ 만든 김태균 감독

“‘SF영화 찍느냐’고 비웃던 놈들아, 진실을 보여주마!”

  • 송문홍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songmh@donga.com

탈북자 영화 ‘크로싱’ 만든 김태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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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 131일간의 기록 중에서 발췌

‘사투리 선생’

몽골에서 돌아와 함경남도 사투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제작진은 고르고 골라 두 명의 함경남도 사투리 선생님을 준비했다면서 나더러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영화사 회의실에서 그들을 만났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지 비를 고스란히 맞아 푹 젖은 모습의 두 사람이 회의실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남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여자였다. 남자 선생은 5년 전에 탈북했고, 여자 선생은 한국에 온 지 석 달밖에 안 됐다고 했다.

압구정동의 탈북자들….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의 개인사는 우리 영화대본을 압도했고, 대화는 눈물과 한숨 없이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니…. 내가 무슨 재주로, 무슨 자격으로 선택을 하나.

결국 영화사에서는 두 명을 다 고용했다. 나는 두 선생에게 동시에 사투리를 배우다가 나중에는 남자 선생과 공부를 했다. 여자 선생은 명철이(내 아들로 나오는 아역배우)를 전담했다. 이 두 사람은 이후 한국, 중국, 몽골 촬영까지 동행하며 나와 명철이의 사투리를 교정해주었다. 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맡은 일을 해냈다. 사명감의 원천은 북에 남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안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선생은 요즘 낙지를 팔러 다닌다. 얼마 전, 오랜만에 남자 선생을 만났다.

“장사 잘됩니까?” 내가 물었다.

“잘 안됩니다.” 그가 대답했다.

“장사 잘 안되면 어쩌죠?” 내가 물었다.

“목숨 걸고 해야죠.” 그가 대답했다.

목숨 걸고 찾아온 대한민국 땅에서 그는 또다시 목숨을 걸고 있었다.

‘슬픈 농담’

1차 한국 촬영을 마친 우리는 2007년 7월 말경 중국으로 건너갔다.

탈북자들이 공안에게 쫓기는 장면을 촬영하던 날은 참 더웠다. 탈북자로 분한 한국 배우들이 중국 공안 역할을 맡은 현지인들에게 쫓기는 장면이었다. 무더위에 지쳐 살살 뛰는 중국 공안들에게 현지 코디가 주문했다.

“실제로 한 명이라도 잡는 사람을 제일 먼저 쉬게 해주겠습니다.”

촬영이 시작되자 모두들 전속력으로 뛰었다. 하루 종일 뛰고, 달리고, 또 뛰고, 계속 달렸다.

정신없이 달리는데, 탈북자들이 핀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핀볼은 한때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던 게임이다. 상자 안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대기를 잡고 있다가 핀볼이라 불리는 조그만 쇠공이 굴러 오면 있는 힘껏 공을 튕겨내는 게임이다. 작대기가 세게 때릴수록 공은 멀리 굴러간다. 튕겨진 공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상자 안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 부딪히는데, 벽에도 튕겨내는 장치가 되어 있어 다가오는 공을 계속해서 밀어낸다. 공은 단 한순간도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뙤약볕 아래에서 혀를 쭉 빼고 멍멍이처럼 헥헥거리던 나는 “크로싱 촬영하는 게 실제로 탈북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푸념 섞인 농담을 했다. 실없는 농담에 함께 뛰던 배우들도 웃고,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도 웃었다.

내 옆을 지키던 탈북자 출신 사투리 선생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웃고 돌아서는데 그의 납작한 뒤통수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넌 뛰다가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뛰면 되잖아. 다 뛰고 나면 호텔로 돌아가서 배불리 먹고, 잘 거잖아. 우리는… 아무리 뛰어도 돌아갈 곳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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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홍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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