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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괴짜들 2

소니 전 명예회장 오가 노리오,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지휘봉 든 남자와 망치 든 남자의 아름다운 인생 연착륙

  •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yacho@hanmire.com

소니 전 명예회장 오가 노리오,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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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의 막이 내리면 대개 밤 9시경인데, 언제나 수백명의 팬이 그의 사인을 받으려 줄지어 기다렸다. 그는 아무리 피곤해도 싫은 기색 없이 죄다 사인을 해줄 뿐 아니라 일일이 한 마디씩 말을 걸어줬다고 한다. “어디서 왔어요?” “몇 살이지요?” “오늘 연주는 괜찮았나요?” 등. 그러다 스스로 흥이 나면 팬의 뺨에 기습적으로 키스하는 버릇도 있었다.

“삿포로에서 연주회가 있어 번스타인이 일본에 왔을 때였다. 내가 직접 조종하는 자가용 비행기에 그를 태워 다녀왔다. 도쿄로 돌아오면서 번스타인이 ‘자네는 진짜 멋진 사나이야. 이렇게 기분 좋은 비행은 내 평생 처음이라니까!’라더니 갑자기 내 얼굴에 키스를 했다.”

그러니까 노리오도 번스타인의 번개 키스에 당한 셈이었다.

진정한 노익장

카라얀과의 우정은 번스타인보다 더 깊다. ‘소니 오가 노리오의 세계-끝없는 전설’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카라얀은 성격이 괴팍해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오가 노리오와는 음악이나 비즈니스를 떠나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인이나 오스트리아인 중에도 카라얀이 그만큼 흉금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는 거의 없다.”

도쿄의 번화가인 시부야 인근 고급 주택가, 그중에서도 돌담으로 에워싸인 눈에 확 띄는 서양식 저택이 있다. 바로 모리타 아키오의 집이었다. 1977년 가을, 두 딸과 함께 일본에 온 카라얀이 이 저택으로 놀러왔다. 카라얀은 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풀에서 수영하는 버릇이 있었다.

마침 모리타의 저택에도 실내 온수풀이 있었다. 노리오는 그날 카라얀과 그의 예쁜 두 딸, 그리고 모리타와 더불어 풀에서 세상만사 잊고 물장구치며 놀았던 기억을 오래오래 잊지 못했다. 그런 우정이 있었기에 카라얀의 급작스러운 부음이 들려오자 노리오는 만사를 제치고 잘츠부르크로 달려갔다. 그 무렵 노리오는 소니에서 카라얀의 영상작품을 제작해 시판하기 위한 논의를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노리오는 바쁜 비즈니스 스케줄에도 음악가로서의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환갑이던 1990년에는 도쿄필하모니를 지휘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포츠담 광장에 세운 소니센터 낙성식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해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그는 2001년 가을 베이징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도중에 쓰러졌고, 그로 인해 반세기 동안 정든 회사를 떠나 치료와 요양에 전념하기에 이르렀다.

노리오는 15세 때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자전기록 ‘오가 노리오, 열다섯에 꿈을 말하다’에서 그는 독자에게 이렇게 권했다.

“내가 미답(未踏)의 길을 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여러분도 자신의 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꿈을 향해 걸어가길 빈다.”

오가 노리오가 마지막 정열을 바쳐 지은 음악홀에는 ‘가루이자와 오가 홀’이라는 간판이 붙었다. 객석 800석, 스테이지 면적 150㎡, 천장 높이 14.5m로 2005년 봄에 개관했다. 홈페이지에서 공연 스케줄을 살펴보니 2008년 5월초에 ‘오가 노리오 지휘 도쿄필하모니 교향악단’이라고 적혀 있다. 팔순이 지척인 양반이 더구나 요양 중인 몸으로 지휘봉을 잡는다니, 이런 걸 두고 진정한 노익장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장례식도 마다한 미련 없는 삶 -혼다 소이치로

소니 전 명예회장 오가 노리오,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태평양전쟁 패전 후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일본, 그 일본 경제계에 ‘하느님’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두 명의 기업가가 있었다. ‘경영의 하느님’과 ‘기술개발의 하느님’. 앞은 세계적인 전기 메이커 마쓰시타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요, 뒤는 역시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 혼다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다.

1991년 여름, 일본 신문에 묘한 사진 한 장이 실렸다. 부음을 듣고 달려온 문상객을 문전축객하듯 돌려보내는 고약한 광경의 사진이었다. 장소는 도쿄 시내 아오야마에 자리 잡은 혼다의 모기업 혼다기연공업 본사 빌딩.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별세 뉴스가 세상에 알려진 다음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가뜩이나 자동차 탓에 길이 막혀 서민들이 애를 먹으니 절대 내 장례식은 치르지 말라!”는 소이치로의 별난 유언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의 창업자가 문상객들이 승용차를 타고 몰려들 것을 염려하여 장례식 자체를 거절했다니 뉴스가 되고도 남았다. 유족과 지인들은 장례식 대신 ‘감사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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