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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성 전 해군 2함대사령관의 연평해전 비화

“전투 앞두고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상부 지시에 곤혹”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박정성 전 해군 2함대사령관의 연평해전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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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성 전 해군 2함대사령관의 연평해전 비화

1999년 6월15일 한국 고속정에 선제공격을 했던 북한 경비정(왼쪽)이 포사격을 받고 침몰하고 있다.

6월6일 현충일 아침 6시. 박 제독은 북한 경비정의 NLL 월경(越境) 보고를 받았다. 올 것이 온 것이다. 곧바로 사령부 지휘통제실로 가보니 북한 경비정 3척이 어선 20여 척을 이끌고 NLL 이남 2~3㎞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함포를 우리 함정에 조준한 상태였다. 도발이 시작됐다고 판단한 박 제독은 함대 소속 모든 함정을 비상소집하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당시 NLL 침투 등 북측의 도발에 대한 우리 해군의 대응 작전은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5단계로 진행됐다. 하지만 사격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NLL을 고수하되 절대로 선제사격은 하지 말라는 게 상부 지침이었다. 즉 어떠한 경우에든 적이 쏘기 전엔 먼저 쏠 수 없었다. 거기에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확전을 하지 말라’는 주문이 덧붙여졌다.

이에 대해 박 제독은 “상부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먼저 맞지 않으면 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이 같은 지침은 현장에서 작전을 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됐다”고 개탄했다.

“박 제독을 괴롭히지 말라”

고속정의 임무인 차단기동은 사실 장병들의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근접 상태에서 북한 함정이 먼저 쏘면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몸으로 때우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6월6일 아침 일찍부터 남진한 북한 함정은 우리 고속정이 진로를 차단하자 선체공격을 시도했다. 이에 고속정들은 고속 포위기동으로 북한 함정의 장비 고장과 기름 소모를 유도했다. 북한 함정은 우리 고속정보다 덩치는 컸지만 속도는 느렸다.

“타이탄 트럭에 그랜저 승용차로 맞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고속정으로 하여금 적선의 꽁무니를 뒤쫓게 했습니다. 선체가 무겁고 기름 사정이 좋지 않은 북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을 잡으려다 기관고장을 일으키곤 했죠.”

북한 함정들은 밤에 철수했다가 다음날 날이 밝으면 다시 NLL을 넘었다. 포위기동으로 맞선 우리 고속정들과 물고 물리는 대치상태가 6월8일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북한 함정은 6척으로 늘었고 대담하게도 NLL 남방 11㎞까지 내려왔다. 그 뒤로 북한 어선 20여 척이 붙어 다녔다. 노골적인 영해 침범이었다.

6월9일 우리 고속정 한 척이 북 함정에 들이받혀 왼쪽 현측(뱃전)이 4m가량 찢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해군사관학교 축구선수 출신인 고속정 편대장이 선체 충돌을 시도하는 북 함정에 맞서 “박을 테면 박아보라”고 버티다가 피해를 본 것이다.

이날 밤 북한 함정 1척이 NLL 남방 13.7㎞까지 침범해 새로운 도발을 감행했다. 자신들이 1973년부터 주장해온 12NM 영해선의 기준인 해상경계선 꼭짓점에 어망 부이 7개를 묶은 뭉치를 설치한 것이다.

“그 보고를 받는 순간 ‘이건 전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꽃게 도발이 아니라 NLL 무력화를 노린 의도적인 도발로 판단됐기 때문이죠. 즉각 상부에 보고해 ‘국지전 가능성이 높으니 육군과 공군의 지원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위에선 묵묵부답이더군요. 한 상급 지휘관으로부터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책임지라’는 말도 들었죠.”

당시 작전 지휘계통은 2함대사령관-작전사령관-합참의장-국방부 장관-청와대였다. 보고나 지시가 단계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電文) 형태로 통신망을 타고 모든 지휘라인에 동시에 전파되는 시스템이었다.

어뢰정 출현에 전투임박 예감

박 제독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 지시였다. 군에서 명령은 간결하고 명확해야 한다.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지시는 간결하기는 해도 명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슬기롭게 싸워서 이기라는 건지, 슬기롭게 타협하라는 건지, 슬기롭게 피하라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지시였다.

그나마 얘기가 통하는 사람은 육군 대장 출신인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었다. 박 제독은 조 장관과 하루에도 몇 차례나 통화하면서 작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조 장관은 박 제독의 상급 지휘관들에게 “박 제독에게 자꾸 전화해 괴롭히지 말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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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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