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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 독도 영유권 국제적 재선언

‘석도(石島)는 독도(獨島)’

  •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 yhshin@kimkoo.or.kr

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 독도 영유권 국제적 재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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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 독도 영유권 국제적 재선언

5월29일 독도연구보전협회 주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발굴한 새로운 사료들을 근거로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다시한번 입증했다.

다음은 대한제국 답서 숫자에서 ‘동서가 60리오 남북이 40리니 합 200여리’라고 한 것 가운데 ‘합 200여리’라고 한 부분을 일본 측은 고의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합 200여리’라고 한 것은 ‘거리’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함이 정당하다. 만일 일본 측의 주장처럼 이것을 ‘범위’로 해석한다면 합은 면적이 되어 60리×40리=2400(평방)이므로 ‘합 2400리’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합 200여리’는 범위가 아니라 거리임이 명백하다.

황성신문 기사는 대한제국 내부가 울도군에 소속한 석도는 울릉도로부터 ‘합 200여리’에 있는 섬임을 통보한 것으로, 이를 km로 환산하면 ‘합 80km+餘(알파)km’이다. 현재의 실측으로는 울릉도로부터 독도까지 거리가 92km이므로, ‘餘(알파)’가 12km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논의돼야 할 것은 오식의 문제다. ‘동서 60리, 남북 40리, 합 200여리’에서, 동서 60리가 160리의 오식인지, 혹은 합이 100의 오식인지, 앞의 두 숫자와 합이 일치하지 않는 점이다. 이것이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獨島와 石島

독도로부터 동서 60리, 남북 40리는 울도군수 심흥택이 보고한 ‘울릉도로부터 100여 리의 독도’를 연상케 한다. 울도군수 심흥택은 일본이 자국의 통치 행정관리 지역인 독도를 몰래 일본영토로 편입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1906년 3월 강원도 관찰사를 거쳐 중앙정부에 올리는 긴급보고에서 ‘本郡所屬 獨島가 在於本部外洋 百餘里옵더니…(울도군 소속 독도가 울릉도의 바다 밖 100여 리니)’라고 하여 울도군에 소속되어 울도군수가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독도가 울릉도로부터 100여 리의 거리에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동해의 중앙 수역에는 큰 섬이 울릉도와 독도밖에 없다. 죽서도는 울릉도에 지극히 가까운 작은 바위섬에 불과하다. 울릉도에서 60리든, 100리든, 200리든 존재하는 섬은 석도(독도)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는 독도로부터 392리(157km) 동남쪽에 일본의 오키섬(隱岐島)이 처음 나온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1900년 칙령 제41호에서 울릉군수가 소속 관리하는 섬이 울릉도와 죽도와 석도라고 했으니, 황성신문 1906년 7월13일자 기사(대한제국 내부의 공문서)에서 울릉도로부터 석도까지의 거리가 ‘합 200여리’라고 했다면 석도가 곧 독도임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좋은 증명자료가 되는 것이다.

‘석도=독도’임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제정 공포과정을 알아보기로 한다. 대한제국 1900년 칙령 제41호는 처음부터 국제적으로 일본의 한국 영토에 대한 도발 방지를 동기로 하여 제정 공포된 것이다.

일본이 청일전쟁(1894~95년)에서 승리하자 일본인들은 불법으로 개항장이 아닌 울릉도에 떼를 지어 밀입국해 거류하면서 벌목과 어업에 종사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대한제국 내부대신은 1899년 9월15일 외부대신에게 일본공사관에 요구하여 울릉도에 침입한 일본인들을 기한을 정해 돌아가게 하고, 불통상(不通商)항구에 밀수한 것을 조사 처벌해 영구히 두절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외부대신은 내부대신의 요청사항을 일본공사에게 요구했다.

대한제국 정부의 이러한 요구에 일본공사는 9월22일 ‘불통상항구의 외국인 밀무역에 대한 단속은 귀국 지방관의 직권이므로 대한제국 정부에서 지방관에게 일본인들의 철수를 알리도록 권고한다’는 매우 오만불손한 회답을 보내왔다.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1899년 10월 내부관원 우용정을 책임자로 한 국제조사단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사정을 정밀히 조사하기로 했다. 이 조사단에는 부산해관세무사인 영국인 라포트(E. Laporte, 한국명 라보득)와 재부산일본부영사관보 아카쓰카 쇼스케(赤塚正助) 및 일본인 경부(경찰, 渡邊鷹治郞)가 참가해 1900년 6월1일부터 5일간 울릉도 일대의 사정을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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