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 꺼풀 벗겨본 미국 2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빈곤할수록 살찌는 미국 식탁 아이러니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3/4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즈마켓(Whole Foods Market)과 한국에도 입점한 코스트코(Costco)에서 동일한 제품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스테이크용 쇠고기 가격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홀푸즈에서 판매되는 고기에는 일일이 ‘항생제를 먹이지 않았음’ ‘사료는 먹이지 않고 풀만 먹였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다.

유기농 식품은 가격이 비싸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류층에 의해 소비돼왔으며 수천조원에 달하는 미국 식료품 시장의 2% 남짓을 차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2006년 대형 슈퍼마켓 체인 월마트가 유기농 작물을 저가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유기농 식품의 민주화’가 시작됐다.

월마트의 유기농 시장 진출은 여러 논란을 낳았다. 유기농 식품의 생산 자체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작물을 재배한다는 윤리적 동기에서 시작된 만큼, 대형 마트에 의한 상업화는 본래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유기농 산업이 대형화하면 기존의 소규모 농가들이 도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유기농 작물이 넘쳐나면 유기농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모호해져 소비자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류층만 누릴 수 있는 사치로 여겨졌던 유기농 작물을 보다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전체인구 1/3이 다이어트 경험



이렇듯 미국의 현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해서조차 돈이 필요하며, 가난한 계층에게 ‘배부른 돼지’ 노릇을 덧씌우고 있다. 이쯤 되면 식생활과 그로 인한 비만은 개인의 습관 탓으로 돌릴 수 없는 문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야 나는 왜 미국이 비만환자를 단순히 자기관리에 게으른 사람이 아닌, ‘음식중독자’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건강한 식단을 선택하려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사회가 비만의 모든 책임을 구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노력하는 만큼 거둔다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사회가 아닌가. 미국의 다이어트 산업은 비만을 개인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번성해왔다. 물론 비만치료에도 개인의 의지 이외에 돈이 필요하지만.

‘뉴욕타임스’의 한 기사제목은 이런 현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이 신문은 2005년 ‘꿈과 약을 팝니다(Selling Dreams and Drugs)’라는 제목 아래 비만 클리닉의 실태를 보도했다. 현재 미국에는 2500명의 의사가 비만관리 시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일부 의사들이 처방전을 남발하고 약사면허 없이 약을 판매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는 것. 비만분야는 아직 의료계 내의 주류가 아니라서 검증되지 않은 시술이 행해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보도에 따르면 상당수 의사가 크고 작은 의료사고에 연루된 뒤 원래의 진료과목을 접고 다이어트 업계에 뛰어들고 있다.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덜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현찰장사’라서 고수익을 보장받는다. 외과의사이던 슈워츠씨는 잦은 의료사고로 주 정부로부터 수술집도를 금지당한 뒤 비만 클리닉을 열었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거슨러먼그룹(Gerson Lehrman Group)에 따르면 미국 다이어트 산업의 규모는 2007년 현재 연간 550억달러(약 55조원)로 전세계 다이어트 산업의 7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인구 중 7500만명이 다이어트를 경험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세 명 중 한 명꼴로 다이어트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미국 아동인구의 17%가 비만이고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다이어트 산업은 잠재적 소비자가 약속된 황금어장이다. 말하자면 대량소비를 유도하는 식품산업과 절제를 강요하는 다이어트 산업이 절묘한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과체중이라면 표준 체형의 정의가 달라질 법도 한데, 여전히 그들의 욕망은 마른 체형을 향해 있다. 실제로 다이어트에 대한 미국인의 강박은 엄청나다. TV나 잡지에는 각종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가 넘쳐난다. 최근에는 10대들의 거식증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심각한 것은 10대들의 거식증이 많은 경우 자발적 동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10대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거식증 환자가 되는 법’을 배운다. 실제로 한 웹사이트에는 음식을 먹은 뒤 토하는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손가락보다 칫솔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거식증의 90%는 12~25세 여성에게 발생하며 10대 인구의 1%가 거식증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그러나 거식증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병을 알리지 않으며 병원을 찾는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에 실제 환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3/4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목록 닫기

‘정크푸드’로 웰빙하라?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