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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2

창의력은 재미가 만든다

빗자루로 마당 쓸지 말라, 타고 날아라!

  •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창의력은 재미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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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영의 본질, 스토리텔링

창의력은 재미가 만든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왼쪽)와 애플컴퓨터사의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운영체계만큼이나 인생 스토리텔링도 대조적이다.

창조경영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네이버의 지식인에 들어가 검색해봤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특성’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창의성이 정의될 수는 없는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 상상도 못하는 것? 아니 도대체 그런 것을 어느 누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면 일단 머릿속에 떠올라야 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려면 어디선가 본 적은 있어야 한다. 인간이 생각하는 행위를 심리학에서는 ‘표상(representation)’이라 한다. ‘보여주다’의 ‘presentation’ 앞에 ‘다시’를 의미하는 ‘re’를 붙인 것이다. 즉 생각한다는 것은 어디선가 본 것을 머릿속에 ‘다시 보여준다’라는 의미다. 머릿속에 무언가를 다시 보여주려면 어디선가 본 적은 있어야 한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절대 처음 보는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인간의 생각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징과 문장. 예를 들어 내가 “창조경영이란 표현은 틀렸어”라는 식으로 중얼거릴 때, 내 생각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고는 논리적으로, 즉 문장으로 그 틀린 내용을 서술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그러나 “에로티시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누군가 물으면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망사 스타킹’을 떠올린다. 에로티시즘에 대한 내 생각은 문장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망사 스타킹이라는 상징으로 매개된 일련의 장면, 예를 들면 ‘빨간 망사’ ‘파란 망사’ ‘찢어진 망사’ 등을 떠올린 후, 비로소 나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내 의견을 문장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견조차 논리적 서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타지에 근거한 생각이다. 예를 들면 ‘구멍이 큰 녹색 망사 스타킹을 신은 여성이 왠지 사랑스럽다’와 같은 아주 황당한 이야기를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사고의 과정을 가능케 하는 문장과 상징을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생각의 도구’ 또는 ‘기호(記號)적 매개(semiotic mediation)’라고 정의한다. 사용되는 도구에 따라 사고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이 비고츠키 문화심리학의 핵심내용이다.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 사람과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사고방식을 매개하는 매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고츠키의 이론을 좀더 확대해서 해석하면 알파벳 문자, 즉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민족과 표의문자를 사용하는 민족의 사고체계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표의문자(상징)로 매개되는 사고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축약적이고 다의적인 반면,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로 매개되는 사고체계는 논리적이고 명확한 의미전달에 유리하다. 예를 들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山是山, 水是水)’와 같은 선문답은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는 서양인에게는 동어반복에 불과할 뿐이다. 이 황당한 문장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며 심각해하는 동양인들이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황당한 문장에 관해 동양인들은 오늘도 참 많은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산이 물이 되지 못하고, 물이 산이 되지 못하는’ 존재의 본질로부터 ‘산은 산이고, 물은 셀프다’에 이르기까지….

중세까지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던 중국이 근대발전에 뒤지고, 서양에 형편없이 당한 것은 그들의 표의문자가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매개하기에는 너무 다의적이고 추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이 근대 이후 서양의 근대성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중국을 제치고 동양의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까닭은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를 동시에 사용하며,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편의에 따라 사용하던 일본인들의 언어습관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서양의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번역하기에 아주 좋은 실용적인 문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상징적 사고 vs 논리적 사고

합리적 사고에 근거한 과학적 세계관의 근대사회에서는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했다. 그러나 21세기엔 상황이 사뭇 달라진다. 세계가 탈중심적인 네트워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당황한 근대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후기근대’라고 한다. 여전히 근대의 연속성으로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탈근대’라고 한다. 더 이상 근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탈근대’이든, ‘후기근대’이든, 세상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이 새로운 환경에서는 다의적이고 상징적인 사고가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21세기 들어 아시아가 새롭게 주목받는 것이다. 서양은 말 그대로 해가 지는 서쪽일 뿐이다.

전세계에서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를 동시에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근대 이후, 한국과 일본이 이룬 그 유례없는 발전과 두 나라가 사용하는 언어는 서로 무관하지 않다. 두 나라의 언어, 즉 사고의 도구가 특별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얄미울 만큼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일본에 비해, 한국은 ‘전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글’ 때문에 어렵게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사고방식의 거대한 두 축, 즉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아주 쉽게 사용할 수 있음에도 한 쪽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오렌지’냐 ‘오륀지’냐 와 같은 영어몰입교육 논쟁은 정말 미시적이고 철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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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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