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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박경철의 증시 뒷담화 7

‘기술적 분석’의 명과 암 上

다우와 리버모어를 잊어라! 럭비공 튈 방향이 보일지니…

  • 박경철 의사, 안동신세계병원장 donodonsu@naver.com

‘기술적 분석’의 명과 암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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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 이론의 두 가지 맹점

‘기술적 분석’의 명과 암 上

“인간은 과학적 실제보다 꿈을 믿고 싶어한다”고 역설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

다만 박스권에 대한 해밀턴의 인식은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박스권을 이탈하는 방향으로만 주가가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주가는 그가 예측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스권을 형성한 주가가 위쪽으로 치솟건, 아래쪽으로 곤두박질치건 주가의 방향성은 결국 5:5였다. 즉, 주가가 박스권을 이탈하는 방향으로 추종매매를 하면 수익을 낼 것이라고 믿은 해밀턴의 생각은 결론적으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그가 예전의 주가자료를 바탕으로 검증한 박스권에 대한 생각과는 달리 이후의 주가는 놀랍게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박스를 상향 이탈한 주가가 다시 박스를 하향 돌파하면서 급락한다든지, 혹은 박스권을 하향 돌파함으로써 보유주식을 모두 매도했는데 그 후 주가가 급등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당시 주식시장의 거래량과 거래 시스템에선 특정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주가를 조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실제로 해밀턴의 주장을 경청한 많은 자본가는 박스권 주가를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박스권 돌파’라는 그림을 그려낼 수도 있었으며, 박스권 하향 돌파로 인해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하거나 보유주식을 내던질 때 오히려 강력한 매수 드라이브를 걸어 수많은 개인투자자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갔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두 가지 점에서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세력’에 관한 것이다. ‘세력(a man of influence)’이란 당시 미국시장에서 쓰이던 용어다. 만약 당신이 이 말에 관심이 있고, 이 말에 호기심을 갖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1만달러만으로도 주가를 5% 이상 움직일 수 있고, 체결가와 현재가가 증권사마다 다르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거래량이 적고 시가총액이 작은 일부 종목을 대상으로 시세를 조작하는 불공정한 투자자들이 존재하지만, 똥은 피하면 그만인데 굳이 그 똥 속의 구더기를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굳이 당신이 똥 푸는 사람 옆에서 코를 막아쥐고 행여나 그 안에서 누군가가 빠뜨린 금반지라도 하나 나올까 노심초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주가는 마치 공기나 물과 같아서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는 존재다. 누군가가 그것을 쥘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가는 손에 움켜쥔 한 줌의 공기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버린다. 주식투자를 계량화할 수 있고 그 계량화의 틀 안에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당신이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만 해밀턴의 두 번째 생각, 즉 박스권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두 개의 주가평균을 비교하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엄청난 자본이 몰리고 시가총액이 수조원을 넘는 기업의 주가가 박스권을 형성했다면 해밀턴의 생각을 빌려 그 박스권의 방향성을 예측해볼 수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추세상승을 이어가는데 특정 대형종목이 상승 중에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면, 그 박스의 이탈방향은 보다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박스권에 대한 해밀턴의 생각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진전이었다는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반대로 가야 수지맞는다’

이런 이론들이 막 성립되기 시작했을 때, 정작 이 이론을 바탕으로 투자해 재미를 본 사람은 따로 있었다. 다우나 해밀턴은 이론가였지 투자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시 리버모어는 투자자였다. 리버모어는 1877년생으로 14세의 나이에 사설 주식시장의 시세판 보조원으로 출발해 15세 때 단돈 5달러를 들고 전업투자자로 나선 후 일생을 주식시장에서 보냈다.

그는 풍운아였다. 주식투자로 무려 4번의 파산을 겪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하지만 이 전설적 투자자도 상품 선물투자 실패로 5번째 파산을 겪은 뒤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가 입은 손실은 그 어떤 수단으로도 복구가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호텔방에서 입에 권총을 물고 자살함으로써 63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리버모어의 인생행로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1990년대 후반 성장주 거품시대에 돈을 번 소수의 개인투자자가 ‘전문가’로 불리며 추앙받던 시점에 출발해, 젊은이들이 실전 투자대회에 참여하면서 등장한 ‘실전고수’의 시대, 그리고 최근 대학마다 붐을 일으키는 주식동아리의 ‘주식연구회’ 열풍까지…. 제2의 리버모어를 꿈꾸는 많은 이가 전업투자자, 혹은 전문투자자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이들의 행로가 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행보가 리버모어의 그것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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