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을 버린 그가 갑옷마저 풀고 청계산을 올라 마침내 사찰 경내로 들어섰을 때 날이 밝았다. 사내를 처음 발견한 승려 묘법(妙法)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타인들 눈을 피해 승방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묘법이 먼저 입을 뗐다.
“성공했나? 금상은 제거됐겠지?”
사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낙담한 묘법이 염주를 쥐고 눈을 감았다. 연거푸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던 왕에게 절의 전답과 노비를 몰수당한 청계사는 몰락 직전이었고 유일한 희망은 원수 같은 왕이 제거되는 것뿐이었다. 사내가 쇳소리 섞인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스님. 실은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하필이면 어제.”
인조반정의 오백 결사대
하필이면 그 순간 찾아온 깨달음에 대해 사내는 설명하고 싶었다. 전날 아침, 그는 임진강 하류 북안에 자리 잡은 덕진산성에서 출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병(哨兵)이던 그는 임진강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강의 곡류 지점에 푸른 갈대숲으로 보이는 초평도가 있었고 그 너머는 파주 땅이었다. 흰꼬리수리와 따오기가 날아오르고 민들레와 질경이가 제멋대로 자라 있는 평범한 봄날이었다. 그때 깨달음이 찾아왔다.“어떤 깨달음이었나?”
묘법의 질문에 사내가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묘법과 그는 한 해 전 청계사에서 간행한 ‘법화경’ 덕분에 인연을 맺었더랬다. 사내의 집안은 절에 필요한 자금을 대대로 시주해온 단월가(檀越家)였다. 경전 간행 기념 법회에 초대된 사내는 묘법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차츰 친밀해진 두 사람은 왕에 대한 분노를 공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사내가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훔치며 대답했다.
“깨달음은 저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됐습니다.”
깨달음은 초평도를 바라보며 잠시 현기증을 느끼던 순간 괴상한 전율로 엄습해왔다. 그는 처음에 그걸 죽음에 대한 공포와 혼동했다. 덕진산성에 집결해 반정을 준비하던 병사들은 지휘관이던 장단부사 이서(李曙)로부터 출전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장단부병 500여 명은 혹독한 훈련으로 죽음에 단련돼 있었지만 뒤늦게 반정군에 합류한 그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내면에서 울렁이는 전율과 불안은 마치 죽음 직전의 초조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불안은 이상한 설렘으로 변했다가 자신과 함께 우주 전체가 녹아내리는 대적멸(大寂滅)과 흡사한 체험으로 이어졌고 그는 혼절했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기척에 정신을 차린 그를 부사 이서가 호출했다. 이서는 찰갑(札甲)으로 무장한 채 막사에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 나란히 놓인 환도와 투구가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박달나무로 만든 곤방(棍棒)을 손에 움켜쥔 이서가 천천히 물었다.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의 서자 김유(金琟)라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김유가 상대의 살기에 압도되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고변(告變)의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아니 그럴 미세한 가능성만 느껴도 부하들을 참수하거나 곤방으로 머리뼈를 박살내던 이서였다. 뭔가 생각에 잠긴 이서가 곤방을 무릎에 내려놓으며 다시 물었다.
“죽는 게 두렵나?”
김유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선대왕 선조의 장인인 김제남(金悌男)이 그의 부친이었으니 금상에 의해 살해된 영창대군 그리고 영창을 낳은 소성대비(昭聖大妃·훗날의 인목대비)가 각각 그의 조카와 누이였다. 계축년에 북인들의 모함을 받아 사약을 받은 부친은 몇 년 뒤 부관참시에 처해졌고 대비는 서궁인 경운궁에 유폐되어 있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그가 죽음이 두려울 리 없었다. 그가 거칠게 고개를 가로젓자 자리에서 일어난 이서가 다가서며 물었다.
“네가 비록 서출이지만 효심과 충심은 나와 매한가지라 믿는다. 그렇겠지?”
김유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침묵하던 이서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연흥군께서 연천현감 시절 널 얻었다고 들었다. 네 어미가 비록 천비(賤婢)지만 죽기로 싸워 선친 원수를 갚거라.”
말을 마친 이서는 물러가라는 손짓을 하고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김유는 조금 전의 섬광 같은 깨달음에 대해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막사를 나오자마자 무장 명령이 떨어졌고 마지막 식량으로 북어와 인절미가 지급됐다. 반정군은 즉시 착호군으로 위장했다. 왕의 발병부(發兵符) 없는 병력 이동은 엄히 금지돼 있었지만 착호군만은 예외였다.
창의문을 뚫고

“탈영까지 할 만큼 절박했나?”
근심 가득한 표정의 묘법이 질문할 무렵 청계사 본당을 소제하는 부산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두꺼운 가죽버선인 다로기를 벗고 이리저리 찢긴 다리의 상처를 천으로 닦아내던 김유가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잔인한 복수심이 사라졌습니다. 눈처럼 녹아버렸지요. 그곳에 있을 이유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연서역(延曙驛)으로 이동하는 도중 탈출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어디쯤에서 벗어났나? 들켜서 뒤를 밟히진 않았겠지?”
“집결지 홍제원(弘濟院)에 모여 있던 한양의 선봉대와 만날 때까지 빈틈을 찾지 못했습니다. 장단부병들은 서로를 감시하도록 짜여 있었거든요.”
“어떻게 그 삼엄한 감시를 뚫고 여기까지 왔냐니까?”
“홍제원에 닿고 보니 그 한양의 선봉대라는 게 오합지졸이었습니다. 대오도 없었고 무기도 몽둥이와 낫이었지요. 우리 부대가 그들과 뒤섞이며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홍제원은 왁자지껄 떠드는 온갖 시정잡배로 넘쳐나 장터처럼 소란스러웠다. 술에 취해 끌려나온 하인 중엔 자신이 무슨 일로 불려나왔는지 모르는 자가 수두룩했다. 잔치 자리인 줄 알고 꽹과리를 치는 자, 횃불을 떨어뜨리고 우는 꼬마, 싸리비를 무기로 쥔 머슴이 뒤섞여 서로 모인 연유를 묻느라 바빴다. 소동은 반정군이 옹립한 능양군(綾陽君·훗날의 인조)이 나타나고서야 멈췄다.
김유는 왕으로 인해 형과 아버지를 잃은 능양군의 눈빛에서 자신과 똑같은 필부의 복수심을 발견했다. 이미 분노로부터 벗어난 그는 다가오는 능양군의 시선을 외면해야 했다. 그냥 목도하기 고통스러웠다. 김유를 스쳐 지난 능양군이 열병을 마치고 이서에게 지휘용 깃발인 초요기(招搖旗)를 넘겨주자 사방에서 함성이 일었다. 반정은 우매한 복수심과 맹목적 부화뇌동 속에 들뜬 축제처럼 그렇게 시작됐다.
마침내 창의문을 부수고 도성 안으로 진입한 이서의 부대는 궁궐수비대인 금군(禁軍)은 물론 비명을 지르며 도망하는 궁인까지 닥치는 대로 베었다. 피범벅의 살육이 이어지는 동안 변변한 저항은 없었다. 반정군에 포섭된 훈련대장 이흥립(李興立)이 훈련도감 정예병을 최대한 묶어두고 있어서였다. 그즈음 김유는 말머리를 돌려 궁을 벗어났다.
전장에서 떠오른 전생
“이제 그 깨달음에 대해 들어보세.”부대를 이탈한 경위를 전해 듣고 안심한 표정이 된 묘법이 물었다.
“죽지 않는 삶, 불멸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덕진산성에서 김유는 타오르는 듯한 신열 속에 자신이 불멸의 존재였음을 깨달았다. 눈앞의 현실은 갑자기 권태로워졌고 풍경은 찌그러져 보였다. 기이하게 왜곡된 세계 한복판에서 그는 하염없이 다른 존재로 부화되며 영겁 속을 방황하고 있었다. 그가 겪는 모든 일은 처음이 아니었고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반복된 것들이었다. 그게 왜 초평도를 바라보던 그 순간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끝없이 이어진 자신의 삶을 통해 무한에 연결됐고 이윽고 두려워졌으며 최후엔 한없이 외로웠다.
천신만고 끝에 도강해 한강 남쪽 노들나루에 도착했을 때, 김유는 절박한 고독과 희열에 감싸인 채 갈 곳을 정하지 못해 머뭇대고 있었다. 그는 피 묻은 수통에 남아 있던 물을 천천히 마셨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어떤 삶이 상기된 건 그 순간이었다. 기억이 한 지점으로 파동치며 역류했고 그는 자신이 태어난 정유년 8월로 되돌아가 바로 직전 소멸한 또 다른 자신의 삶들과 마주쳐야 했다.
임진년에 발발한 왜란이 마무리되던 정유년(1597), 왜병이 다시 쳐들어왔고 그해 여름 김유가 태어났다. 그가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나는 순간 전라도 남원에선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었다.
정유년 8월, 남원성에선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왜군과의 교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유는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 휘하에서 성의 북문을 방어하던 팽배수(彭排手·방패병)였다. 조명연합군의 전략은 애초 출발이 잘못되어 있었다. 연합군을 지휘한 명군 부총병(副摠兵) 양원(楊元)은 어리석게도 험지의 요새인 교룡산성을 버려두고 평지인 남원성을 전투 장소로 삼았다. 조선군 누구나 필패의 선택임을 알았지만 교만한 양원을 제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사전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팽배수였던 김유는 본디 전라군영 소속 편비(偏裨·대장 아래 부장의 다른 이름)로서 이복남이 남원성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정했을 때 그를 따라 성에 들어간 50명의 결사대 중 한 명이었다. 남원성의 전력은 상대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부대와 애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세였다. 남원성에 들어가는 건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전라병사 이복남은 죽을 자리인 줄 알면서도 남원성에서 전사하고자 했다. 50명의 편비가 그와 함께 죽기로 결의하던 날 소나기가 내렸고 결사대는 비를 맞으며 남문을 통해 조용히 입성했다.
정유재란의 오십 결사대

조선군의 방패는 강한 왜검에 두 동강 나기 일쑤여서 김유가 속한 팽배수들은 사수와 장창수들을 보호할 수 없었다. 최후까지 북문에서 저항하던 편비들은 마침내 이복남을 중심으로 둥근 원형진을 만들었다. 방패를 버리고 창을 쥔 김유도 그 안에 있었다. 이복남이 외쳤다.
“어차피 우린 여기서 죽는다. 한 명의 왜적이라도 더 죽이고 떠나자.”
편비들의 진법은 두 겹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깥 원의 장창수가 접근하는 왜병을 찌르고 몸을 숙이면 안쪽 원의 편곤수(鞭棍手)가 도리깨 모양의 편곤을 휘둘렀다. 찌르고 휘두르고를 그렇게 끝없이 반복했다. 기병이 주로 쓰는 무거운 편곤을 휘두르던 안쪽의 편비들이 먼저 지쳤다. 찌르고 휘두르는 속도가 조금씩 둔해졌고 성벽에 몰린 결사대는 반원 형태가 되었다. 가볍게 싸우기 위해 갑옷을 푼 김유는 허리춤의 편도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성벽 위에서 조총 격발음이 울렸다.
“조총에 맞아 전멸했군?”
묘법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김유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전 그런 식으로 수도 없는 세월을 싸우며 살았습니다.”
“항상? 그렇게 죽이고 죽으면서?”
“그렇습니다. 이 투쟁을 이제 멈추고 싶습니다.”
묘법이 미소를 머금고 벽에 등을 기댔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묘법이 망설이다 간신히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양 소식을 알아보도록 하지. 우선 자두게.”
묘법이 방을 나가고 혼자 남은 김유는 비로소 몸을 누여 깊은 잠에 빠졌다. 동료의 비명과 매콤한 화약 냄새가 꿈자리를 휘저었다. 마흔아홉 명의 편비가 저마다의 운명을 호소하다 제각각 다른 생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악귀의 모습이었다. 꿈속의 김유는 자신의 정체 역시 악귀였음을 비로소 자각하고 전율했다. 50명의 악귀가 우주를 떠돌며 저지른 만행이 눈앞에 차례로 펼쳐졌다.
무수한 살육의 기억을 되풀이하던 그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을 때 절은 다시금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봄비가 후드득거리며 내리다 이내 그쳤다.
김유는 자신의 기억에 파고든 여러 차례의 삶을 확신할 수 없었다. 불멸의 운명 역시 환상 같기만 했다. 그 모든 게 사실이라면 자신은 지옥을 건너온 셈이었다. 호롱불을 켜고 우두커니 앉아 있던 그는 문득 묘법의 얼굴에 감돌던 미소를 떠올렸다. 자신이 겪은 기이한 하루가 ‘법화경’의 미묘한 응보일지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청계사는 김유 집안이 대대로 가문의 안녕을 빌던 복전(福田)이었다. 이런 곳에서 출가하면 어떨까 상념에 젖던 그는 묘법을 찾기 위해 승방의 문을 살며시 열었다.
※각설 : 이 글은 1623년 4월 11일 벌어진 인조반정을 배경으로 한다. 노론 중심의 반정은 12일 새벽에 성공해 광해군은 폐위되고 집권 세력이던 북인들이 척결됨으로써 노론의 시대가 열렸다. 주인공 김유와 청계사 스님 묘법을 제외한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김유의 전생담을 구성하는 1597년 8월의 남원성 전투 역시 사실에 입각해 있다. 이복남과 50명의 편비 결사대 일화는 남원 의병장 조경남의 일기 ‘난중잡록(亂中雜錄)’에 의거했다.
또한 여러 토목사업을 벌이던 광해군에 의해 재산을 징발당한 청계사는 실제 1622년 ‘묘법연화경’을 간행했으며 지금까지 청계사가 보관하고 있다. 나약한 이미지와 달리 조선군은 실제론 매우 용맹했다. 남원성 전투에 참전한 의병과 조선군은 최후의 일인까지 장렬히 싸우다 전사함으로써 불리한 전황을 역전시켰다. 이름조차 남지 않은 그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고전환담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