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새 앨범 낸 ‘트로트 여왕’ 장윤정

“트로트 가수 설움도 겪었지만 이젠 자랑스러운 숙명”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 장소협찬·디어초콜릿(02- 3446-7251)

    입력2008-07-31 19:1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새 앨범 낸 ‘트로트 여왕’ 장윤정
    가수 장윤정(28)과의 인터뷰는 지난해 6월부터 약속돼 있었다. 하지만 워낙 스케줄이 빡빡한 데다, 이왕이면 신곡 홍보를 겸했으면 좋겠다는 소속사 뜻에 따라 지금까지 미뤄졌다. 소속사는 약속을 잊지 않고 새 앨범이 나오자마자 ‘신동아’에 연락을 해왔다.

    그녀의 첫인상은 방송에서 보던 명랑한 이미지와는 달리 무뚝뚝했고 심지어 차갑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촬영과 동시에 조금씩 온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인터뷰가 무르익자 ‘디어 초콜릿’이란 카페 이름처럼 분위기도, 내용도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커다란 눈이 반달모양을 그리며 활짝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인터뷰 후 “첫인상이 상당히 까칠해 보였다”고 하자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고 했다.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 신곡 ‘장윤정 트위스트’를 들었다. 경쾌한 트위스트 리듬에 맑고 발랄한 그녀만의 음색이 톡톡 튀어 흥을 더했다. ‘섹시댄스 퀸’ 엄정화도 최근 디스코풍 신곡을 내놓았으니 올여름은 아마도 춤바람이 일 모양이다.

    새 앨범 낸 ‘트로트 여왕’ 장윤정
    연예인의 중립성

    ▼ 곡은 직접 고르는 편인가요.



    “웬만하면 제가 다 결정하려고 해요. 그런데 제가 이걸 하겠다고 고집한다기보다는 사장님이나 프로듀서랑 의견 일치가 잘 되는 편이에요.”

    ▼ 곡을 선택할 때 기준이 뭔가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요. 요즘 유가 폭등, 촛불시위 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하잖아요. 국민도 어느 때보다 힘들고 지쳐 있고요. 그래서 제 노래를 통해서라도 활력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신나는 음악을 고른 거예요.”

    ▼ 말 나온 김에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런 문제에 대해 특히 연예인은 말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예인도 자기 생각과 소신이 있겠지만 그것을 드러내 얘기하는 것 자체가 팬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게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팬들에게 혼란을 주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 연예인은 무조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요.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도 중요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그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는 거죠. 저도 제 생각은 있어요. 표현을 안 할 뿐이지요.”

    ‘개인적으로 촛불집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지만 그는 “촛불집회에 모인 분들은 자기 뜻을 그렇게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연예인이 아니었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제 뜻을 표현했겠죠”라는 말로 에둘러 답했다. 장윤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정치적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수많은 연예인이 줄서기를 하던 대선,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지난 총선 때 한 뉴스 프로그램에 일일기자가 되어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 출마한 정동영 후보 부인(민혜경씨)과 정몽준 후보 부인(김영명씨)을 동행 취재한 적이 있다.

    새 앨범 낸 ‘트로트 여왕’ 장윤정

    장윤정은 가끔씩 어떤 행사 무대에 서면 자신이 노래자판기가 된 기분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 실제 만나보니 카메라 밖의 후보 부인들은 어떻던가요.

    “정치가의 아내라는 게 보통 어려운 자리가 아니구나 싶더군요. 정몽준 후보 부인은 카메라가 돌지 않는 와중에 재래시장에서 반찬을 사시더라고요. 처음엔 설정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물건마다 이건 조금 올랐네, 저건 그대로네 하고 상인들과 이야기하는데 물가를 잘 알고 있었어고요. ‘아, 저런 모습도 있구나’ 싶죠. 정동영 후보 부인은 정이 많은 것 같았어요. 사람은 나이가 들면 살아온 삶이 얼굴에 묻어난다고 하잖아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얼굴 표정에서 ‘참 정이 많고 인자하겠구나’ 느껴졌어요.”

    1990년대 이후 침체일로를 걷던 트로트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장윤정 덕이다. 그녀가 부른 ‘어머나’가 국민적 사랑을 받으면서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등장했는가 하면, 아이돌그룹까지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던 트로트를 10~20대에게까지 확산시킨 것은 어떤 대형스타도 이루지 못한 일이다.

    가벼워진 트로트?

    ‘어머나’를 시작으로 ‘짠짜라’ ‘꽃’ ‘이따, 이따요’ ‘첫사랑’ ‘약속’ 등 부른 노래마다 히트를 시킨 장윤정은 이제 ‘트로트를 부르는 젊은 여가수’에서 ‘트로트 여왕’으로 우뚝 섰다. 한 지상파 방송은 ‘장윤정 쇼’라는 이름으로 특별무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조용필, 이미자, 패티김 등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 평론가들은 종종 트로트를 ‘장윤정 이전과 이후’로 나눠 이야기하더군요. 그만큼 트로트 부흥에 기여한 부분도 있지만, 트로트가 가벼워졌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후배 트로트 가수들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미꾸라지 한 마리가 논두렁을 흐려놓았다’는 말을 안 들을 테니까요. 노래는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트로트라고 해서 시대를 등지고 갈 수는 없는 거죠. 윗세대가 부른 트로트와 요즘 트로트 중에서 어느 게 더 심도 있느냐를 따질 수는 없다고 봐요.”

    ▼ 요즘 신인들 노래를 듣다 보면 트로트를 희화화한다는 느낌은 안 드나요.

    “노랫말이 점점 자극적이 되는 것 같기는 해요. 멜로디도 간단한 리듬이 반복돼 자칫 성의 없이 들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대중이 그걸 사랑해주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 대중에게 인기가 있으면 된다는 건가요.

    “작품성이라는 게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중가요는 대중이 원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림도 누구나 딱 봐서 좋다고 느껴지는 게 좋은 그림인 것처럼 노래도 많은 사람이 비슷한 느낌을 받고 좋아하면 좋은 노래라고 생각해요. 대중이 원하지 않으면 그건 자기 혼자 듣는 음악이겠죠.”

    ▼ 트위스트, 고고 등 다양한 장르를 트로트라고 통칭해요. 기준이 모호한데, 트로트의 정의를 내린다면.

    “처음 데뷔하면서 내가 하는 음악이 뭔지는 알아야겠다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어요. 폭스트롯에서 유래했다고 하더군요. 여우의 발걸음처럼 ‘쿵짝쿵짝’하는 리듬이라 그렇게 됐대요. 그런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트로트’라 통칭되는 음악을 달리 부를 말이 없어요. ‘성인가요’라고 하자니, ‘애들은 안 불러?’ ‘야한 음악이야?’ 하는 반론이 나오고, ‘전통 가요’라고 하자니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예전에 나훈아 선배님이 ‘트로트의 이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 맞는 말 같아요. 제 목표가 있다면 좀 더 공부해서 트로트를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거예요.”

    ▼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공통분모가 뭘까요.

    “서민이 즐길 수 있는 노래, 서민의 삶과 애환과 정서를 담은 노래, 서민이 공감하는 노래라는 거죠.”

    ▼ 아직은 그걸 공유하기가 쉽지는 않을 나이 아닌가요.

    “연습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음을 내고 박자를 맞추는 차원의 연습은 아니고요. 전에는 드라마에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일부러 찾아서 봐요. 제게 부족한 삶의 경험을 드라마를 통해 간접경험하는 거죠. 물론 살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만 그걸 빨리 알려고요. 배우들의 감정표현을 많이 봐요. ‘아! 저런 식으로도 슬픔이 표현되는구나, 나도 이렇게 슬픔을 노래로 표현해봐야겠다’ 하는 거죠. 호흡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특히 느린 노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흡이 흐느껴야 맛이 살거든요.”

    ▼ 지금까지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트로트로 데뷔하기 전이죠. 일이 계속 꼬였어요. 기획사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안 되더라고요. 운동선수가 다리를 다친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어요. 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던 게 노래인데 그것을 못하니까 멍해지는 상황이었죠.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심장 대 심장

    요즘 장윤정은 가장 바쁜 가수 중 한 명이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한반도는 죄다 훑었고, 미국도 제주도 드나들 듯한다. 올해도 지난 2월과 6월 미국에서 단독콘서트를 가졌다.

    ▼ 미국 공연은 한국에서 할 때하고 많이 다른가요.

    “으으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재미 한인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 많아요. 정말 열심히 일하다 그날 하루 즐기시는 거예요. 고향이 얼마나 그립겠어요. 그래서 흘러간 노래들을 부르면 정말 좋아하세요. 옛 노래 하나하나에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짠해지는 게 느껴지니까 저도 관객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돼요.”

    ▼ 무대에서 관객들 감정이 느껴지나요.

    “그럼요.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 확실히 심장 대 심장이 만나는 것 같아요. 관객들이 흥분하면 저도 같이 가슴이 뛰어요. 반면, 제가 아무리 열창을 해도 관객들의 심장이 멈춰 있으면 아무런 느낌이 오지 않아요.”

    ▼ 가수들은 보통 앨범활동이 끝나면 몇 달씩 쉬는데 장윤정씨는 1년 내내 바쁘더군요.

    “데뷔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쉰 적이 없어요. 공연과 행사가 끝없이 이어졌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몸이 못 버티고 몇 번 위기가 있었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때도 있었고요.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이유를 못 찾겠더라고요.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 이유를 찾았다는 건가요.

    “이유를 못 찾고 헤맬 때도 무대에 올라가면 ‘아! 이거였구나!’ 하고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답을 얻었어요(웃음).”

    ▼ 그렇게 행사를 많이 가다 보면 ‘내가 이런 자리에 있어야 하나’ 싶은 때도 있었겠어요.

    “많죠. 무대가 좋고 나쁘고, 관객의 매너가 좋고 나쁘고의 차원은 아니에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즐거움을 드리고, 박수를 받는 게 제 직업이니까요. 그런데 가끔 제가 음악자판기가 된 것 같은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제 노래를 즐기는 게 아니라 ‘어디 한번 해봐’ 하고는 아무도 저를 쳐다보지 않는 거예요. 제일 황당했던 건 애견 관련 행사였는데, 개들만 잔뜩 있고 사람이라곤 행사진행요원 두 명이 전부였던 적도 있어요(웃음).”

    자동차 스피드 게임 같은 현실

    ▼ 가수로서 보람을 느낀 행사도 많겠죠.

    “첫 전국투어 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전주에서 공연하는 날, 폭우가 쏟아졌어요. 대기실에 있으면서 몇 명이나 모였을까, 환불해달라고 항의하지 않을까 별별 걱정을 다했어요. 첫 공연이라 꼭 하고 싶었거든요. 관객이 열 분만 있더라도 노래하겠다는 마음으로 (감전될까봐) 마이크에 비닐랩을 잔뜩 감고 무대에 올랐어요. 그런데 하얀 우의를 입은 관객들이 야외공연장을 가득 메운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난 정말 열심히 노래해야 되겠구나 하고.”

    새 앨범 낸 ‘트로트 여왕’ 장윤정
    ▼ 스케줄이 많다 보면 이동할 때 사고 위험도 높을 텐데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게 무서우면 가수 그만두고 집에 있어야죠. 사고가 안 나길 바라는 수밖에요. 1분, 1초를 다투는 스케줄일 때는 제가 탄 차가 계속 앞차를 추월해가면서 달리는데, 이게 현실인지 자동차 경주를 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가요. 앞 차창이 거대한 오락기 스크린 같아요. 그저 손잡이 꽉 잡고 사고만 안 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죠.”

    ▼ 특별한 건강관리 방법이 있나요.

    “운동은 별로 안 좋아해요. 대신 몸에 좋은 걸 잘 챙겨 먹으려는 편이에요. 입맛이 없으면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안 그래요. 일단 먹을 걸 챙기고 봐요. 그래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 다행이에요.”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한 2년 전부터 우울해지면 일기를 썼어요. 요즘은 음악 틀어놓고 불 꺼놓고 명상해요. 좀 이상하죠?(웃음) 절에서 피우는 향이 있는데, 그 향이 좋더라고요. 향을 피워놓고 아무 생각 안 하고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졸려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사라져요. 제가 예민한 편인 반면에 잘 털어내는 성격이에요. 이건 아니다 싶으면 그냥 툭 떨쳐내지요.”

    ▼ 젊으니까 클럽 같은 데서 춤추는 걸로 풀지는 않나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혼자 있거나, 정신적으로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편이에요.”

    ▼ 얘기는 주로 누구랑 하나요.

    “주로 엄마랑요. 아버지는 제가 원주에 집을 지어드려서 거기서 농사짓고 계시거든요. 엄마가 서울과 원주를 왔다갔다 하세요.”

    매캐한 연습실 냄새

    ▼ 어릴 때부터 내향적이었어요?

    “아니요. 어릴 때는 남자 같았어요. 밖에서 노느라 맘에 뭘 담아두고 혼자 생각하고 할 시간이 없었어요. 충청도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우물 물을 길어 먹는 완전 시골이었어요.”

    ▼ 가수의 꿈은 언제부터 가졌나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품었던 것 같아요. 보통 여자애들은 미스코리아, 남자애들은 대통령이 꿈이잖아요. 전 공주병은 없어서 미스코리아를 꿈꾸진 않았어요(웃음). 그땐 가수라는 게 멀게만 느껴지는, 막연한 꿈이었죠.”

    ▼ 아홉 살 때 전국노래자랑에 나갔다면서요.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전국노래자랑을 한다며 왔어요. 전 당연히 거기에 나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생각하면 지금보다도 배포가 더 컸던 것 같아요. 덕분에 지금 사장님을 만나게 됐죠. 그분이 ‘커서도 가수가 하고 싶으면 찾아오라’며 명함을 줬는데, 그걸 아버지가 10년 넘게 보관하고 계시다가 제게 주었어요.”

    ▼ 학창 시절에는 어떤 편이었나요?

    “활달했으니까 강변가요제도 나갔겠죠. 치어리더도 했어요. 앞에서 뭘 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그의 가수 데뷔는 험난하기만 했다. 기획사가 망하고, 앨범작업이 무산되고…. 그렇게 4년이 지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파산 상태에 이르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라면 하나로 3, 4일 버티는 건 기본이었고, 난방 없이 겨울을 보내는 일도 잦았다. 시련은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와 함께 신장염까지 안겨줬다.

    “한번은 저를 포함해 여자 3명으로 댄스그룹을 짜더니, 안 되겠다는 거예요. 제 목소리가 튄다면서. 솔로로 준비하다가도 프로듀서들이 제 콘셉트를 못 잡아요. 어떤 분이 ‘넌 왜 댄스곡을 트로트 부르듯이 부르느냐’고 하는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 뮤지컬이라든지, 다른 길도 많았을 텐데요.

    “그러게요. 돌아가는 길이 있었는데, 어려서 이게 아니면 안 되는 줄 알았던 거죠. 하긴 전 가수가 되는 길은 가요제에 나가는 것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연습생 시절, 무조건 연습실만 왔다갔다하면서 연습만 했어요. 아직도 한여름 지하 연습실의 매캐한 냄새가 기억이 나요.”

    트로트 가수의 숙명

    ▼ 댄스가수를 꿈꾸다 트로트 곡 ‘어머나’를 받았으니, 처음엔 많이 주저했겠어요.

    “처음 제안을 받고 3일 밤낮을 울었어요. 그땐 저 역시 트로트를 그렇게 생각했던 거예요. ‘그걸 왜 해?’ 하는 생각이었죠. 주위에서 ‘이제 하다하다 안 되니까 트로트를 하려고 하니, 절대 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어요. 트로트를 하면 인생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4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했잖아요. 처음 2년은 뭐가 문제인지 전혀 파악 못했고, 3년째는 그냥 멍했어요. 4년째가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획사 사장들은 이 분야에선 선수인데, 선수가 트로트를 하자는 걸 보면 ‘나한테 그게 있나 보다’ 싶더라고요.”

    ▼ 우여곡절 끝에 나온 노래가 큰 사랑을 받은 셈이군요.

    “노래가 확 뜬 건 앨범이 나오고 1년쯤 지나서였어요. ‘자고 일어나니까 스타가 돼 있더라’는 말처럼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접수가 안 되는 거예요. 왜 사람들이 날 보고 소리를 지르는지, 왜 나를 할퀴고 쥐어뜯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처음엔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 두 번째 앨범을 낼 때 부담이 컸겠어요.

    “두 번째, 세 번째 앨범은 부담을 느낄 여유도 없었어요. 오히려 부담은 이번 앨범이 제일 컸어요.”

    ▼ ‘어머나’로 처음 방송에 나올 때, 다른 가수들로부터 무시당진 않았나요.

    “다른 댄스가수나 발라드가수의 스케줄이 변동되면 저를 지목해 순서를 바꿨어요. 한번은 무대 위에 오르기 직전 마이크를 들고 있다가 뺏기고 두 시간 넘게 대기한 적도 있어요. 심지어 트로트 가수라는 이유만으로 저랑 같은 무대에 안 서겠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트로트 가수가 왜 여기에 서’라는 얘길 직접 듣기도 했어요. 그러면 저는 바보같이 ‘아, 트로트 가수는 원래 그런가 보다. 힘든 길을 선택한 내가 잘못이지’라고 생각했어요. 몰랐으니까 숙명처럼 받아들인 거죠. 그래도 서러웠죠. 그때부터 참는 게 버릇이 된 거 같아요. 참고 집에 와서 혼자 울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방송국에 가면 감독님들이 버선발로 달려와 반기는 거예요. 자리도 맨 뒤였는데 맨 앞에 앉게 하고요. 기분 좋았죠. 더 웃긴 게 전엔 저를 그렇게 무시했던 사람들이 친한 척하는 거예요.”

    ▼ 개인적으로 장윤정 씨 노래 중에서 드라마 ‘이산’ 송연(한지민 분)의 테마곡인 ‘약속’을 제일 좋아해요. 거의 발라드곡이라 할 수 있는데, 트로트가 아닌 다른 장르의 노래를 할 생각은 없나요.

    “저의 제일 큰 숙제죠. 장르 변신은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이번 앨범엔 그런 고민들이 묻어 있어요. 극과 극의 장르들이 들어 있거든요.”

    ▼ 가수가 노래만 잘한다고 인기가 있는 건 아니고, 대중에게 어필하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보나요.

    “노래 잘하는 사람과 가수의 차이는 색깔이 있느냐 없느냐 같아요. 목소리 색깔, 노래 색깔. 첫 소절만 들어도 ‘누구다’ 할 수 있는 거요. 저는 그걸 이제 찾은 것 같아요.”

    술 좋아하지만 주사 없는 남자

    ▼ 동료 연예인들하고 친한 편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마주칠 일이 많지 않고, 녹화 끝나면 각자 집에 가니까요. 사적인 모임들이 있는 모양이던데, 제가 참석을 잘 안 해요. 낯설고, 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니까요. 하지만 결혼식 같은 행사는 웬만하면 꼭 참석하려고 해요. 저도 이제 때가 되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웃음).”

    ▼ 어느 인터뷰에선가 2년 후엔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데요.

    “작년까지는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올해 들어서는 결혼 자체보다도 아기가 너무 좋아요. 아기 때문에 결혼을 생각할 정도예요. 최소한 넷은 낳고 싶어요.”

    ▼ 솔직히 연예인들은 평범한 사람과는 결혼하기가 힘들죠.

    “힘들지만 꿈꾸죠.”

    ▼ 그런데 꿈꿨다가 또 실패하잖아요.

    “남편의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결혼 생활은 각자 바빴으면 좋겠어요. 묶여 있으면 사람이 피곤하니까요. 말이 통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웃을 때 같이 웃어주고요. 아, 아버지처럼 술을 좋아해야 하지만 주사가 없어야 해요. 술을 못 마시면 이야기 나눌 때 심심하잖아요.”

    새 앨범 낸 ‘트로트 여왕’ 장윤정

    평범한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넷은 낳고 싶다는 장윤정.

    ▼ 아버지와 술을 자주 하나요?

    “네, 자주 해요.”

    ▼ 주량이 어느 정도예요.

    “소주랑 맥주랑 섞어서 먹는 걸 좋아하는데, 한번은 아빠 친구 분이 오셔서 같이 마신 적이 있어요. 처음에 아저씨가 ‘딸한테 뭘 술을 먹이냐’며 저를 깔보기에 ‘아버지, 제가 오늘 파이팅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고는 함께 마시기 시작했어요. 아버지 기 살려드리려고요. 제가 호기심으로 빈 술병들로 방을 삥 둘러 세웠어요. 사방이 꽉 차더라고요. 근데도 제가 아저씨 차 태워 보내드리고, 아버지 재워드리고 그랬죠.”

    ▼ 동료 연예인들하고는 안 마시나요.

    “술을 잘하는지 모르니까, 제가 대뜸 술 먹자고 하기는 뭐하잖아요.”

    ▼ 부모님은 결혼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요?

    “얼마 전에 어머니가 저한테 심각하게 ‘넌 남자가 싫니?’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이제 시집보낼 때가 됐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 사귀는 사람이 정말 없나요?

    “없은 지 꽤 됐어요. 저는 성격상 남자친구가 있으면 막 소문을 낼 거예요. 남자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야 늘 있죠.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가끔 소개팅 시켜주겠다는 분들도 있는데, 막상 해준다고 하면 못하겠어요.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무대에서 노래하면 흥분되고 기분 좋잖아요. 이 느낌이 너무 강하니까 웬만한 자극에는 심장이 뛰지를 않아요.”

    한 인터넷 꽃배달서비스 업체가 오픈하면서 장윤정을 모델로 내세우며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그 업체를 장윤정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도했다.

    ‘100억 벌었다’ ‘강남에 빌딩 있다’ 뜬소문일 뿐

    “전 그냥 모델일 뿐이에요. 처음에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어요. 알고 보니 그 이야기더라고요. 그게 진짜 제 사업체면 왜 제가 이 무더운 여름에 행사를 다니겠어요. 시원한 곳에서 쉬고 있지(웃음).”

    ▼ 소문에 ‘장윤정은 어떤 행사든 노래 세 곡에 2000만원이 정가’라고 하던데요.

    “그래요? 많이 과장됐네요.”

    ▼ 그동안 얼마 벌었나요.

    “바쁘게 일했으니까 벌기야 벌었죠. 그러니까 원주에 부모님 집도 지어드린 거고요. 소문엔 제가 100억원을 벌었다, 강남에 빌딩이 있다고 하던데, 소문처럼 벌지는 못했어요. 엄마가 사우나에서 그 소문을 듣고 제게 묻더라니까요.”

    ▼ 다른 여자 연예인들과 달리 명품으로 치장하는 편은 아닌가 봐요.

    “그런 걸 잘 몰라요. 데뷔하고 나서 명품이란 게 뭔지는 알았지만 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요. 언니들이 옆에서 ‘명품백 하나는 있어야 된다’ ‘명품 구두 한 켤레는 있어야 한다’고 하면 제 귀가 팔랑거려서 가끔 사기는 하는데, 거기에 목숨을 거는 성격은 아니에요.”

    ▼ 명품이나 신상품에 목숨 거는 연예인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기준의 차이니까 뭐라 할 수 없어요. 명품 못 샀다고 고뇌에 빠지는 건 그들의 기준이고, 제가 고뇌에 빠지는 건 다른 거예요. 예를 들면, 지금 화장실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거(웃음). 뭐 그런 차이를 인정해야죠.”

    ▼ 롤 모델로 생각하는 선배 가수가 있나요.

    “노래를 놓지 않고 꾸준히 하는 선배님들이면 다 제 롤 모델이죠. 전에 패티김 선생님이 나오셨는데, 어디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색깔 잃지 않고 계속 가시잖아요.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 욕심이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팬들에게 기억되고 사랑받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겠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아이고, 장윤정 맛 갔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노래하고 싶지는 않아요.”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