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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태권도와 북한태권도

이종격투 도전한 실전태권도, 정통성 시비 휘말린 북한태권도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실전태권도와 북한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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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창시자의 정치적 망명

실전태권도를 추구하는 ITF 태권도는 WTF 태권도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기술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주먹으로 얼굴을 치는 것이 허용된다는 점. 당연히 주먹기술이 발달해 있다. 실제로 ‘스페셜 배틀’에 출전한 ITF 태권도 선수들은 잽과 스트레이트는 물론 훅도 곧잘 적중시켰다.

반면 발차기 기술에서는 WTF가 앞선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올림픽 스포츠로 발전하면서 빠르고 섬세한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 이에 비해 ITF 발차기는 동작이 크고 무겁다는 평을 듣고 있다.

형(型)도 차이가 난다. 우선 용어부터 다르다. WTF 태권도에서는 품새라 하고, ITF에서는 틀이라고 한다. WTF 품새는 ‘태극 1~8장’을 비롯해 16가지다. ‘천지’로 시작돼 ‘통일’로 끝나는 ITF 틀은 24가지로 구성돼 있다. ITF 측은 “WTF 태권도인들도 형만큼은 ITF가 낫다고 인정한다”고 주장한다. ITF 틀에서는 호흡법을 중시한다.

경기 규칙도 다르다. WTF 경기장 넓이는 12×12m이고 ITF는 9×9m다. 체급은 WTF가 8개, ITF가 5개다. 경기장 규모나 체급을 보더라도 ITF 태권도가 더 실전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오창진 ITF대한태권도연맹 사무총장은 “WTF 선수들은 절대로 (이종격투기) 링에서 뛸 수 없다”며 자신만만해했다.

“나도 WTF 쪽에서 운동을 해봐 안다. 그쪽 태권도는 오로지 경기에서 점수를 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득점에 유리한 스텝이란 게 따로 있다. WTF 선수들은 그런 것에만 익숙하다. 그런데 사각의 좁은 링에선 스텝이 제대로 안 된다. 반면 우리는 스텝보다 호흡을 중시하기 때문에 실전에서 유리하다.”

ITF 태권도가 북한태권도로 알려진 것은 태권도 창시자인 최홍희씨의 ‘친북’ 행적과 관계 있다. ITF 역사는 곧 최씨의 태권도 개척사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기네스북에도 최씨가 태권도 창시자로 기록돼 있다.

1950년대 태권도 탄생에 이바지한 무술인들은 대부분 일본 가라데를 배운 사람이었다. 최씨 역시 가라데 유단자였는데, 가라데를 변형해 독자적인 무술을 만들었다. 이것이 태권도의 원형이다. 1955년 육군 장성이던 최씨는 ‘한국형 가라데’에 태권도라는 명칭을 붙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인가를 받았다. 이후 국내 무도계에서 태권도라는 명칭이 공식 사용됐고, 군에는 최씨의 호를 딴 ‘창헌류’ 태권도가 빠르게 보급됐다.

1959년 최씨의 주도로 대한태권도협회가 창설됐다. 최씨는 초대 회장과 3대 회장을 역임했다. 1966년엔 국제태권도연맹을 창립했다.

최씨의 아성이 흔들린 것은 1969년 대통령경호실 출신의 김운용씨가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면서. 유신 반대 등으로 박정희 정권과 갈등을 겪은 최씨는 결국 1972년 캐나다로 망명했다. 이듬해 서울에서는 세계태권도연맹이 창립됐고 김운용씨가 초대 총재를 맡았다. 김씨는 또 초대 국기원장에도 취임해 태권도계의 절대 권력자로 떠올랐다.

태권도 통합의 虛와 實

1980년 최씨는 15명의 사범단을 이끌고 북한에 건너가 태권도 시범을 했다. 이것이 ITF가 북한과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 이후 최씨는 여러 차례 방북해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에 의해 친북인사로 낙인찍혔다. 1985년엔 필생의 역작인 태권도백과사전을 완간했고, 캐나다에 있던 ITF 본부를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겼다.

ITF는 북한과 남미, 동구권을 중심으로 세계태권도대회를 여는 등 세력을 확장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WTF를 공식 국제 태권도 기구로 인정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WTF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로는 태권도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최씨는 평소 “북한 땅에서 눈을 감겠다”고 말했다. 2002년 6월 그는 평양에 위암수술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84세.

창시자가 사망한 이후 국제태권도연맹은 같은 이름을 쓰는 세 단체로 분열됐다. 외형상 최홍희씨의 후계자는 북한의 IOC 위원인 장웅이다. 장 위원은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ITF 특별총회에서 새 총재로 추대됐다. 북한 당국이 공개한 최씨의 유언장에는 장 위원을 후임 총재로 지명하는 듯한 발언이 담겨 있다.

그러자 최씨의 장남으로 IFF 사무총장을 역임한 최중화씨를 지지하는 세력이 반발했다. 이들은 북한이 공개한 창시자의 유언장이 날조됐다며 그해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따로 총회를 열고 최씨를 총재로 선출했다. 이들은 최씨 사망 당시 평양에 있었던 최씨 딸의 증언을 바탕으로 북한 당국이 최씨를 안락사시켰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번에 세계태권도문화축제에 참가해 이종격투기 시합을 벌인 국제태권도연맹은 바로 최중화씨가 이끄는 단체다.

2003년 6월엔 또 한 명의 ITF 총재가 탄생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ITF 총회에서 베트남 출신 캐나다인 트란 콴이 총재가 된 것. 트란 콴은 최홍희 총재 시절 ITF 사무국 간부로 활동했다.

세 ITF 중 국제적인 위상이 돋보이는 것은 장웅 총재가 이끄는 ITF다. WTF와 태권도 기술 및 기구 통합을 두고 몇 년째 협상을 벌이고 있다. 두 단체의 태권도 통합 논의는 ‘남북태권도 통합’으로 불리며 태권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 통합이 쉽지 않은 데다 또 다른 2개의 ITF 단체가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 없는 ‘정치적 쇼’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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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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