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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내몽고 횡단 4000km 학술 르포 中 동북공정 무너뜨릴 칼과 방패를 찾아서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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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후기 신석기 시대는 난혼과 근친혼이 성행한 다처다부 사회다. 요녕성 심양시 신락유적지에는 다산을 중시한 이 시대 풍속을 보여주는 인형이 움집 안에 전시돼 있다.

‘병(病)은 곧 죽음’인 사회였으니 생명을 이어가려면 아이를 많이 낳아야 했다. 이 위험은 홍역 예방약을 내놓고, 파상풍은 병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기생충은 사실상 박멸시킨 현대의학이 등장한 후 소멸됐다. 병으로 인해 사람이 죽는 확률이 떨어지자 비로소 인류는 다산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모계집단에서 구성원이 하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이 농경이다. 농경이 잘되려면 비가 적절히 내려야 한다. 따라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일이 중요해지는데, 이 제사는 ‘큰 어머니’로 추앙받는 여성이 치른다. 학자들은 여성 리더가 하늘과 통하는 제사장을 맡던 풍습이 지금은 무녀(巫女)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근친혼과 난혼이 횡횡한 모계사회

제사장이 여성이면 신(神)도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신석기인들은 여신상을 만들어 제를 올렸다. 이러한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여제사장은 가장 많은 자녀를 낳아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여제사장은 집단을 이끄는 군장(君長) 역할도 겸했다. 제사장과 군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시절이 후기 신석기 사회다.

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여성이 집단을 이끈 후기 신석기 사회는 전형적인 모계사회였다. 이때의 신은 여신이고 제사장도 여성이었다. 여성 제사장이 종족을 이끌고 움집 안에 모신 여신에게 천제를 올리는 모습을 재현한 내몽고 박물관의 모형.

군장과 제사장 역할을 맡은 여성 리더는 집단 내의 남성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시사회는 인구를 늘리는 것이 아주 중요했으므로 여성 리더가 집단 내 모든 남성을 독점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집단을 지키려면 다른 여성에게도 출산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모계사회는 일처다부(一妻多夫)가 아니라 다처다부(多妻多夫)의 사회다.



‘관계’는 대개 집단 안에서 이루어지므로 근친혼(近親婚)이 된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이니 한 어머니에게서 나온 남매도 관계를 맺는다. 때로는 부모 자식이 관계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전형적인 난혼(亂婚)이다. 근친혼과 난혼을 다반사로 하는 다처다부 사회이면서 중년 여성이 리더십을 쥐고 제사장 역할도 겸하는 것이 신석기 후기 사회였다.

토기를 만들 수 있는 고운 흙

이러한 집단은 불을 다루며 생활했다. 불을 이용해 난방뿐만 아니라 화식(火食)을 했다. 직접 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불로 물을 끓이고 그 물의 열기로 음식을 익혀 먹기도 했다. 굽는 것보다는 삶거나 찌는 것이 더 맛이 좋다. 삶거나 찌려면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 도구가 바로 토기다.

그런데 토기는 아무 흙으로나 다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지금도 도자기를 만드는 흙은 따로 있으니, 고대 사회에도 토기를 만드는 흙은 따로 구해야 했다. 모래나 돌이 섞이지 않고 존득존득하게 이겨지는 ‘찰흙’이 그것이다. 이런 흙으로 만든 토기는 불에 올려놓았을 때 터지지 말아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흙이 많은 곳이 신석기인들의 정주지가 된다.

서대 유적지에서는 웃자란 풀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므로 답사팀은 사방을 조망하다가 내려왔다. 바로 그때 서울대 체육교육과의 이애주 교수가 “앗!” 하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중요 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僧舞)’ 보유자 이 교수는 한국 춤의 원류를 찾기 위해 줄기차게 이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다.

서대 유적지로 올라갈 때 기자는 이 교수에게 “교수님이 넘어지면 국보(國寶)가 깨질 수 있습니다”라는 농담을 했었다. 그런데 하산길에 넘어졌으니 답사단은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며 “국보 깨진다~”고 소리를 질렀다. 몸이 가벼운 이 교수는 재빨리 일어나 쑥스러워 하며 옷을 털었다. 그런데 흙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단국대 몽골학과의 이성규 교수가 “이것 좀 봐. 이렇게 흙이 고우니 미끄러지지 않을 수 없지” 하며 혀를 찼다. 이 교수가 가리킨 곳은 빗물이 흘러 생긴 길 옆 도랑인데, 그곳에는 빗물을 타고 흘러온 아주 고운 흙이 고여 있었다. 문외한이 봐도 도자기를 빗는 데 적합한 흙이었다.

기자는 이 흙물에 샌들 신은 발을 담갔는데, 그때 발톱 밑으로 들어간 흙물은 1주일이 지나도 빠지지 않았다. 발톱 밑으로 들어갈 정도로 고운 흙이 서대 유적지를 포함한 적봉 일대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우연한 발견…. 비가 오지 않았고 이애주 교수가 넘어지지 않았다면 기자는 이 곳에 토기를 만들 수 있는 흙이 많다는 사실을 빨리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고운 흙이 대한민국에 피해를 준다. 몽고 초원은 가을부터 봄까지 지독한 가뭄이 이어진다. 이른 봄 강한 편서풍이 불기 시작하면 이곳에 깔린 고운 흙이 일제히 떠올라 베이징 지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까지 날아온다. 이른바 ‘황사(黃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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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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