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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내몽고 횡단 4000km 학술 르포 中 동북공정 무너뜨릴 칼과 방패를 찾아서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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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서대 유적지에서 내려오는 길에 발견한 도랑에 고인 고운 흙. 이런 흙이 있기에 이곳은 ‘토기의 천국’이 될 수 있었다.

워낙 고운 흙 때문에 이곳을 흐르는 강도 누런색을 띤다. 적봉지역을 관류하는 가장 큰 강은 요하의 지류인 ‘시라무렌 강(西拉木倫河)’인데, 몽골어로 ‘누런 강’이라는 뜻이다. 동서로 길쭉한 내몽고의 서남쪽인 오르도스를 휘감고 지나가며 누런 흙을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강이 바로 황하다.

신석기인들은 움집을 짓고 불을 피워 난방을 했지만, 옷 만드는 기술은 발전하지 못했기에 너무 추우면 살지 못한다. 농경을 할 정도로 따뜻한 계절이 길어야 집단생활을 한다. 적봉지역에 후기 신석기 유적지와 초기 청동기 유적지가 즐비하다는 것은 옛날에는 사람이 살 만했다는 의미다. 비도 적절히 내렸고 지금보다는 따뜻한 계절이 훨씬 길었다.

신석기인들이 끓는 물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 먹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다리가 세 개 달렸다고 하여 ‘삼족기(三足器)’란 이름을 얻은 토기다. 신석기인들은 사진에서처럼 삼족기 아랫부분에 물을 넣고 가운데에 뭔가를 걸친 후 그 위에 고기와 곡식을 얹어 삼족기 아래에서 불을 지폈다.

삼족기가 옹기를 낳았다

이 삼족기를 만들면서 신석기인들은 불에 구운 토기인 옹기(甕器) 개념을 터득한다. 옹기는 굽지 않은 토기보다 단단하다. 그래서 귀한 것은 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든다. 서대 유적지에서 불에 구운 여신상이 발굴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동산취라는 곳에서도 불에 구워 만든 임신한 여성상(孕婦像)이 출토됐는데, 이는 다산을 숭상했다는 증거다.



밑이 편평한 토기는 불에 올리지 않고 곡식 낱알 등을 보관하거나 천제를 올리는 제기(祭器) 등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신석기인은 한마디로 흙의 예술가다. 이들은 흙을 이용해 그릇을 만들고 집을 짓고 성도 쌓았다. 신석기인들이 흙으로 쌓은 성을 ‘토성’이라고 하는데, 진흙을 빚어 반듯한 벽돌을 만들고, 이것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판축(版築)기법을 사용했다.

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

요녕성 신락유적지 박물관에 전시된 삼족기(왼쪽)와 삼족기를 이용해 음식을 익히는 원리를 설명한 그림.

신석기 시대에는 돌을 깎는 기술이 없었기에 석성(石城)을 쌓아도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돌의 거친 면이 밖으로 나오므로, 적군은 그것을 잡고 성을 타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토성은 표면이 매끈해 타고 넘기 힘들다. 수레에 큰 돌이나 나무를 싣고 와 때림으로써 성을 부는 ‘충거(衝車)’는 신석기 시절엔 없었으니, 토성은 훌륭한 방어수단이었다.

판축기법으로 만든 흙벽돌을 불에 구우면 돌만큼 단단해진다. ‘인조(人造) 돌’이 탄생하는 것이다. 불에 구운 벽돌을 한자로 ‘전(塼)’으로 적는데, 중국인들은 전(塼)을 이용해 성까지 쌓았다. 구운 벽돌은 왕의 무덤과 탑, 그리고 도자기 등을 굽는 가마를 만드는 데 이용됐다. 그러나 인조 돌을 만드는 것은 신석기 시대가 끝난 다음이었다.

장군총으로 이어지는 적석총문화

신석기인들은 들돼지(멧돼지)를 잡아 가축화했다. 이러한 사실은 일부 무덤에서 껴묻기(副葬)를 한 돼지 뼈가 발굴됨으로써 확인됐다. 적봉지역은 호랑이가 살 만한 곳은 아니다. 초원지대에서는 늑대나 이리가 패권을 행사하는데, 이를 입증하듯 몽골인의 전설에는 늑대가 자주 등장한다.

답사단은 오한기 사가자(四家子)진의 초모산(草帽山) 뒤에 있는 유적지도 방문했다. 초모는 ‘풀로 만든 모자’니 곧 삿갓이다. 이 ‘삿갓산’ 뒤쪽에서 협의의 홍산문화 시절 만든 제사터와 무덤터가 발굴됐다. 홍산문화는 후기 신석기문화 가운데 가장 후기의 것이라 그전의 신석기문화보다 확실히 발전한 모습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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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돌을 모아 방형(方形) 계단꼴로 쌓아올렸던 초모산 적석총 흔적.(좌) 내몽고 곳곳에서는 지금도 양머리 등을 바치고 천제를 올리는 ‘오보’를 볼 수 있다.(우)

대표적인 것이 적석총(積石?)의 등장이다. 적석총은 신석기인들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전체 모양은 네모꼴인데, 이 네모꼴 위로 한 계단 올라가 작은 네모꼴이 있고, 그 위에 한 계단 더 올라가 더 작은 네모꼴이 있는 형태다. 쉽게 말하면 피라미드 만든 것인데, 피라미드 제단의 가장 발달한 형태가 바로 중국 길림성 집안(集安)에 있는 ‘장군총’이다.

무덤터가 곧 천제를 지내는 곳

장군총은 철기 시대에 만든 것이라 엄청나게 큰 돌을 반듯하게 잘라서 계단식으로 쌓아 올렸다. 그러나 홍산문화인들은 청동기도 만들지 못했으니 반듯한 돌을 주워다 각(角)을 맞춰 쌓아 올렸다. 이러한 적석총은 제사터로 사용됐는데, 적석총은 대개 여성 리더를 매장했을 것으로 보이는 무덤터 위에 만들어졌다.

실제로 초모산 유적지의 적석총 안에서 적잖은 무덤이 발견됐는데, 시신은 벽돌처럼 반듯한 돌을 쌓아 만든 ‘석관(石棺)’ 안에 놓여 있었다. 시신을 안치한 다음에는 구들장처럼 얇고 넓적한 돌로 위를 덮어 석관을 완성한다. 왜 신석기인들은 석관을 안치한 곳에 제사터인 적석총을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하늘과의 소통’에서 찾아야 한다.

후기 신석기인들은 ‘사후(死後) 세계’가 있다고 믿었기에 시신을 매장했다. 죽은 사람은 하늘이라고 하는 또 다른 세계로 가는데, 평소 하늘과의 소통을 담당한 것은 여성 리더다. 따라서 여성 리더가 숨지면 정중히 매장하고 그를 묻은 곳을 하늘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삼는다. 자연계에서 하늘과 소통하는 동물은 ‘새’다. 그래서 이곳의 신석기인들은 새를 숭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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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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