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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본 한중일 문화인류학 ‘마지막회’

효과적인 식사도구 숟가락 한국인만 사용하는 이유는?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효과적인 식사도구 숟가락 한국인만 사용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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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생비·소비는 모두 큰 국자로 제사와 접객 때 솥에서 고기를 꺼내는 데 사용됐다. 국자의 입이 많이 굽어 있는 것은 고기를 잘 건져내기 위해서다. 반비는 비교적 작은 것으로 밥을 먹을 때 사용했다. 전국시대 후기에 들어 주나라 의례제도가 붕괴되면서 큰 비는 점차 소실됐다. 그 대신 작은 비는 실용적으로 개량되면서 널리 쓰였다.”

주나라 때 귀족들의 연회에서 권력을 과시하는 중요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국물에 재료를 넣고 끓인 ‘갱(羹)’이었다. 갱에는 고기·채소·열매 등의 건더기가 많이 들어갔다. 이 ‘갱’ 속에 들어 있는 건더기를 꺼낼 때 각종 국자형 숟가락이 필요했다. 나는 도비가 향신료로 쓰이던 열매를, 생비는 고기를, 소비는 채소를 건져낼 때 사용했던 국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나라는 청동기로 인해 망하고 만다.

당시 주된 식기였던 청동기에 녹이 슬면서 그것을 사용해 술이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점차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특히 청동기를 사용하는 계층은 왕과 귀족들이었다. 주나라의 멸망 원인을 설명하는 여러 논거 중에서도 이 점은 역사학자들이 최근에 주목하는 점이다. 주나라의 멸망은 결국 대형 청동기 식기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 과정에서 큰 국자 혹은 주걱형 숟가락도 사라졌다. 반면에 소형의 청동기 그릇과 반비는 적어도 한나라 이후까지 사용됐다.

일본도 사용했던 숟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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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자형 숟가락.

다만 청동 녹의 위험을 감지한 한나라 사람들이 청동기 그릇의 표면에 옻칠을 했다. 그 후에 청동기 그릇 대신 나무나 가죽을 재료로 그 표면에 옻칠을 한 식기가 등장했다. 이른바 ‘칠기시대(漆器時代)’가 후한 때에 들어와 꽃을 피웠다. 당연히 숟가락과 젓가락의 재료로 나무가 쓰였고, 여기에 옻칠이 더해졌다. 동시에 청동기로 만들어진 반비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은으로 만든 반비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유물로만 보아도 청동기나 은으로 된 반비는 원나라 때까지 사용됐다. 하지만 명나라에 들어오면서 반비도 사라지고, 대신 국물을 떠 먹기 위한 ‘사오쯔’가 도자기·플라스틱·스테인리스 등으로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사용된다.



효과적인 식사도구 숟가락 한국인만 사용하는 이유는?

고대 일본 국자.

나는 2003년 봄, 일본도 숟가락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법인 나라(奈良)문화재연구소’에 간 적이 있다. 연구원이 한참 만에 수장고에서 가지고 온 유물은 녹슨 청동기 숟가락과 젓가락이었다. 이어진 그의 설명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유물이 제작된 곳은 경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실 이와 똑같은 숟가락과 젓가락이 안압지에서 출토돼 경주 국립박물관에 있다. 그렇다면 숟가락은 6~7세기 동아시아 지역에서 상당히 높은 계층이 사용한 식사도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앞에서 중원의 숟가락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주로 왕이나 귀족의 식사 도구로 사용됐음을 밝혔다. 사실 주나라 때 기록으로 알려진 ‘주례(周禮)’라는 책에는 천자에서 공경대부에 이르기까지 공식 연회에서 청동기를 사용했다고 나와 있다. 아울러 청동기 식기는 각각의 계급에 맞추어 그 크기와 가짓수가 정해져 있었다. 가령 1978년 초여름, 후베이(湖北)성 쑤이저우(隨州)시에서 발견된 전국시대 초기의 무덤에서는 무려 10t에 달하는 청동기 그릇이 나왔다. 이후 제후국인 증국(曾國) 군주인 쩡허우이(曾侯乙)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 유적지에서 청동 솥인 동정(銅鼎)이 20개나 나왔다. 당연히 식사 때 사용하는 숟가락과 국자도 나왔다.

곧 구정팔궤(九鼎八·#54451;)의 예기(禮器)가 세트를 이루고 있었다. 원래 이러한 세트는 주나라의 천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하지만 지방 군주들도 경제 사정이 좋을 경우, 천자를 흉내 내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다. 식기를 통한 권력의 표현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6~7세기 한반도와 일본에서 사용된 청동기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이 왕이나 귀족들의 특권을 드러내는 도구였음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경주산(慶州産) 나라(奈良)의 청동기 숟가락과 젓가락도 이런 범주에 드는 것이 분명하다. 일본 나라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백제의 무령왕릉에서도 이와 비슷한 숟가락과 젓가락이 세트로 나왔으니 청동기 숟가락과 젓가락은 지배자의 상징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라시대의 왕이나 귀족들이 일상에서는 청동기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 관리를 맞이하거나 공식 연회가 있을 때만 식사 도구로 사용했다. 평소에 나뭇가지를 잘라서 만든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는 데 익숙해 있던 그들은, 연회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일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아마도 요사이 한국인들이 포크와 나이프에 대해 가진 생각을 당시 나라에 살던 지배층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습관은 적어도 12세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12세기 초에 대신인 후지와라 요리나가(藤原賴長)가 베푼 대향연을 그린 그림에서도 자수로 짠 받침대에 한 벌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놓여 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어떤 자료에서도 숟가락을 젓가락과 함께 사용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일본 학자들은 숟가락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음식문화 연구에서 세계적인 학자로 알려진 이시케 나오미치(石毛直道) 선생은 야요이(彌生) 시대부터 일본에서는 찰기가 있는 쌀을 재배했기 때문에 굳이 숟가락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일면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상에 음식을 차려서 먹지 않았기 때문에 젓가락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됐을 가능성도 크다. 즉 지배층이나 일반 서민이나 6~7세기 이전에는 모두 식기를 바닥에 놓고 식사를 했다. 그러니 식기를 손에 들고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명나라에 들어와 숟가락 사용 빈도가 점차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이에 대해 일본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민족학자 슈닷세이(周達生)는 다음의 주장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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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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