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시라소니 이후 ‘맨손싸움 1인자’ 조창조가 털어놓는 ‘주먹과 정치’

“1987년 광주유세 때 노태우 경호하다 돌맞아 죽을 뻔”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시라소니 이후 ‘맨손싸움 1인자’ 조창조가 털어놓는 ‘주먹과 정치’

3/9
대구로 내려간 조씨는 2년 후 다시 상경해 염천시장에 터전을 잡았다. 권투선수 출신인 정기복씨를 만나면서 그의 싸움 실력은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조씨와 마찬가지로 월남민인 정씨는 다양한 실전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의 별명은 빠지기였다. 조씨는 빠지기 형과 2년을 같이 지내면서 ‘싸움이 이렇게 묘한 거구나’ 하고 느꼈다.

시라소니 이후 ‘맨손싸움 1인자’ 조창조가 털어놓는 ‘주먹과 정치’

2007년 11월 하얏트호텔에서 고희연을 치른 조창조씨. 이날 행사장엔 2000여 명의 ‘주먹’이 몰려들었다.

“빠지기 형의 싸움 스타일이 지금의 종합격투기와 비슷해요. 이마까지 쓰니, 종합격투기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죠. 그 형한테 머리와 무릎, 팔꿈치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상대가 숙이고 들어올 때는 무릎으로 올려 치는 기술이 좋죠. 태권도는 발차기는 좋지만 실전에선 별로예요. 싸움은 태권도가 아니거든요. 붙잡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스피드죠. 빠르지 못하면 싸움을 잘할 수 없습니다. 빠지기 형은 그런 기술을 시라소니 형님한테 배웠다고 하더군요.”

싸움기술 면에서 시라소니 계보인 셈이다. 조씨가 시라소니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건 아니다. 정기복씨와 시라소니 계열인 김홍빈씨를 통해 알고는 지냈지만, 20년 가까운 나이 차 때문에 같이 어울릴 처지가 아니었다.

1960년대 초반 서울 주먹계는 큰 조직들의 와해 또는 약화로 일시적인 공백기를 맞았다. ‘깡패 소탕’을 내세운 군사정권의 강한 압박 탓이었다. 1950년대를 풍미했던 1세대 주먹들이 거의 다 퇴장했다.

‘조선 제일의 주먹’ 김두한은 정계에 입문하면서 주먹계에서 입지가 좁아졌고, 자유당 정권을 등에 업고 최강자로 군림하던 동대문사단은 두목 이정재가 5·16 직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 분열됐다. 동대문파에 맞섰던 명동파도 보스 이화룡이 군사정권의 조사를 받고 나서 일선에서 물러난 후 주춤거렸다. 명동파와 가까우면서도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싸움의 귀재’ 시라소니는 이정재의 사형에 충격을 받고 기독교에 귀의했다. 서대문 일대를 장악했던 최창수도 군사정권의 서슬에 뒷전으로 물러섰다.



염천시장에 자리 잡은 조창조씨가 주먹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조씨는 상인협회 경비과장으로 시장 내 이권 싸움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가락시장의 모체라 할 만한 염천시장에는 농수산물이 풍부해 전국 각지의 건달이 몰렸다. 특히 쓰리꾼이라 불리던 소매치기와 거지가 설쳐댔다. 싸움이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조씨는 하루에 보통 2~3회 싸웠다.

아현동 5형제와의 대결

1대 1 싸움의 낭만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염천시장에서 조씨는 숱한 싸움을 치렀다. 국가대표 레슬링선수였던 김찬O씨와의 대결이 대표적인 사례. 김씨는 6척 장신에 80㎏이 넘는 거구였다. 시장 상인들이 호각세를 점치던 이 싸움에서 조씨는 무릎 올려치기로 상대를 가볍게 눕혀버렸다.

그밖에도 ‘거지왕’ 김춘삼의 바로 밑 동생인 ‘덩치’, 또 다른 레슬링 선수 출신인 김모씨, 기계체조 선수 출신의 유명한 소매치기와 그의 보스 등이 조씨에게 무릎을 꿇었다. 인근 만리동과 서울역, 회현동 건달들도 그에게 도전했으나 누구도 그를 꺾지 못했다.

“서울사람들은 맨손싸움을 잘 못하더라고요. 방망이나 망치 등 무기를 드는 버릇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시장에서는 보는 눈이 많고 같이 생존해야 하니 (나하고) 싸울 때 무기를 못 들었지요. 지금의 종합격투기 기술을 써먹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머리로 받고 무릎으로 올려치고 눈 찌르고…. 그때도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중림동에서 신촌로터리까지 매일 뛰었습니다. 지구력이 없으면 이길 수 없거든요.”

조씨의 싸움은 그야말로 실전적인 것이었다. 정구O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08㎏의 거구인 그는 웬만한 사람은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정도로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그와 시비가 붙었다. 그가 조씨의 귀싸대기를 올리자 화가 난 조씨가 그의 부자지를 걷어차버렸다. 그걸로 승부는 끝났다. 대(大)자로 뻗어버린 그가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대문 일대 건달 중에 아현동 5형제가 유명했다. 역도선수 출신인 맏형 김기용씨는 힘이 천하장사였다. 막내동생이 조씨와 같은 또래였는데, 둘은 평소 친하게 지냈다. 아현동 5형제의 영역은 굴레방다리였다. 영화배우 이대근씨의 부친인 이삼돌씨가 이들과 가까웠다. 조씨에 따르면 이삼돌씨는 당시 4대문 밖에서 가장 세다는 평을 듣던 유명한 건달이었다. 어느 날 조씨는 아현동 5형제와 맞붙었는데, 그것이 그의 주먹행로를 바꾸었다.

“무슨 일로 큰형한테 내가 실수를 했어요. 사실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가 매를 맞는 자리였지요. 그냥 맞았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간 겁니다. 5형제가 지켜보는 앞에서. 막내동생이 나한테 ‘너,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그 후 내가 위아래도 없이 아현동 5형제에게 대들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여러 조직에서 나를 죽이려고 난리가 났죠. 김찬O와의 대결도 그래서 이뤄진 겁니다. 나를 혼내주려 왔다 거꾸로 당한 거죠. 또 남대문시장에 유명한 권투선수가 있었어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사람이었어요. 해병대 출신이고. 그 사람이 소문을 듣고 나를 혼내러 찾아왔어요. 한마디로 버릇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내가 ‘이러다가는 끝도 없겠다. 그만하자’는 생각에 대구로 내려갔어요.”

3/9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목록 닫기

시라소니 이후 ‘맨손싸움 1인자’ 조창조가 털어놓는 ‘주먹과 정치’

댓글 창 닫기

2020/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