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 속 ‘외국놈’ ‘외국분’

여기는 ‘이색동네’ 저기는 ‘우범지역’, 이중 잣대에 두 번 우는 이방인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한국 속 ‘외국놈’ ‘외국분’

3/4
서울 서래센터

“모두 바캉스 갔습니다.”


서울 반포동 서래센터는 요즘 조용하다 못해 한적하다. 바캉스 시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마을인 서래마을에 위치한 센터 이용자는 대부분 프랑스인.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학현 씨는 “프랑스인들은 보통 여름휴가를 한두 달씩 떠난다”며 “6월에는 사람이 좀 있었다. 가을이 되면 방문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역삼1동사무소 5층 역삼빌리지센터. 센터에 들어서며 어린 시절 다니던 영어회화 학원을 떠올렸다. 원색 우드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외국 소품이 어우러진 그곳은 기존 교습학원에 비해 천국이었다. 역삼센터 중앙에 마련된 TV에서는 CNN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쪽에 마련된 책장에는 영어 책들이 꽂혀 있었다. 한글교본, 한국요리 만들기 같은 제목도 눈에 띄었다.

곧 한국어 수업이 시작된다. 학생들이 하나둘 센터로 들어섰다. 독일인과 중국인 등 3명이었다. 센터 직원에 따르면 오후 클래스 중 한 클래스는 학생이 11명인데 국적이 10개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김의정 씨는 “역삼은 미국, 캐나다, 유럽 쪽 직장인이 많은데, 휴가철이라 발길이 뜸하다”고 했다. 이따금 상담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월세 200만~300만원도 OK

빌리지센터의 센터장은 모두 외국인이다. 비전임 계약직으로 2년간 6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근무시간은 하루 4시간. 역삼센터장은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27·이탈리아)씨다. ‘미녀들의 수다’ 출연진으로 센터장이 되기 전 이미 얼굴을 알렸다. 밀라노 가톨릭대학원 국제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5년 밀라노에서 유학 중이던 김현준(30)씨를 만나 2년 전 한국에 왔다. 2007년 김씨와 결혼해 경기 안양시에서 시어머니와 살고 있다. 크리스티나 센터장이 또박또박 센터를 소개했다.

“역삼에는 8000여 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어요. 주로 직장인, 영어강사, 사업가들이요. 센터는 이들에게 생활상담, 한국어교육, 문화공연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주 업무는 비즈니스 컨설팅입니다. 테헤란 등지에서 사업가 분들, 혹은 사업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 우리 센터를 많이 찾습니다. 외국인투자 통계가 엉망인 상황에서 평범한 주민센터로 남기보다 투자자문까지 하면 효율적일 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

한국 속  ‘외국놈’ ‘외국분’

역삼 글로벌빌리지센터의 한국어 수업 모습.

8000명의 생활상이 모두 같을 순 없다. 하지만 평균치를 내자면 역삼지역 거주 외국인들은 생활수준이 높다. 상당수가 영어강사를 비롯한 직장인과 외국기업 CEO, 중견간부들이다. 영어강사의 수입은 월 200만~300만원선. 외국기업 중견간부급 사원들은 우리나라 중산층 수입을 훨씬 웃돈다. 센터 직원은 “집을 구할 때 월세 200만~300만원도 괜찮다는 분이 많다”고 귀띔했다.

생활의 불편은 크지 않다. 휴대전화 개설, 숙박시설, 자동차 구입 등은 대부분 회사에서 해결해준다. 그보다는 여가활동이나 문화생활에 대한 문의가 많다. 이를테면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데 홈스테이는 어떻게 하느냐, 봉사활동은 어떻게 하느냐, 애니버서리(기념일)가 다가오는데 한강에서 디너파티는 어떻게 하느냐는 식이다.

“교환교수나 외국기업의 한국지사에 파견 나온 사람의 가족들은 한국 생활을 알고 배우는 데 주력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머무는 동안 동양문화를 체험하겠다는 것이지요. 남편이 교환교수인 외국인 한 분은 서울-경기도 우수 관광상품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여행을 많이 다녀서 관광상품을 평가하기에 적합하다고 인정받은 거지요.” 남편이 캐나다인이라는 김의정씨가 말했다.

“야!”는 가정부 부르는 말

그렇다고 생활 상담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살다 보면 종종 사소하지만 뜻밖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그런 곤란함을 해결해주는 것도 센터의 역할이다. “이사하는데 영어가 가능한 도우미가 없겠느냐” “이사한 양재동 집의 문을 바꿔달고 싶은데 문은 어디서 파느냐” “세금영수증 독해가 안 되는데 어떤 내용인지 알려달라”는 식이다.

김씨는 “사소한 불편사항을 물어볼 데가 없어 답답하다는 외국인이 많았다. 보통 자국민 친목 커뮤니티나 교회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런 활동을 하지 않는 분들은 센터가 생겨서 편하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연남센터는 센터들 가운데 가장 이른 올해 1월 문을 열었다. 그래서일까. 말쑥하지만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다른 센터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여유롭고, 북적거리고, 제법 틀이 잡힌 느낌이었다. 연남 지역은 대만화교 거주 지역이다. 마포구에서는 연남동에 중국인거리를 만들 계획도 세웠다. 센터장은 중국 톈진 출신의 리위옌(35)씨. 중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한국인 남편을 만난 그는 2003년 한국에 왔다.

화교가 많지만 센터 이용자는 대부분 한족, 즉 중국인들이다. 상담 내용은 결혼이주자들의 가정문제가 많다. 센터에 따르면 언어가 통하고 커뮤니티가 탄탄한 화교들은 이따금 비자나 법률상담 건으로 들를 뿐이다. 센터 직원 김려진씨가 말했다.

“연남동과 마포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의 중국인 결혼이주자 분들도 많이 오십니다. 카페나 소규모 모임을 통해 입소문을 탄 것이지요. 상담 내용은 결혼과 임금 체불문제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이주여성인권센터나 건강가정지원센터 등 전문 상담센터로 안내해드립니다. 센터도 상담하지만, 연결자 역할을 주로 합니다.

결혼이주자 외에 이따금 부유한 중국인들도 한국어 수업에 참가하지만 오래 함께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이주자 분들과 어울리기 힘들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동네 분들의 경우 한국어 수업을 들으며 친구를 사귀는 데 큰 의미를 둡니다. 남편이 한국인이고 시댁식구들이 있더라도 가까이서 동포를 접하는 게 큰 힘이 될 테니까요. 여가생활 문의는 수영장, 나들이장소 등에 대한 내용이 많고 공연이나 전시 정보를 묻는 분은 드뭅니다.”

생활상담 가운데는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오는 오해도 많다. 다음은 외국인 며느리들이 한국생활에 대해 쓴 수기의 일부다.

“필리핀에서는 ‘야! ’는 가정부한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수시로 ‘야! 야! ’라고 부릅니다. ‘야! 야! 냉장고문 닫아라.’ ‘야! 야! 국물이 너무 짜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포항 사투리라는 걸 알았거든요.”

“우리 고향에서 생선머리는 버리는 재료인데 생선머리로 국을 끓이라고 합니다. 또 임신했을 때 먹는 음식이 아니라며 몇 차례 먹고 싶은 음식을 빼앗기기도 했어요.”

3/4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목록 닫기

한국 속 ‘외국놈’ ‘외국분’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