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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꺼풀 벗겨본 미국 ⑤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 꿈꾸는 미국의 두 얼굴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 꿈꾸는 미국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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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사명은 미국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예외주의적 특성도 함께 갖는다. 2002년에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보고서는 이라크전쟁을 ‘선제방어전쟁(preemptive war)’으로 정의한다. 선제방어전쟁이란 적의 위협이 목전에 있을 때 먼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라크전쟁을 ‘예방전쟁(preventive war)’으로 규정한다. 예방전쟁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아닌데도 단지 미래에 있을지 모를 위협을 막기 위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의 사례가 예방전쟁을 선제방어전쟁이라고 정당화하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국가안보전략서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그 어떤 나라도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제방어론을 구실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선제방어는 그 이유가 분명하고 정당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외부의 시선에서 이러한 이중적 잣대는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미국인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 꿈꾸는 미국의 두 얼굴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선제방어전쟁’이라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위협을 피하기 위한 ‘예방전쟁’이라고 비판한다.

이외에도 미국의 민족주의는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와 비교해 여러모로 다르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2003년 미국 민족주의의 특성을 분석한 논문을 실었다. 우선, 일반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동원하려는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의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뤄진다.

가령 미국 연방법 어디에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의무화한 규정이 없으나 여전히 많은 학교가 이를 지키고 있다. 또한 민족주의적 행태를 법제화하려는 조짐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한다. 예를 들어 국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규제하려는 미 의회의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미래지향적 민족주의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당시 반전운동가들이 시위 도중 성조기를 불태우는 경우가 잦아지자 미 의회는 이를 막기 위해 ‘국기보호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20년 후 반정부 시위대가 성조기를 소각한 행위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든 국기 훼손을 막고자 지난 십수 년간 헌법을 개정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미국의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주체는 주로 미디어다. 최근 열린 미국 정치학 대회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발생한 미군들의 고문행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국의 언론들은 부시 행정부의 민족주의적 수사에 기대어 “단지 몇 명의 나쁜 사람이 저지른 범죄”로 축소하고 조직적 차원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미국 CBS 방송의 유명 앵커였던 댄 레더는 미디어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일찍이 “미디어는 국기를 따라가게 마련(Media tends to follow the flag)”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디어가 의도적으로 민족주의를 조장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청률 경쟁 때문에 전쟁을 마치 대하드라마처럼 보도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민족주의가 형성되기 쉬운 환경을 제공했다.

미국 민족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민족주의가 대체로 과거의 원한이나 패배의 기억에서 출발하는 반면 미국의 민족주의는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반일감정은 양국 간의 각종 분쟁이 빚어낸 갈등이 차곡차곡 쌓여 형성된 것이지만, 미국의 민족주의는 개척자 정신과 같은 긍정적 동기에 의해 촉발된다.

따라서 미국의 민족주의는 미래지향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민족주의는 과거의 영광 혹은 굴욕에 집착하지만 미국은 현재의 영광을 통해 국민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그 영광을 미래에도 이어가려는 욕망이 민족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미국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고, 각종 국제분쟁에 개입할 때는 민족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베트남전쟁이다.

당시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와 공산주의 척결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승리를 확신하고 전쟁에 개입했지만 베트콩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패전하고 말았다. 베트남의 민족주의는 외세로부터 자국을 지켜낸 역사적 경험을 통해 공고해졌으며, 그들이 원한 것은 미국이 우려한 것처럼 공산주의의 전파가 아니라 독립과 통일이었다.

물정 모르는 ‘세계경찰’

마찬가지 맥락에서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악의 축’인 북한을 보듬어 안아야할 동포나 형제로 인식하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속에 담긴 혈연민족주의의 질긴 속성을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미국은 세계화에 중심에 있지만 정작 해외문화를 접하는 비율은 굉장히 낮다. 2003년 퓨 연구소가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경우 지난 5년간 해외여행의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22%에 불과했다. 캐나다의 66%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그 결과 미국은 국경 밖에서 일어나는 민족주의에 대해 점점 더 이해력이 떨어지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는 결국 미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미국이 사명감을 갖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나설수록 세계 전역의 반미주의는 강화된다. 미국이 자신의 이중적 잣대를 인정하고 변화시키지 않는 한 반미주의는 심화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그간의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7년 최초로 외국인 체류자가 100만명을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 꿈꾸는 미국의 두 얼굴
金秀卿

197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동아일보 문화부·사회부 기자

現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돌파했으며 지난해 결혼한 커플 아홉 쌍에 한 쌍이 국제결혼을 했다. 혈연적 민족주의는 과거 사회통합의 원동력이었지만 이제는 저해요인이 돼가고 있다.

민족주의의 부작용을 우려해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할뿐더러 더 큰 갈등을 야기할 뿐이다. 다만 그 배타성과 폐쇄성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폐단을 항상 경계해야 할 필요는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 역시 타 민족을 차별하면서 자민족이 차별받는 것은 참지 못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볼 일이다.

신동아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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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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