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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마지막회

소설가 김인숙

통속성과 진정성의 줄타기 끝에 ‘제국의 뒷길’에서 마주친 문학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소설가 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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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 통지가 오던 날, 그는 친구 문제로 머리가 지끈거려 길거리를 쏘다니다가 집에 들어왔다. 그때 그의 모친께서 불안한 표정으로 “너 뭐 잘못한 거 있느냐?”라고 물었다. 문단이나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어머니는 신문사에서 자신의 딸을 찾으니 마치 안기부에서 학생운동 하는 아이 찾는 것처럼 들린 탓일까. 그는 그렇게 당선되었다.

가난하고 거친 동네

1984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이제 문단 나이 25년이 된 중견작가다. 그녀는 자신의 등단 작품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제가 요즘 심사위원을 하곤 해요. 만약에 말이지요. 제가 그때 심사했다면 그 작품은 처음 서너 장 읽어보고 바로 옆으로 제쳐놓았을 겁니다. 지금 보면 문장을 비롯해 여러 가지로 모자라는 작품이에요. 그런 물건을 가능성만 보고 뽑아준 선생님들께 감사하지요. 심사를 해봐서 아는데 신인의 작품을 오로지 가능성만 보고 뽑는다는 거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그녀는 등단을 하고 나서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선명하다. 문학보다는 문학 외적인 데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대단했다. 지금 와서 천천히 읽어보니 ‘상실의 시대’는 여성지용이었다. 여성지용이라는 말은 통속적이라는 말이다.



여성지는 통속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잡지다. 그들에게 일류대 신방과 예쁜 여대생이 젊은이들의 성과 사랑을 감정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문장으로 쓴 작품은 좋은 기삿거리가 된다. 그런데 여성지 기자들이 앞 다퉈 그에게 왔다가 인터뷰를 하고나면 모두들 재미없어 했다. 뭔가 짜릿한 것이 있나 싶어 왔다가 확인해보니 그냥 심심한 한 여대생이 있었다.

등단을 하고나서도 마찬가지다. 문단은 가난하고 거친 동네다. 아름다운 낙원이 아니다. 새 작가가 나오면 호랑이가 비탈에 새끼를 굴리듯, 독수리가 절벽에서 새끼를 던져버리듯, 그냥 문학이라는 황무지 들판에 풀어놓는다. 살 놈만 알아서 사는 것이다. 어린 여대생이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견디고 글을 쓰면서 살아내야 하는 고독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때 생각을 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그때 누군가 길을 잘 잡아주었으면 그 어려움을 조금은 수월하게 견디고 빠져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등단했기에 질투 아닌 질투도 받았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데 당시 신춘문예 심사위원인 고 정광용 선생은 이런 말을 전화로 남겼다.

“통속작가가 될 소지가 큰데, 그런 우려를 무릅쓰고 뽑아줬소. 경계하시오.”

지금 막 등단한 작가에게 선배 작가의 이러한 조언은 차라리 따뜻한 것이었다.

“작품을 뽑아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다가 들은 말이지요. 그래요, 선생님들의 안목이 옳았어요. 과연 저는 통속소설을 그 다음에 썼고, 꽤 팔았어요.”

통속소설이란 문학적인 성취가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해두자. 이 말은 위험한 말이다. 소설은 원래 통속적이야 한다. 통속이란 무엇인가? 속세와 통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전적 의미로는 ‘일반 세상에 널리 통하는 풍속, 전문적이 아니고 일반으로 알기 쉬운 일’이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통속이다. 소설처럼 속세와 통해야 하는 문학 장르는 흔치 않다. 소설은 대중을 상대로 한 통속의 전형이다.

그가 말한 통속소설은 ‘핏줄’을 말한다. 내가 듣기에 그는 통속의 기준을 자신의 진정성에 두고 있다. 자신이 바라볼 때 진정성이 떨어지는 작품을 통속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대학 시절을 보낸 시대의 진정성은 학생운동이었다. 그는 통속소설의 악령에서 벗어난 소설을 발표한다.

내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것은 장편소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다. 내가 대학 졸업 무렵에 그는 대학 1학년으로 신춘문예 당선을 했고, 그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보면서 ‘이것 봐라 문단에 물건 하나 나왔네’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곧 잊어버렸다. 그리고 김인숙이라는 이름은 내 마음에 학생운동 소설을 쓰는 작가로 남았다.

통속소설과 진정성

그는 자신을 담금질하는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작품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고, 같이 놀고 어울리는 친구가 그에게는 적다. 등단 작품에 대한 공포감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차 싶었다. 그것은 그에게 일종의 상처였다. 등단 작품은 그에게 여러 가지로 압력을 넣었다. ‘넌 앞으로 이런 작품 쓰지 말라’ ‘너의 작품은 대학 문화를 왜곡한 일이야’라는 환청도 그에게 들린다. 때가 1980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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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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