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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죄보다 인간을 더 미워한 세상 “하루에도 수십 번씩 미칠 것만 같아요!”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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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감옥에 갇힌 대신 그들은 자신이 있던 그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금도 버젓이 일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학원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강사들의 학위증을 강의실에 걸어두고 학생들을 유인한다. 일부 언론에서 ‘마녀사냥’식 보도에 대한 자성이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이내 묻혀버렸다.

미국에 나가 있던 신씨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국내에 들어와 변씨와 함께 구속된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신씨 사건은 거의 잊힌 일이 돼버렸다. 언론은 특유의 냄비근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신씨는 해외에 있던 지난해 8월 모 주간지에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으나 그마저 신씨가 인터뷰를 했다는 그 자체만 부각됐을 뿐, 실제 그녀와 그녀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언론은 없었다. 그녀에겐 반론권조차 인정되지 않은 셈이다. 입을 꽉 닫아버린 그녀와 가족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확인된’ 허위학력 사실을 바탕으로 ‘확인되지 않은’ 권력형 비리나 사생활을 마구 보도한 언론의 태도는 더 큰 문제였다.

‘권력형 비리’ 모두 무죄 선고

사건이 터진 지 꼭 1년이 흐른 지난 7월, 신씨, 변씨 등에 대한 고등법원 선고 공판이 열렸다. 그녀에겐 1년6개월의 실형이, 변씨에겐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1심과 거의 변함없는 판결이었다. 법원은 학력조작과 관련한 사문서 위조, 행사, 업무방해 사실을 대부분 인정했고(사문서 위조 행사 부분 일부 제외) 성곡미술관과 관련된 횡령 혐의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변씨에 대해선 2개 사찰에 대해 특별교부세의 불법 집행에 대해서만 죄가 인정됐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인격을 송두리째 뒤흔든 ‘권력형 비리’ 혐의에 대해선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학력조작 또는 횡령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 언론에서 그의 사생활인 연애사와 관련해 대서특필했던 내용 중 대부분이 수사과정, 재판과정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셈이다. 하지만 언론은 사후 보도에 인색했다. 선고된 형량과 인정된 혐의만 짤막하게 보도했을 뿐, 무엇이 무죄로 판명됐는지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의 수사과정, 재판과정에서 언론이 그동안 대서특필한 내용과 달리 새롭게 밝혀진 사실을 정리하면, 우선 신씨는 언론 보도처럼 최종학력이 고졸자가 아님이 드러났다. 검찰은 미국 수사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신씨가 1992년 1월15일부터 1996년 12월30일까지 비록 졸업은 못했지만 미국 캔자스대학교 미술학과에 재학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3심 재판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신씨의 학력조작 혐의가 모두 사실로 확정되더라도 그녀의 최종학력은 고졸이 아니라 대학교 중퇴(3학년 수료)가 되는 셈이다. 그녀는 왜 5년 동안 다닌 학교를 그만뒀을까?

‘신정아 사건’ 1년, 가정교사 지낸 기자의 ‘그녀를 위한 변명’

지난해 10월 중순 인천국제공항에서 검찰에 체포된 신정아씨.

검찰은 기소문에서 신씨와 변씨 사이의 통화기록, 문자 메시지 내용, e메일 내용 등을 토대로 둘 사이를 ‘은밀한 연인’으로 규정했지만, 재판부는 △광주비엔날레 감독직을 두고 신씨 부탁을 받고 변씨가 감독선임위원회에 압력을 넣은 혐의 △신씨가 변씨를 이용해 10여 개 기업으로부터 8억5325만원을 광고선전비 또는 전시회 협찬금 명목으로 받은 혐의(제3자 뇌물수수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변씨가 동국대 총장에게 대규모 지원을 약속하고 신씨를 교수로 임용하게 했다는 혐의(뇌물수수) △신씨와 변씨가 서로 짜고 전 쌍용그룹 회장 김석원씨의 집행유예 판결과 사면복권을 이끈 대가로 김씨 부부로부터 변씨는 3억원, 신씨는 2000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 각각에 대해 “입증이 부족하고 그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변씨의 사찰 특별교부세 불법지원과 관련해서도 당초 언론은 신씨가 이를 부탁한 것으로 보도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1심과 2심이 모두 같은 결론이었다.

사실 이 모든 혐의 하나 하나가 지난해 7~8월 이를 보도한 기자들에게 ‘특종’을 안긴(그중에는 상을 받은 기자도 있다) 주제였지만, 해당 언론들은 지금껏 그에 대해 일절 말이 없다. 특히 당시 “청와대와 기업의 커넥션이 있다. 이 중간에 신씨가 있다”며 대서특필된 10대 그룹에 대한 광고비 전시회 협찬금 수수 부분에 대해 법원은 오히려 “변씨와 신씨가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각 기업에 미술관 전시회 협찬을 요청한 행위를 실질적·구체적으로 위법, 부당한 행위라거나, 이에 응하여 (기업들이) 협찬한 행위를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보기 쉽지 않다”고 판시했다.

당시 언론은 이들 혐의를 모두 신씨와 변씨의 부적절한 연애의 결과로 보도했다. 사실 지금에야 말할 수 있지만 이렇듯 많은 협찬이 붙는 전시회를 두고, 이름 있는 화가, 조각가, 사진가들이 서로 전시회를 하게 해달라고 접근한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성급한 언론은 이를 신씨의 ‘팜파탈적 유인의 결과’라거나 심지어 ‘성 로비의 결과’라고 보도했다. 결국 이로써 노무현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 스캔들은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다.

그렇다면 신씨는 현재 2심까지의 법원 판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억울하거나 불만은 없을까. 그녀의 2심 변호사는 “그녀가 학력조작과 횡령에 대한 법원 판결을 상당히 억울해 하고 있다. 즉시 상고해 현재 3심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기자는 최근 한 달 동안 신씨를 만나기 위해 일반면회와 특별면회를 신청하고 전자메일을 보냈으나 교도소 측은 “신씨는 변호사와 오빠를 제외하곤 면회와 메일 수령 등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교도소로 편지를 보내봤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녀의 오빠는 “정아가 2심 판결 후 크게 실망해 아무런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다. 몸도 안 좋다. 생각한 것보다 형량이 너무 무겁게 나와서 그런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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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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