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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⑦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비결

  •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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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를 들으며 감동하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과연 오늘날도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국기에 대해 꼭 그런 식으로 맹세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엄숙주의, 과도한 진지함이 싫다. 국민교육헌장이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리추얼이 동반하는 그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 싫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언제까지나 이토록 진지하고, 무겁고, 부담스러워야 할까?

나는 지금도 애국가가 나오면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저려온다. 어쩌다 TV를 방송이 끝날 때까지 켜놓을 때가 있다. 그러면 언제나 그렇듯, 애국가가 장엄하게 나온다. 백두산이 나오고, 한라산이 나온다. 동해에서 해가 떠오르는 낙산사의 일출도 빠지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장면쯤에 이르면 난 눈물이 난다. 그러나 이건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국가에 대한 과도한 정서적 몰입이다.

필요 이상의 몰입은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다. 눈물을 동반하는 애국가에 대한 내 정서적 반응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눈물이 애국가 할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나와도 눈물이 나온다. 웬 황당한 상황인가. 미국식 애국을 강조하는 할리우드 영화나 스포츠에서 봤던 장면에서 학습된 결과와 내 애국가에 대한 반응이 연합되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정서적 반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애국가나 태극기에 대한 요즘 젊은 사람들의 정서적 반응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젊은이들의 태극기에 대한 태도는 기성세대들이 당황할 정도다. 그전까지 태극기는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엄숙한 것, 성스러운 것이었다. 어릴 때 우리는 태극기를 정성스럽게 다루는 법까지 배웠다. 그런 태극기를 젊은이들이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치마를 해 입고, 머리띠를 하고, 민소매 ‘난닝구’까지 만들어 입은 것이다. 엄숙하게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태극기가 이제는 재미의 소재가 돼버렸다.



기성세대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당황할 것 없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는 방식이 변한 것이다. 태극기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눈물의 내용이 다르다. 젊은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더 이상 서러움과 고통을 기억하며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즐거움과 재미와 벅찬 감동의 눈물이다. 리추얼이 동반하는 정서의 내용도 달라진 것이다.

통제는 리추얼로

리추얼이 강력한 문화현상이 되는 까닭은 정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는 정형화된 리추얼을 반복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문화적 특징 중에는 다양한 사회적 리추얼이 개발됐다는 점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국민의례부터 새마을운동, 여의도광장의 국군의 날 행사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다양한 리추얼을 통해 국민 정서를 통제하려 했다. 당시 국민은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묵묵히 따라 했다. 근대국가의 의미는 이젠 제발 보릿고개는 넘지 말자는 새마을운동의 리추얼로 반복됐고, 우리도 이제 제대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는 그 벅찬 감동 또한 군사 퍼레이드나 ‘박스컵’, 심지어는 ‘김일의 박치기’와 같은 사회문화적 리추얼로 재생산됐다. 오늘날 중년들이 갖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는 모두 리추얼 때문이다. 당시의 리추얼로 경험된 정서는 종교적 체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리추얼은 종교적 제의, 혹은 의례에서 출발한다. 아직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 없었던 고대사회에서 집단은 리추얼로 유지됐다. 대부분 종교적 의례였다. 부족의 리더는 종교적 의례의 우두머리를 겸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이 종교적 의례에서 종교와 도덕의 기원을 설명한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독점한 것에 불만을 품은 아들들은 편 먹고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해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아들들은 괴로워한다. 이에 아버지를 상징하는 토템동물을 숭배하는 종교적 의례를 통해 극복하려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종교의 기원이다. 또한 아버지의 여자(어머니와 누이들), 아버지의 환생동물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금지, 즉 터부에 관해서도 서로 합의한다. 아들들 중 어느 하나가 다시 강력한 아버지의 위치에 올라서,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을 원천 금지하는 사회적 합의다. 그리고 이를 정기적인 종교적 의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원시부족의 질서는 이런 식의 종교적 의례를 통해 지켜졌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아니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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