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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의 정치경제학

세금으로 전기요금 보조? 잘사는 사람이 더 큰 혜택

  • 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전기요금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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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고작 5.5% 인상

“1980년대 이후 가격이 가장 안 오른 것은 상품 중에서는 달걀이고, 서비스 요금 중에서는 전기요금이다.”

한전 관계자들이 전기요금을 언급할 때 꺼내는 단골 메뉴다. 한전 관계자는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기요금은 5.5% 인상된 반면 소비자 물가는 207.0% 상승했다”면서 “소비자 물가를 감안하면 전기요금은 계속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은 전기요금의 국제 수준 비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1㎾h당 전기요금이 77.85원이었다. 반면 2007년 12월31일 기준 환율을 적용하면 일본의 2006년 전기요금은 132.00원 수준이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을 100이라고 하면 일본은 170에 해당한다. 미국은 83.03원(107), 프랑스는 115.47원(148)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민영화 괴담’도 터무니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인천대 경제학과 손양훈 교수는 “발전회사가 민영화되면 이번처럼 정부가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고, 그 부분만큼 전기요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두고 ‘전력산업 민영화 = 전기요금 폭등’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국민 세금으로 전기요금을 계속 보조하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한 에너지 과소비도 문제지만 소비 왜곡도 심각한 상황이다. 전종택 전력거래소정산팀장은 “같은 에너지라도 유류나 가스 등은 도입 원가에 연동하는데 전기요금은 묶어놓다 보니 난방기구 연료가 유류나 가스에서 전기로 옮아가고 있다”면서 “동절기 피크타임이 낮에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기를 난방용으로 쓸 경우 열효율이 70% 이상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큰 문제는 에너지 과소비가 ‘불필요한’ 발전설비 투자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그렇지 않아도 한전은 전력설비 규모가 커질수록 조직이 커지고 임직원의 승진 기회가 증가하기 때문에 투자를 확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에너지 과소비는 이를 위한 훌륭한 명분을 제공한다”고 꼬집었다.

물론 지경부 관계자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윤호 지경부 장관은 10월5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했기 때문에 과소비하는 문제도 있다”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전기요금은 원가를 잘 반영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보조금을 지급한 것은 물가를 국정의 최고 정책과제로 생각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한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9월9일 TV 대담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전기·가스요금 인상 여부에 대해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서민 부담을 안 주는 범위 내에서 조정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요금은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로 관리하는 공공요금이다. 한전이 이를 인상하려면 이사회에서 의결한 후 지경부 장관에게 인가 신청을 해야 한다. 지경부 장관은 전기요금 및 소비자보호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하고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친 후에 인가한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청와대 및 당정 협의를 거쳐야 하고 실제로는 청와대의 의중이 더 중요하다.

캘리포니아 전력대란의 교훈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인상이 억제되면서 전력산업 구조개편 취지를 무색케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지 않아도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동력을 상실한 상황이었는데 그마저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는 것. 한때 한전에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나 발전 자회사를 다시 통합하자는 논의가 나온 것도 이들의 염려를 키우고 있다.

현재 한전은 연료비 상승에 따른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차원에서 한수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전의 적자나 다른 발전 자회사의 적자를 한수원에 일부 전가하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도 한수원은 올 상반기 무려 519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한수원의 발전 단가가 발전 자회사 중 가장 낮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대해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참가한 한 전문가는 “2001년 4월 한전의 발전 부문을 6개 자회사로 분할한 것은 발전부문 간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면서 “한수원에 다른 발전 자회사의 적자를 전가하는 것은 이런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모 회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한수원에 적자를 전가하고 있어 발전 효율성 경쟁이 의미를 잃게 됐다는 것.

전문가들은 현재 한전 상황이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전력대란 당시의 전력 판매회사와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진우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가스연구실장은 “캘리포니아 주는 1998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하면서 도매가격은 자유화한 반면 소비자 요금을 동결한 결과 시장 왜곡이 일어나 전력부족 사태를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들어서다. 그동안 환경 규제로 발전소를 제때 짓지 못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 연료비까지 상승하면서 도매가격이 폭등했기 때문. 판매회사는 비싼 값에 전력을 구입했지만 소비자 요금은 올릴 수 없어 파산 지경에 처하게 됐다. 이에 따라 발전회사들이 판매회사에 전력 공급을 기피하면서 전력 대란으로 번진 것.

한전도 올 상반기 구입 전력비는 약 2조1000억원 늘어났다. 연료비 상승으로 인해 전력원가가 지난해 상반기 1㎾h당 77.82원에서 83.92원으로 7.8%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당시의 캘리포니아 주 판매회사처럼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없어 올해 처음으로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캘리포니아 주에서와 같은 전력대란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한전이 발전회사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어 발전회사들이 한전에 전력 공급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한전의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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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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