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현상을 일터로부터의 ‘(자발적) 이탈 혁명(opt-out revolution)’이라 칭했다.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직장을 거부할 뿐 직장이 이들을 버렸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기사에 소개된 한 여성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우수한 인적자원이지만 현재 애틀랜타에서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평일에는 이웃들과 차를 마시고 독서토론회를 열면서 여가를 즐긴다.
그는 “많은 사람이 좋은 직업을 갖고 승승장구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며 “(일과 가정이라는) 덫에 걸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선택에 의해 집에 머물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하버드대학 MBA과정을 마친 1981년, 1985년, 1991년 졸업생 가운데 38%만이 상근직에 근무하고 있었다.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성공만이 자아실현의 길이라 믿었던 여성들에게 이 같은 연구결과는 말 그대로 ‘혁명적’이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훨씬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전투적으로 살아왔을까, 억울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여성학자 린다 허쉬만은 2005년 시사 월간지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에 기고한 글에서 “엘리트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일터에서 물러나 전업주부가 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사회를 위해 나쁜 일”이라며 “이들의 행위는 많은 여성에게 모방효과를 낳으며, 일을 그만두지 않는 여성에게는 (가정에 대한) 죄책감을 불어넣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기고문은 직장여성과 전업주부 사이의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른바 ‘엄마 전쟁 (Mommy war)’을 촉발시켰다. 전업주부들은 주로, 아이가 엄마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입장이다. 가정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뤄야 할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 문제는 일하는 엄마에게는 아킬레스건과 같다. 여성의 자아실현도 좋지만 그것이 자녀의 불행으로 이어진다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허쉬만은 “통계적으로 봤을 때 직장여성을 어머니로 둔 자녀와 전업주부를 어머니로 둔 자녀의 행복지수는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일하는 엄마’ 지지자들은 전업주부의 자녀가 오히려 독립심이 적은 아이로 자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일대 역사학과 신시아 러셋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오늘날의 여성들이 점차 현실적이 돼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성운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여성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일과 가사를 완벽하게 해낼 거라 자신했지만 실제 해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2005년 138명의 예일대 재학 여학생에게 설문한 결과 85%의 학생이 아이가 생기면 일을 그만두거나 비상근직에 종사할 것이라 답했다.
엘리트 여성들의 전업주부 선언은 단지 아이의 장래를 위한 것이거나 현실적인 타협만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다니엘 부치노 존스 홉킨스 의대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전업주부가 된다는 것은 ‘돈이 많아서 맞벌이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상류층의 특권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전업주부가 하나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