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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세종증권 인수 승인… “농림부 오히려 대처 잘했다”농·수협, 직불금 방만… “제도적으로 확실히 막겠다”

  • 최영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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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농협개혁에서 회장을 비상임직으로 만들었는데도 지배구조는 실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는데요.

“회장을 비상임 명예직으로 바꿨지만, 제도만 바뀐 게 문제지요. 아쉬운 점은 회장 아래에 농민을 위해 최고 수익을 내고 정말 농민을 위할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거예요. 안타까운 일이죠. 이기주의와 사심을 버린다면 농협개혁도 잘될 수 있다고 봅니다. 농협도 그렇지만 농업 전반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농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낙후돼 있잖아요. 일방적인 ‘손자 사랑’ 방식이 아니라 주사가 필요할 땐 주사를 주고, 약이 필요할 땐 약도 주는 그런 사랑이 필요합니다.”

‘농업 DNA 가진, 준비된 장관’

장 장관은 이명박 정권의 장관 후보 중 국회의 인사검증을 별 지적 없이 통과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소위 ‘강부자’도 아니고 ‘고소영’도 아니다. 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30여 년 관료생활 대부분을 재정경제부에서 보냈다. 그중 2년간 농림부 농정국장을 역임했고, 2006년 9월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관리관)을 마지막으로 관료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그해 10월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으로 다시 기용됐다. 대부분의 재경부 퇴직 관료가 관련기관이나 회사로 자리를 옮기는 관행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오히려 공직자의 부패와 비리를 다루는 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 이력을 보니까 ‘강물은 바람 따라 길을 바꾸지 않는다’는 시집을 내셨는데요. 당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합니다. 언제 시를 쓰셨어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을 했어요. 그때부터 관심 있었죠. 그 시집은 1966년부터 한 40여 년 그 끼적 거린 걸 모은 거예요. 국방대학교에 파견 나갔을 때 우리나라 재정구조에 대한 논문을 내려다 외부 사정 때문에 내지 못하고 대신 시집을 냈습니다.”

▼ 시와 공직생활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요. 시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의 맥과 결을 잡아내서 짧은 언어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공직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죠. 옛 선비가 시를 좋아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그때 시집을 낸 것도 이런 메시지를 던져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약간 의도적이었죠. 공직자가 정책의 맥을 잘못 잡으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숙련된 석공을 보세요. 바위를 깰 때 그 결을 찾아 한번에 깨잖아요. 결을 못 찾으면 하루 종일 고생합니다.”

▼ 재경부 경험이 청렴위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겠습니다.

“정책의 맥 찾기도 시를 쓰는 작업과도 연관돼 있는데요. 제가 가서 보니까 부정부패나 비리가 결국 제도의 문제에서 생기더라고요. 허가받지 않아도 될 일을 받으라 하니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고, 비리가 생기고 하더군요. 특히 경제활동 쪽에 그런 게 많잖아요. 이런 걸 없애려면 제도를 그럴 소지가 없도록 바꿔야 해요. 정말 할 일이 많더군요. 영 엉뚱한 곳에 갔지만 보람도 있었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 농식품부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제 공무원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했던 두 시기가 우연하게 전부 농정과 관계돼 있어요. 사무관 때 농수산 예산 업무를 2년 했는데 진짜 열심히 했어요. 윗분들의 눈에 띄어 신임도 받았죠. 농정전환 관련 세미나도 열고 했는데 벌써 24~25년 전 일이네요. 그러고는 2004년 농림부 농정국장으로 왔죠. 그때 알았죠. 제 속에 농업에 대한 DNA가 있다는 걸. 농협개혁 입안, 농정개혁, 정말 그때도 입술이 부르트도록 일했는데 피곤하지가 않았습니다. 농정국장을 마치고 (재경부)로 가면서 그 성과를 묶어 책도 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이름도 농업과 무관치 않다. ‘태평성대’라고 할 때 태평(太平)과 한자가 똑같다. 과연 농식품부는 그 수장(首長)의 이름처럼 앞으로 태평성대할 수 있을까.

대통령께 야단맞은 사연

2008년 8월 장관에 부임한 그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 청문회를 치르고 나자 멜라민 파동을 겪었고, 쉴 겨를도 없이 쌀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가 터졌다. 2007년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온 후 바로 대처했어야 하는데, 곪은 상처가 그의 부임 후에 터진 것이다. 농식품부는 쌀 직불금 개선안을 담은 법안을 2008년 10월에 제출했지만 현재 새로운 개선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 쌀 직불금 수령자 중 비료구입 실적이 없는 사람들을 1차로 걸렀는데, 이 중 실제 부당수령자를 가리기 위해 각 읍면동에 실경작 확인 심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읍면동에는 그럴 인력이 사실상 없는데요. 또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경우도 있고요. 앞으로 쌀 직불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입니까.

“저도 여러 번 읍면동에 가봤는데 담당자가 어떤 곳은 한 사람, 많은 곳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또 그 일만 하는 게 아닙디다. 농업과 관련된 온갖 일을 다 하죠. 선진국에는 이런 직불금을 지급하는 국가조직이 따로 있는데 지방에까지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무시할 순 없죠. 이런 일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지금껏 지급대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그 기준을 명확하게 바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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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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