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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⑧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독보적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

싸워야 할 적은 남자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독보적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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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독보적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

‘젖소의 두개골, 빨강, 하양, 그리고 파랑’ 1931년작

“힘, 해방, 자유”

예술가에게 ‘작품이 훌륭하다’는 말은 국적 불문, 장르 불문 가장 듣기 좋은 말이다. 오키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후 몇 차례 편지가 더 오가고 마침내 1915년 오키프는 화랑을 직접 방문해 스티글리츠를 만났다. 스치듯 한 첫 만남 이후 8년 만이다. 오키프는 자신보다 스물세 살이나 연상이면서 유부남인 스티글리츠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다. 이것은 연애감정이라기보다 정신적 스승이자 멘토에 대해 보내는 존경심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오키프 작품이 291화랑에 내걸렸다. 다른 화가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 그룹전이긴 했지만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가 오키프 그림에 대해서만 리뷰(관람평)를 실음으로써 정식 예술무대에 선을 보이는 첫 번째 중요한 계기가 된다.

스티글리츠는 자신이 운영하던 사진 잡지에 “오키프의 소묘작품은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291 화랑에서는 한 여성이 종이 위에 이토록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한 작품을 결코 본 적이 없다”고 극찬했다. 스티글리츠는 그녀가 캔버스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본 최초의 타인, 그것도 그녀를 도와주고 키울 수 있는 ‘힘을 가진’ 타인이었다.

성공적인 첫 그룹전 이후 전도양양해보이던 오키프의 앞길이 어머니의 사망으로 잠시 휘청하는 듯했으나 실의에 빠진 그녀를 다잡아 세운 사람이 바로 스티글리츠다. 그녀는 스티글리츠의 열정적인 편지와 격려 덕분에 붓을 놓고 싶은 유혹에도 다시 그림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첫 개인전에 출품할 마흔 점 남짓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첫 그룹전 2년 뒤인 1917년 4월 오키프의 첫 개인전이 291화랑에서 열린다. 짙은 보랏빛 수채화 물감과 목탄으로 그린 사우스캐롤라이나 풍경화, 수채화 물감과 유화로 그린 텍사스, 그리고 석고 조각 작품이 전시됐다. 당시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던 조각가 브랑쿠시는 “그녀의 작품이 휘두르는 매력은 힘, 해방, 자유”라는, 간단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언어로 평하기도 했다.

후원자에서 연인으로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에게 점점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그가 유부남이라는 게 걸림돌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그녀는 편하게 연애나 할 처지가 아니었다. 너무 가난했다. 자칫 결핵으로 번질 수 있는 독감과 몇 달째 싸우느라 쇠약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부서진 마음과 육체를 보듬은 사람이 다름 아닌 스티글리츠였다. 오키프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뉴욕으로 불러들인 뒤, 의사인 자신의 동생을 시켜 돌보게 했다.

어떻게 보면 오키프가 스티글리츠를 선택한 것은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하기야 사랑이란 게 따지고 보면 서로의 절절한 정신적 물질적 필요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것 아닌가.) 오키프가 스티글리츠로부터 받은 것은 독립된 작업실 같은 단순히 물질적 차원이 아니었다. 그는 변덕스럽고 감수성이 예민한 오키프의 성격을 받아준 특별한 남자였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죽고 형제들은 가난했으며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오키프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가망 없는 황무지에서 구해준 구원자나 마찬가지였다.

스티글리츠 입장에서도 오키프는 특별한 여자였다. 그는 오키프가 사고방식과 감정이 분명하고 거침없어 맥박이 펄떡펄떡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이 평소 갈망해오던 순수와 직관의 여성상이었다. 두 사람은 동거를 거쳐 마침내 1924년 12월 결혼한다. 첫 만남 후 16년 만이다. 결혼식은 어떤 의례적인 형식도 갖추지 않았다. 반지도 교환하지 않았고 사랑이니 명예니 복종이니 하는 말들을 읊조리는 행사도 없었다. 피로연도 없었다.

오키프는 남편 성(姓)을 따르지 않았다. 훗날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묻자 “왜 내가 다른 누군가의 이름으로 불려야 하나 생각했다. 결혼 이후 사람들이 나더러 스티글리츠 부인이라고 할 때마다 나는 오키프 양이라고 정정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애송이 신인과 예술계 거장의 결합이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은 오키프의 고집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두 사람의 결합은 너무나 다른 둘의 결합이었다. 스티글리츠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 도시를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오키프는 자연주의적 삶에 익숙한 시골 사람이었다. 스티글리츠는 늘 사람 속에 있기를 원했지만 오키프는 고독 속에 있기를 원했다. 스티글리츠는 토론광이었던 반면, 오키프는 침묵하고 경청하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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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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