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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마지막회’

행복하려면, 쉬는것과 노는것을 구별하라!

  • 김정운│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행복하려면, 쉬는것과 노는것을 구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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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려면, 쉬는것과 노는것을 구별하라!

면역시스템을 가동시켜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면역시스템이 망가지게 되면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 못하게 된다. 의학이 그렇게 발전해도 여전히 치료할 수 없는 각종 암이나 에이즈, 백혈병 등 불치병의 원인은 바로 이 면역시스템의 손상에서 비롯된다. 내 몸의 세포들이 어느 것이 내 것인지, 바깥에서 들어온 남의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정신적인 면역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똥, 오줌을 구별 못한다’고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똥과 오줌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오줌은 내 것이지만 똥은 내 것이 아니다. 오줌은 내 몸 안의 수분으로 세포 곳곳을 돌아다니다 배출되는 것이지만 똥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것이 아니다. 입에서 항문으로 연결되는 관으로 돌아나가는 것이 똥이다. 이 관은 내 몸 안을 외부로부터 관통하는 하나의 관이다. 관 안쪽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고, 관 바깥쪽이 내 몸인 것이다. 그러니까 똥은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한번도 내 것인 적이 없다. 똥, 오줌을 구별한다는 것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한다는 이야기다. 똥, 오줌을 구별 못한다는 것은 내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가장 바보 같은 짓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을 심리학에서는 아이덴티티(identity)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즉, 어떤 것과 자신을 동일시(identify)한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이 끊임없는 노력이 곧 삶의 내용이다. 혼자, 고립된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자신이 하는 일, 사회적 관계 등등. 그러나 세상에 바보 같은 짓이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사회적 지위는 반드시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높은 지위라 할지라도 길어야 10년이다. 연임이 불가능한 우리나라 대통령은 고작 5년이다. 그 후 죽을 때까지 ‘전(前) 대통령’으로 살아야 한다. 과거의 지위로 미래를 살아가는 것처럼 서글프고 초라한 일은 없다.

우리 동네에 ‘장관님’이 사신다. 요즘 장관님은 아닌 것 같아,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언제 장관 하신 거예요. 20년 전에 하셨단다. 얼마나 하셨는데요? 6개월 하셨단다. 그분은 고작 6개월 장관 하고, 20년이 지나 죽을 때까지 ‘전(前) 장관님’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분을 뵐 때마다 왠지 우울해진다. 그러나 이 땅의 남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것처럼 무섭고 두려운 일은 없다.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대표적인 집단은 ‘정치인’이다. 정치 현장에 있을 때 국회의원처럼 폼 나는 직업은 없다. 교수, 국회의원, 장관을 두루 지내고 은퇴한 어떤 분에게 사석에서 질문했다. “어느 직업이 제일 폼 납니까?” “그야 당연히 국회의원이지.” “왜 그렇습니까?” “책임질 일은 없고, 권력은 무한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국회의원을 한번 해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단맛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념도 소신도 없다. 어떻게든 다시 한번 국회의원 하는 게 꿈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간 정치인이 한두 명이 아니다.

국회의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는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철저하게 훈련받는다. 만나면 명함을 내미는 행위가 바로 그 적나라한 흔적이다. 사회적 지위로 상대방과 자신의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행위다. 마치 동물의 수컷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며 서로의 힘을 과시하며 서열을 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남자들의 명함 직위는 대부분 뻥튀기다. 이들에게 명함에 새길 사회적 직함이 사라지는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살아왔는지를 확인하려면, 내 친구에게 물어보면 된다.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저 사람 누구지요?” “아, 저 사람, 잘나가는 회사 전무예요.” “무슨 그룹의 CEO입니다.” “첨단기술을 가진 탄탄한 중소기업 사장이랍니다.” 만약 내 친구의 입에서 이런 유의 대답이 나온다면 내 미래는 곧 참담해진다. 지금 아무리 잘나가도 곧 잘리게 되어 있다. 아무리 탄탄한 기업의 사장일지라도 곧 망하게 되어 있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게 되면, 그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어 있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내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즐겁고 재미있는 삶’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될 수 없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는 어떠한 창의적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다. 모든 관계가 권력의 유무로 확인되는 아등바등하는 삶의 방식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떠한 리더십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곧 잘리고, 곧 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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