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신동아 2009년 2월호 별책부록 Brand New|Hangang/Essay

한강의 기억과 비전

강은 누구를 위해 흐르는가

  • 도정일 |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jidoh@khu.ac.kr

한강의 기억과 비전

3/4
한강의 기억과 비전
이 사실은 지금의 한강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강의 남북 양안에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시멘트 옹벽들을 축조하고 모든 곡선을 두들겨 패 직선화하고 물과 뭍의 접촉을 차단한 지금의 한강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그러나 그 80년대 군사정권의 심리학은 그 이전 군사정권의 심리학에 이어져 있고 통틀어 군사정권 시대 30년을 지배한 통치의 문법 전체는 식민지시대의 통치학에 연결되어 있다. 식민시대 이후 ‘근대화’의 이름으로 가장 과감한 국토 재편을 기획하고 단행한 것은 역대 군사정권이다. 하나뿐이던 한강다리는 스무 개 이상으로 늘어나고 시멘트 포장도로와 고속도로는 수십배 수백배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같은 국토 재편에 대한 국민 대중의 심리적 저항이나 반감의 크기는 60년대 이후 개발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미미한 수준으로 약화된다. 식민시대의 ‘신작로’가 국토의 “맥을 끊는다” 해서 조선인의 저항에 더러 부딪히기도 했다면 60년대 이후 군사정권 시기의 직선도로 만들기와 터널 뚫기에서 전통적인 유기체적 ‘맥’의 개념은 거의 완전히 소멸한다. 그러나 이 소멸에 대한 저항의 기록은 미미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사항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군사정권 후기의 기념비적 한강 치수 사업을 포함한 60년대 이후 국토개발 기획의 통치학적 심리적 뿌리는 식민시대의 근대적 통치학에 닿아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근대적인 것의 위용과 효율에 대한 대중적 찬탄과 선망 역시 식민시대에 그 심리적 기원을 두면서 60년대 이후 개발주의에 의한 이념적 강화기를 거쳐 지금 이 시점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금의 살벌하고 비인간적이고 반생태적인 한강 풍경을 초래한 우리의 정치적 문화사적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길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이 길고 깊은 뿌리를 걷어낼 수 있는가? 앞에서 우리는 에로스의 강을 말하고 인간회복과 강의 회복을 말했지만, 이 모든 ‘회복’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속도, 효율, 지배, 개발은 물질적 근대의 핵심 가치들이다. 근대 건축 구조물이 지닌 직선지향성과 평면지향성은 이런 가치와 직결되어 있다. ‘한강 르네상스’가 강의 잃어버린 곡선을 되찾고 생태계를 복원하고 인간과 강의 접촉 동선을 확보하는 등의 작업을 위해 속도, 효율, 지배, 개발의 근대적 가치들을 내팽개칠 수 있는가? 개발주의 이념이 시민 인구의 넓은 층에 깊게 침투해 있는 지금 서울시가, 서울시장이, 무슨 수로 개발주의의 집요한 요구를 잠재울 것인가?

더구나 지금은 근대와 후기근대(혹은 탈근대)가 중첩해 있는 시대다. 후기근대의 물질적 가치체계를 요약하는 것은 시장, 경쟁, 생존이다. 우리가 ‘강다운 강’이라 부른 아름다운 생태의 강, 에로스의 강은 기본적으로 속도, 효율, 지배, 개발의 근대 가치들에 동조하지 않으며 시장, 경쟁, 생존의 가치를 절대화하게 하는 이 시대의 엄혹한 명령들과도 거의 정반대편에서 맞서는 다른 가치들의 존중과 활성화를 요구한다. ‘한강 르네상스’는 시대의 명령에 맞설 용기를 가지려는 것인가 아니면 개발, 효율, 경쟁, 생존, 시장 등등의 가치를 ‘르네상스’의 이름 아래 재포장해 궁극적으로는 그 가치체계에 네 발로 더 잘 봉사하고자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한강회복 사업이 간단하지 않은 문제들을 안고 있고 깊은 딜레마들에 포위되어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한강은 이미 시멘트로 뒤덮인 견고한 터널식 수로가 되어 있다. 이미 되어 있고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헐어내는 ‘언두잉(undoing)’의 작업은 단순한 ‘디몰리션(demolition)’만으로 되지 않는 복잡하고 힘겨운 과정들을 포함한다. 작업이 외피적 장식의 차원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도처에 불가능의 지점들이 기다리고 있다. 예컨대 강 둔덕에 걷기와 어슬렁거림, 어울림과 누림이 가능한 문화거리를 만들기 위해 양안 고속도로들을 철거하고 고층 아파트들을 밀어낼 수 있는가? 그 많은 한강다리에 인간적 공간을 도입하는 일은 가능한가? 이미 강을 떠난 곳에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 견고하게 자리 잡은 서울에서 접수생활구역(waterfront town)을 만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나 우리는 한강의 모습을 바꾸어보고자 하는 서울시의 노력을 도와야 한다. 한강은 시청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고 국민의 것이다. 그런데 그 한강, 지금의 한강은 시쳇말로 ‘꼴불견’이다. 그 꼴불견의 강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한강은 다시 아름다워져야 한다. 한강을 되살려내기 위한 지혜의 첫 번째 소스는 한강 그 자체다. 무엇보다도 한강은 ‘두터운 문화’를 갖고 있다. 한강 유역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문화유적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복합유적 보유지다.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까지의 유적들도 있다. 미사리와 암사동의 선사주거지들,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의 백제 유적들은 한강을 중심으로 전개된 두터운 문화의 흔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원이다. 한강은 또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삼국에서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다섯 개 왕국에 젖줄을 대준 강이다. 이처럼 두터운 역사를 가진 강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오랜 문화 유적과 기억을 가진 강은 일시적 볼거리나 제공하는 강과는 그 정신적 차원이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전쟁과 상처,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도 한강의 정신문화적 차원을 두텁게 한다. 한강은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팽개쳐온 그런 정신의 차원, 혼의 차원이 깊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3/4
도정일 |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jidoh@khu.ac.kr
목록 닫기

한강의 기억과 비전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