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오세훈 서울시장

CHAPTER _ 1 디자인, 公共, 그리고 한강의 르네상스

  • 대담·송문홍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장 songmh@donga.com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02-06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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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
    “한강에는 문화·관광 고부가가치 산업의 바탕 될 잠재력이 있어”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시민들이 변화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인’ 업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청계천 고가도로를 허물고 물길을 낸 것이 단적인 예다. 이후 청계천은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반면 오세훈 시장이 취임 후 내세웠던 건 창의시정(市政), 공무원 기강 잡기 등 주로 소프트웨어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도 “서울시장을 가급적 오래하면서 인사개혁 등 그간 바꿔놓은 서울시의 시스템을 완전히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여전히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를 더 강조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오세훈판(版) 청계천’으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강 주변을 재정비해 공공의 공간으로 시민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발상은 도심 속에 청계천 물길을 새로 낸 것과 흡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오세훈의 한강’과 ‘이명박의 청계천’ 사이에는 다른 부분이 더 많다. 청계천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재임기간 중 재정비를 끝냈지만, 한강은 오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임기 중 완성품을 보기 어렵다. 청계천 재정비 사업도 도심 속의 생태와 환경을 고려했지만, 한강 프로젝트는 이름에 ‘르네상스’를 붙였을 정도로 생태와 환경, 문화 등 인문학적 가치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건 오 시장이 한강 프로젝트에 자신의 정치적 선전물로 활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연말 분위기로 분주했던 2008년 12월29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오 시장은 활기에 넘쳐 보였다. 기자가 2년 전 오 시장을 인터뷰했을 때 인상적으로 봤던 공약사항 추진 상황판도 한쪽 벽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잠깐 훑어보니 사업성과가 부진하다는 의미인 빨간 딱지는 몇 개밖에 없다. 수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한마디로 서울을 쾌적하고 매력적인 수변(水邊)도시로 재창조하는 겁니다. 한강을 서울의 중심에 놓고 모든 도시계획을 한강 중심으로 재편해나가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강이야말로 서울의 대표상품이 아닐까요? 이걸 잘 세일즈해서 ‘서울 하면 한강, 한강 하면 서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데, 그 중심에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업이 한강이 가진 문화적, 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찾아내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프로젝트의 기본 원칙과 기조를 ‘회복과 창조’로 선정한 것도 그런 취지에서죠. 성장 일변도의 개발과정에서 훼손된 한강의 가치를 회복해서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삭막한 콘크리트 호안을 녹색의 자연호안으로 바꾸는 작업은 ‘회복’에 속합니다. 반면 용산이나 마곡지구 같은 사업은 ‘창조’에 해당하고요.

    프로젝트의 이름에 ‘문화부흥’을 의미하는 ‘르네상스’를 붙인 것도, 이 프로젝트가 본질적으로 단순히 한강의 외관을 바꾸거나 새로운 시설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삶의 질 자체를 풍요롭게 할 문화를 만드는 사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강가 공원에서 가족끼리 둘러앉아 바비큐 파티를 하는 외국 도시의 풍경을 상상해보세요. 한강에는 그 같은 혜택을 누릴 하드웨어적 기반뿐 아니라 그러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소프트웨어적 기반도 필요한 겁니다.”

    - 한강이 단순히 서울의 한강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만.

    “맞는 말씀입니다. 한강은 서울뿐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한 단계 도약할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세계의 젊은 예술가들이 언제부터인가 시애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을 거예요. 자동차 디자인에 열정을 가진 유능한 디자이너와 젊은이들은 바르셀로나로 모여들었죠. 그 도시들이 품고 있는 예술적 다양성이나 유서 깊은 건축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하드웨어적 조건들이 그들을 불러 모은 겁니다. 저는 한강도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와 관광이라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오세훈 서울시장

    매립지에 건설된 오다이바는 일본이 자랑하는 미래형 신도시다. 도쿄 도심에서 자동차로 20∼30분이면 닿는 해변가에 주거 상업 업무 연구 복합단지가 밀집해 있다.

    “강을 공공에게 돌려주겠다”

    ▼ 오 시장 개인에게 한강은 어떤 의미입니까. 개인적인 측면과 공적인 측면이 있을 텐데요.

    “사실 제가 태어난 곳이 한강변인 뚝섬이에요. 성동구 성수동이 제 본적지죠. 제 입술 오른쪽 옆에 희미한 흉터가 있는데요, 뚝섬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넘어져서 생긴 겁니다. 대학생 때는 아버지께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옥수동에 본인 명의로 처음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갔습니다. 1985년 결혼 후에 전세를 들어 산 집도 한강이 제대로 보이는 15층 꼭대기 아파트였고요. ‘그때 한강을 보고 산다는 게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이구나’ 생각하게 됐죠. 이렇게 좋은 것을 몇몇 개인이 독점해서 되겠나 싶더군요.

    본격적으로는 시장선거를 준비하면서 한강이라는 공간을 공공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파리의 센 강이나 뉴욕의 허드슨 강만 해도 한강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빕니다. 이런 도시에서는 강변의 도시계획을 세울 때 언제나 공공공간이 우선시됩니다. 강변에 건물을 지을 때 지켜야 하는 높이나 형태의 기준도 잘 마련돼 있고요. 우리는 그런 측면에서 많이 소홀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강은 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게 됐던 거죠.

    이전에도 한강에 대해 많은 얘기가 있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봅니다. 한강의 사유화를 극복하고 서울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화하자는 생각은 그동안 큰 이슈가 아니었던 거죠. 취임하고 1년쯤 후에 제가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최근에야 재개발 아파트에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땅을 제공받아 공공공간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마스터플랜을 만들면서 아파트가 있는 자리를 덜어내고 물길을 내도록 한 것도 그러한 콘셉트가 반영된 것이고요.”

    ▼ 시장 취임 전에도 가족들과 한강공원에 자주 나가는 편이었습니까.

    “제가 운동을 굉장히 좋아해서요, 압구정동에 잠깐 살 때는 수시로 가서 조깅도 하고 자전거도 탔죠. 국회의원을 한 4년 동안에는 대치동 집에서 한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여의도까지 출근을 했습니다. 한강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산 기간이 꽤 오래인 셈이죠. 동호대교 위만 해도 참 시원하고 좋습니다. 더 많은 시민이 언제든 나와 소풍을 즐길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지금은 시민들에게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죠. 집에서 걸어 나와 차를 갈아타고 어두운 지하통로를 지나서야 비로소 한강변에 이를 수 있으니까요. 한강이 더 다가가기 쉬운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베트남 하노이 홍강 전경(왼쪽)과 개발계획 개념도. 중국 서남부에서 발원하는 홍강은 멀리 통킹 만으로 흘러간다. 수도 서울을 흐르는 한강이 한국을 상징하듯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시를 지나가는 홍강도 그런 존재다.

    ▼ 전두환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올림픽대로는 개발연대의 한강 주변 활용법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아닐까 합니다. 반면 지금 오 시장이 말하는 것은 환경과 생태와 문화가 복합된 공간으로서의 한강 르네상스입니다.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라는 책에서 ‘Code Green’을 역설했습니다. 작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키워드가 ‘그린’이라는 얘기죠. 우리나라에선 오 시장이 이 이슈를 선점한 것 같은데요. 시대적 코드에 잘 맞는다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돌이켜보면 제 인생항로가 그랬죠. 방송을 시작하기 전인 변호사 생활 초기부터 환경과 엮였거든요. 관련 사건을 담당하면서 환경시민단체를 도와주기 시작했고, 점점 더 발을 깊게 담갔죠. 저로서는 그게 인생의 큰 전기가 됐습니다. 그런 부분이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시대와 코드가 맞았다고 볼 측면이 있죠.(웃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한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본질적으로 자연이라는 게 삶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숨쉬는 생명체라는 거죠. 거꾸로 인간 역시 자연과 함께 숨쉬는 생명체들 중 하나일 뿐이고요. 당연히 한강도 마찬가지겠죠.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한강이 아니라 함께 숨쉬는 생명체로서의 한강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강을 우리만의 모델로 개발하겠다”

    ▼ 말씀하신 것처럼 강을 끼고 있는 외국의 유명한 도시가 많습니다. 그간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주로 유럽이나 서구 도시의 사례를 많이 드신 것 같아요. 그러나 문화적·역사적 맥락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도시는 차이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유럽이나 미국, 호주 같은 서구의 도시를 주로 갔기 때문일 텐데요,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일본 도쿄의 오다이바처럼 한강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데 있어 데이터베이스 구실을 해준 도시는 전세계에 고루 분포합니다. 나라마다 다 괜찮은 수변도시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건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봅니다. 도시가 물을 끼고 있으면 굉장히 생동감이 넘치고 부가가치가 생깁니다. 도시계획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를 최대한 이용하는 게 공통된 숙제일 수밖에 없죠.”

    오세훈 서울시장
    ▼ 그런 도시들과 비교해 한강은 어느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까.

    “한강은 그 어느 도시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아주 독특한 형태예요. 양쪽으로 나 있는 고속화도로가 대표적인데, 그게 굉장히 재미있는 숙제예요. 1980년대만 해도 우리한테는 수변공간을 활용한다는 콘셉트가 없었죠. 그저 콘크리트로 발라 치수(治水)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10년 뒤 20년 뒤에 시민들이 어떤 니즈(needs)를 갖게 될지에 대해선 고민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시대에 맞는 콘셉트로 한강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숙제가 있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딜 가도 해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만의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거죠.

    서울시가 요즘 베트남 하노이 시의 홍강 개발 마스터플랜 작성을 돕고 있습니다. 그 작업을 하면서 정말 보람을 느끼는 게, 홍강을 지금처럼 뒀으면 분명 한강의 전철을 밟았을 겁니다. 홍강도 한강처럼 큰 홍수를 겪었거든요. 그런 한계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이름 높은 수변공간은 흉내 내기조차 어려운 거예요.

    반면 우리는 치수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간을 겪은 뒤에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 단계에서 홍강 개발을 도와주다 보니 ‘당신들은 정말 복 받은 줄 알아라’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죠. 홍강이 한강의 전철을 밟지 않고 다음 단계로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외국의 좋다는 수변공간을 가봐도 부럽기는 하지만 그게 우리 사정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아요.”

    ▼ 2008년 10월 영국의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경과 대담한 내용을 보니,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더군요. (웃음) 오 시장이 직무를 매우 흥미로워한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시장직을 맡은 후에 관련 서적을 열심히 읽었습니까?

    오세훈 서울시장
    “책도 봐야죠. 외국의 최고 전문가들이 서울에 와서 도시공간 구조문제를 토론하는 횟수가 매년 최소한 두세 차례예요. 공부를 안 하면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또 시장이라는 자리가 정보가 집중되는 자리다 보니 2~3년 하면 나름 풍월을 읊을 수 있는 수준은 되는 거죠.(웃음) 어쨌든 저로서는 매우 흥분되는 일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 제가 과거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한국은 압축적 경제성장과 압축적 민주화를 거쳐, 이제 문화와 생태 등 복잡한 개념들을 다 함께 고려해야 하는 쉽지 않은 단계에 와 있다.’ 한강의 처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렵지만 보람이 있죠. 제가 이 시점에서 서울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타이밍 때문이에요. 한강변 아파트에 재건축·재개발 시기가 오고 있는 바로 이 타이밍에 강을 업그레이드하는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영원히 기회를 놓치게 되거든요. 앞으로 한강변 아파트가 재개발·재건축에 들어갈 때는 용적률을 높여주는 것 같은 인센티브를 주고 대신 아파트를 뒤로 물러서게 해서 그 공간에 녹지를 만들 계획입니다. 25~30%의 땅을 기부채납 받는 거죠.

    한강변 아파트의 재건축 자체를 촉진할 필요도 있습니다. 마침 건설경기를 활성화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되도록 많은 노후 아파트가 앞서 말한 방향으로 재건축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죠. 곧 재건축에 들어가는 아파트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계획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 정책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한강은 점점 더 많은 아파트 벽에 둘러싸이게 될 테니까요.”

    “10년 뒤를 바라보고 시작한 프로젝트”

    ▼ 사실 한강을 바꿔나간다는 건 매우 복합적인 사안입니다. 몇 해 전 미국 시카고에 갔을 때 호반(湖畔)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스테이크가 정말 맛이 없더군요. 한강변의 레스토랑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일이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여기는 경관이 좋으니 음식 맛은 좀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과 관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까요. 그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설득해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죠. 특히 그 부분은 재산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간단치 않습니다. 한강 프로젝트가 아주 도전적인 일이라는 것이, 이미 사유화된 공간을 공공에 돌려주려면 설득과 타협, 때로는 논쟁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숙제거리가 기다리고 있는 거죠.”

    오세훈 서울시장
    ▼ 반면, 그렇듯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너무 더디게 나타난다면 좀 실망스러운 반응이 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특히 오 시장은 임기 초반에 ‘창의시정’과 같은 소프트웨어 측면에 초점을 맞춰왔는데, 이것도 시민들이 확연하게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거든요. 인기를 먹고사는 정치인으로서 좀 위험한 도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뭐 각오하고 있습니다. (웃음) 반포 한강공원은 오는 봄에, 다른 지역도 가을이면 특화지구가 완성되어 선을 보일 텐데, 제가 요즘 현장에 나가면 계속 강조하는 게 이건 맛보기라는 겁니다. 몇몇 특화사업이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본질은 아니라는 거죠. 제가 시장에 재선돼 4년 임기를 더한다고 해도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골격이 드러나는 단계로 끝날 뿐 완성할 수는 없어요. 어쩌면 제 임기 중에 한강 르네상스의 정수는 보여드리지 못할 수도 있는 겁니다. 워낙 10년 뒤를 바라보고 시작한 프로젝트니까요.

    정치인으로서 모험일 수도 있지만, 먼 훗날에 마곡지구나 용산 업무지구가 완성됐을 때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한강 르네상스가 없었다면 용산지구 부지에 있는 아파트를 헐어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냥 철도정비창 자리에 건물을 세워 외국인 기업을 유치하는 게 전부인, 강과는 완전히 단절된, 지금에 비해 그 가치가 반감된 사업이 됐겠죠. 그렇게 먼 미래를 믿기 때문에 여한이 없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시민들도 한층 성숙해지셔서요, (웃음) 한강 르네상스 같은 큰 프로젝트에서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이라는 걸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 앞에서 한강은 단순히 서울의 강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만, 바꾸어 말하면 한강의 변화도 서울시 차원을 넘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공동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장으로서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고요.

    “한강 르네상스 사업 초기부터 중앙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를 해오고 있는데요. 정부도 기본 방향이나 추진 내용에 공감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특히 한강에 배를 띄워 서해를 거쳐 중국과 연결하는 주운사업 같은 경우는 당연히 서울시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다행히 최근 정부가 경인운하 사업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해서 저희로서는 반갑지 않을 수 없죠. 4대강 정비사업도 마찬가지고요. 그게 필연적인 한강의 운명인 것 같아요.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달까요. 서로 윈-윈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엄청난 재원이 필요할 텐데, 현재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원활한 조달이 가능할까 염려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용산이나 여의도의 경우 국제금융산업을 유치하겠다는 개념을 깔고 만들어진 프로젝트인데, 잘 아시다시피 국제금융산업이 위기를 맞은 현 상황에서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로 복안이 있습니까.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프로젝트 자체의 예산은 연차적으로 재정을 분배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민자사업의 경우에는 어려움이 좀 있지요. 그렇지만 용산이나 여의도의 경우, 국제업무나 국제금융의 중심지를 만드는 일은 시기와는 무관한 서울의 숙제입니다. 국가전략적인 차원에서도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에 도달하려면 한국에 금융중심지 하나는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요. 따라서 서울 안에서도 여러 환경이 금융산업에 가장 적합한 여의도를 국제금융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의도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전면부는 1단계 한강공원 특화지구 사업이 진행되고 후면부 샛강 쪽에는 생태공원이 예정돼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업이 적기에 투자가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침 국제금융센터 건물도 올라가고 있으니까요. 이번 경제위기가 지나고 투자가 본격화할 시점이 아무리 늦어도 한 2~3년 뒤에는 오지 않겠어요? 그렇게 보면 지금이 오히려 여의도와 한강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자를 할 적기입니다. 이를테면 위기에 오히려 투자를 강화해서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할까요.”

    오세훈 서울시장

    4대강 정비사업의 첫 삽을 뜨는 낙동강 정비사업 착공식이 2008년 12월29일 오전 한승수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 안동시 법흥동 낙동강변에서 열렸다.

    “은퇴하면 강 북쪽에서 살고 싶다”

    ▼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할까요. 한강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곳은 어디입니까.

    “저는 한강의 상류나 하류가 길게 이어져 보이는 부분이면 어디든 다 좋은 것 같아요. 한강이 꺾어져 흐르는 강이다 보니 중간중간 그런 곳이 있거든요. 반포 쪽에서도 하류가 쭉 보이죠. 그렇게 긴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어디나 좋은 추억을 만들 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강은요, 자주 나가는 사람이 누려요. (웃음) 강 바로 옆에 살아도 여유 있는 마음으로 창문 한번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곁에 두고도 즐기지 못하는 거죠. 나서는 사람이 임자인 셈입니다.”

    ▼ 은퇴하고 나서도 한강변에 살 생각인가요.

    “그건 뭐 장담 못해요. (웃음) 다만 강 북쪽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죠. 많은 분이 강남을 선호하는 건 교육문제 때문이지 정말 사람이 살 만한 도시는 강북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도 우연히 아이들이 중학교에 갈 시점에 강남 지역구에 공천을 받아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강남 생활을 시작했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반듯반듯한 건물이나 지나치게 넓은 도로나…. 사람들이 살 만한 도시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 오 시장이 추진하시는 한강 프로젝트가 인문학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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