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OBS 사장 물러난 주철환

“행복한 사람은 일터가 놀이터예요 난 여기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어요”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9-03-09 15:0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OBS 사장 물러난 주철환

    사진 박해윤기자

    ‘현재를 즐겨라,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왜 시인이 이런 말을 썼을까? 시인이 성질이 급하니까? 아니, 땡, 대답에 응해준 건 고맙네. 왜냐면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야. 여기 있는 우리 각자 모두는 언젠가는 숨이 멎고 차가워져서 죽게 되지. 이쪽으로 와서 과거의 얼굴들을 지켜봐라. 여러 번 이방을 왔어도 유심히 본 적은 없었을 거야. 너희와 별로 다르지 않을 거야, 그렇지? 머리 모양도 같고, 너희처럼 젊고 패기만만하고, 너희처럼 세상을 그들 손에 넣어 위대한 일을 할 거라 믿고, 그들의 눈도 너희들처럼 희망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시기를 놓친 것일까. 이 사람들은 죽어서 땅에 묻혀 있는지 오래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잘 들어보면 그들의 속삭임이 들릴 것이다. 자, 귀를 기울여 봐, 들리나? Carpe, 들리나? Carpe,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중에서

    주철환(54) OBS 경인TV 사장. 1983년 MBC PD로 입사해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만들며 스타 PD로 떠오른 뒤 이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방송사 CEO를 지내고 이제 또다시 새로운 길목에 들어 선 그를 만났다.

    왜 나이 들었다고 해서 친구를 못 사귄다고 생각해요? 친구를 사귀려면 그 사람을 정말 좋아하기만 하면 돼요. 그러면 친구는 자연스럽게 되는 거야. 진짜 좋아하니까 그냥 진심으로 잘하게 돼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날 싫어할 리가 없어. 그럼 우린 친구가 되는 거죠. 난 싫어하면서 의무감으로 잘해줘야 되겠다 그런 게 없어요. 그렇다고 내가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럼 내가 성자게? 김혜자 선생님 이번에 섭외했는데 그냥 난 그 선생님이 좋았어요. 그래서 대화도 많이 하고 그래서 지금은 정말 친해졌어. 직원들하고도 그렇게 지냈어요. 한꺼번에 250여 명의 사람하고 친해질 수 있는데 얼마나 좋아.

    아, 직원들 이름 다 외운 거요? 난 기억력이 타고났어요. 사실이야. 관심이 생기면 그냥 외워져요. 사진기자 성함이 박해윤씨지? 좀 전에 명함 받았잖아. 친해지고 싶으면 그렇게 외워져요. 나한테는 그게 일이 아니에요. 이건 내가 PD 되기 전에 선생님 할 때부터 그렇게 했던 거야. 선생님들이 애들을 그렇게 부르잖아. “야! 거기 27번! 야! 거기 눈 큰 애! 야 안경 낀 뚱뚱한 애! ” 난 이렇게 부르는 게 안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름 부르는 게 얼마나 좋아. 해윤아! 혜민아! 좋지 않아요? 이름 부르면 학생이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죠.



    난 우리 직원들이 진심으로 좋았어요. 진심으로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고, 그래서 조언하고 그러는데 왜 직원들이 나를 싫어했겠어. 내게 전문성이 있다면 전수해주고 싶고 그랬어요. 건방진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사랑의 화신이야. 민망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요(웃음). 다정다감형이고. 어려서 정에 굶주리고 살아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직원들하고 손잡고 얘기하고 그랬어요. 좋으니까 얘기하고 싶던데요. 내가 사장이 돼서 처음에 한 일이 뭐냐면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를 돌아다닌 거야. 그냥 서로 안부 인사 그런 거 하다가 내가 그래, 오늘의 말~씀! 그러곤 좋은 말 얘기하죠. 처음엔 당황스러워 했는데 나중엔 기다리던 걸요(웃음).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같은 성경 말씀도 해주고. “모든 근심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부처님 말씀도 하고….

    욕심이 있어야 한다고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욕심은 욕구랑 달라요. 디자이어(desire)하고 그리드(greed)랑 어떻게 같아. 한계를 벗어난 게 욕심이야. 욕망이랑 욕구랑 욕심이랑 달라. 욕구쟁이란 말 있어요? 욕망쟁이란 말 있어? 우리한테는 ‘삼불’이 있었어요. 불심 불만 불안. 그걸 삼사로 바꾸자고 했어요. 감사 찬사 봉사. 서로 좀 희생하면 어때요. 그럼 우리 전체가 다 좋아지는 거잖아.

    OBS 사장 물러난 주철환

    사진 박해윤기자

    제 아들이 서너 살쯤일 때로 기억됩니다. 아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방문했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문을 밀었는데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계속 밀었지만 힘만 들 뿐 문은 안 열렸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들이 문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더니 문을 자기 쪽으로 살며시 당겼습니다. 열리지 않던 문이 너무나 쉽게 열리는 걸 보고 저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밀지 말고 당겨라.” 살다 보면 밀어야 할 때도 더러 생깁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밀어낼 때가 아닙니다. 서로 당겨 안을 때입니다. (중략) 함께 지혜와 용기를 모읍시다. 12월의 험난한 파고를 잘 헤치면 안개와 풍랑에 가려 보이지 않던 우리의 희망봉도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 2008년 12월1일 메일 중에서

    내가 보낸 사내 메일을 어떻게 봤어요? 아하, 그 사람하고 친구야? 나 그 사람 참 좋아해요. 희나리라서 더 좋아해. 희나리? 내가 직접 만든 건데 희망을 나누는 리더들이란 거예요. 우리 신입들인데 정말 그렇게 될 거예요, 정말. 걔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요. 내가 학교 투어해서 직접 뽑은 애들이거든. 즐겁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꼭 만나자고 했어요. 돈은 내가 대기로 했고. 그래야 부담 안 되니까(웃음). 걔네들하고 기브 앤 테이크(give&take)를 뭣하러 해요. 내가 돈이 있는데. 대신 걔들은 사랑을 주잖아요.

    우린 많이 놀러 다녔어요. 팀별로 1박 2일 MT 많이 갔어. 가서는 물론 회사 현황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랬지만 대화 많이 했어요. 저 사람 참 마음에 든다, 그러면 친구가 되는 거고, 그게 그렇게 형 동생 사이가 되는 거잖아. 내가 떠난다고 섭섭해하는 직원이 많은데 그러지 말라고 그래요. 섭섭하다는 감정이 있다는 건 단순히 우리가 사장과 직원의 관계가 아니란 거 아냐. 그럼 언제든 만나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형제가 캐나다에 있고 북극에 있다고 해서 형제가 아니야? 요즘 그래서 난 이 말을 자주해. 브라보! 브라더!

    온정은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내가 사랑해주니까 저런 사장을 기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솝우화에도 나오잖아. 북풍이 부니까 사람들이 움츠리지만 온풍이 부니까 사람들이 막 마음을 열잖아.

    메일 쓰는 거 어렵지 않아요. 10분이면 돼. 이렇게 말하면 또 잘난 척 같은데 나한텐 축적된 감정의 호수가 있기 때문에 꺼내기만 하면 돼요(웃음). 이걸 가지고 내가 무슨 문학대회 나가는 것도 아니고, 진심을 담아 쓰면 된다고 봐. 글 쓰는 거 조금 타고나기도 했어요. 이미자 선생님이 노래를 배워서만 노래 잘하는 건 아니잖아. 우리 식구가 보는데 뭘 그렇게 쓰는 걸 부담스러워해요. 그럴 필요가 없잖아, 안 그래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움이 되는 만남을 거부하거나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대주주와도 마음을 열고 대화하겠습니다. 여러분과도 가식 없이 끝까지 대화하겠습니다. 메일로, 문자(010-3357-****)로 시간약속을 잡으십시오. 사장은 그런 일 하는 게 아니라고 조언하지 마십시오. 저는 제 목표와 스타일(C&C Creativity & Communication / H&H Harmony & Humanity)로 승부하겠습니다. (중략)

    최근 한국을 찾은 배우 미아 패로는 평생을 소중하게 간직한 두 가지 R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Respect(존중)이고 다른 하나는 Responsibility(책임)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여러분을 존중하고 제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는 행복을 발견, 발굴, 발명하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 2008년 10월27일 메일 중에서

    연락 왔느냐고? 아, 그럼, 물론이죠. 그런데 요 근래는 슬프다는 게 대부분이에요. 나 때문에 여기 왔는데 사장님 떠난다니까 마음이 울적하다는 내용이 많아요. ‘힘내세요, 사랑해요, 명랑했던 모습 되찾아주세요, 사장님이 슬프면 우리가 슬퍼요’ 뭐 그런 거. 그 전에는 개인적인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OBS 사장 물러난 주철환

    사진 박해윤기자

    물론 이 기자 말대로 사장이 메일 보내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런 사람도 존중하고 난 내 스타일이 있는 거예요. 그것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는데 그게 내 스타일인 것 같아요. 애들이 너무 기운이 없으니까, 우리 회사가 여러 가지로 여건이 어렵단 말이에요. 타 방송사에 비해서 열악하니까 굉장히 좀 뭐랄까 디프레스(depress) 될 수 있는데, 사장이 자꾸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봤어.

    사장하고 대화할 때 경직된다고요? 난 옛날부터 경직은 죽음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어. 요새 시신 발굴하는 거 봐. 다 경직돼 있잖아. 살아 있는 것의 특징은 따뜻하고 유연한 거야. 지금 우리 손은 움직이고 따뜻하잖아. 죽음은 딱 반대야. 딱딱하고 차가운 거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내가 인기 끌려고 이런다고. 근데 인기 끄는 게 왜 나쁘지? 내가 인기를 가지고 사기를 친다면 그게 문제지. 그걸로 끝이라면 인기 끌면 좋은 거 아녜요?(귀여운 웃음)

    나한테 귀여움이 많아서 그런지 나랑 대화하는 거 다들 좋아해요. 애교? 애교도 좋지만 귀여움이 더 좋은 말 같아요. 애교는 목적이 분명한 것 같잖아. 그런데 귀여움은 귀여움을 그냥 받는 거예요. 나하고 같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 많아진다는 거지. 애교는 섭외할 때 많이 썼어요. (두 손을 모으며) ‘선새니임~, 추려언 해즈세여어~네?’ 그럼 허락해주셨어, 대부분은. (웃음)

    난 어려서부터 ‘귀여움이 좋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날 키워주신 고모님이 조그만 가게를 하셨는데 귀여우면 생기는 게 많더라고. 과자도 주시고 과일도 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자기가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라고요? 아이~ 왜 그렇게 생각해. 고정관념이야. 강아지나 어린애를 봐봐. 안아주고 싶잖아. 일단 표정이 귀여워야 해. 표정은 각자 다르겠지~. 장동건의 귀여움이 있고 나의 귀여움이 있고. 난 귀여움 받을 짓을 하지. 이를테면 깜짝 선물을 많이 하지. 있잖아~ 내가~ 자기한테~ 점심 사고 싶은데~ 시간은 없어~ 대신 점심 값을 줄 테니 받을래? 하는 거야.

    사장은 권위를 내세워야 한다고 봐요? 난 새로운 CEO상(像)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위 말하면 프렌드십(friendship), 난 프렌드란 말 좋아하거든.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안 그래요?

    그는 방송이란 시청자에게 행복을 주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5000만명 가까이 되는 국민을 모두 아우를 수는 없지만, 작은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곳이 방송국이다. 당연히 구성원들부터 즐겁고 행복해져야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다.

    그는 직원들이 모두 가족 같고, 동생 같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커피숍에서, 함께 일하는 PD들을 가리켜 ‘우리 직원들’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 동생들’이라고 부른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주 사장은 조금 낯설지만, 새롭고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진희정, ‘CEO처럼 기획하라’ 중에서

    물론 인내심을 갖고 같이 노력하자고 그랬죠. 그렇다고 계속 여기에 있는 게 인내심은 아니거든요. 사장은 수입을 내야 해. 그러려면 한국방송공사와 방통위 그런 데랑 사이가 좋아야 해요. 정치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정치는 굉장히 현실적인 거야.

    친화력이 있다고 정치력이 있는 건 아녜요. 둘은 달라. 친화력 좋은 사람이 민주당 한나라당에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이 다 정치력 좋아요? 친화력이 있다고 해서 정치력이 있는 건 아니라고. 그리고 난 기본적으로 즐거움이 넘쳐야 더 잘할 수 있는데, 여기까지인가 봐 난.

    정치력을 키울 수는 없었어요. 정치력이란 건 파워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자신의 어떤 신념이나 이런 것 관계없이 그 사람에게 가서 붙는 거야. 정치색을 갖는 걸 난 기본적으로 싫어해요. 정치력을 위해선 그래! 정치색! 그게 필요하지. 이렇게 모르네. 붙지 그랬냐고? 붙을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해서 내 인생을 그렇게 짧게 살고 싶지도 않았어. 난 길게 살고 싶어.

    그래도 OBS를 살리기 위해서 키워야 했다고? 난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아요. 왜 내가 정치색을 가져. 그건 미친 짓이지. 왜 아부하고 그래. 난 나를 죽이고 싶지 않아.

    OBS 성공이 내 성공이죠, 물론. 그렇지만 OBS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나를 죽일 수는 없었어요. 노조 앞에서 만약 OBS를 살릴 수만 있다면 자살할 수도 있다고 그랬지만 이것 때문에 청와대에 가서 하고 그런 건… 주철환답지 않아.

    좋은 콘텐츠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게 좋지 않아요? 사람들이 원하기만 하면 OBS를 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게 핵심이에요. 그러니까 어려운 말로 역외재송신(경인지역 외 지역에서 방송하는 것)이 100% 된 게 아니란 거지. OBS가 좋은 것 만들어서 서울 사람들이 봐, 그럼 광고주들이 좋아해, 그럼 방송사는 수입이 나아지니까 더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예요. 지금은 서울에서 반만 볼 수 있는 사실이 광고주들한테 매력이 없는 거예요. 다른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100% 역외재송신이에요. 전 지역에서 다 볼 수 있는 거야. 다만 지역케이블사업자가 채널을 선택할 뿐이죠. 근데 우리는 경인지역 ‘지상파’라는 이유로 타지역에 방송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럼 SBS는 서울방송이니 서울에서만 나와야 되겠네? 그런데 우린 그런 주장 안 하잖아.

    경인인천방송이 서울 나가는 게 왜 문제냐는 거지. 지방방송국들은 지방에만 방송하는 거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요? 거긴 20% 정도만 자체 생산하고 나머진 다 받아서 틀어요. 우린 100% 생산하니까, 그만큼 생산비가 더 드는데 광고주한테 매력이 없으니 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거고.

    사장이라서 이런 얘기하는 게 아녜요, 공평하게 해야 하잖아. 사실 역외재송신 하나만 풀리면 이 회사는 잘될 거야. 광고 수입이 뚫리니까.

    나 때문에 유명 연예인들이 OBS에서 일했다고요? 에이, 그것도 비교지. 난 연예인들 보면서 외로운 사람들이란 생각 많이 해요. 그래선지 사건 나면 변호하는 글을 항상 써줬어. 그래서 날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친(親)연예인이라고.

    창의성을 발휘하려고 그랬죠. 그런데 좋은 작품에는 재능, 열정, 돈, 시간이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여건이 안 좋은 게 많아서 그러기가 어려웠어요. 앙드레 김(을 다룬) 드라마 그런 건 시도했는데 못 했어. 회당 제작비만 2억원 드는데 어떻게 해. 우리가 초기에 한 달에 2억 정도 벌었는데. 그래서 못한 게 굉장히 많아요. 그게 안타깝지. 모든 건 다 제작비지 뭐. 아이디어가 많아도 돈을 쓸 수가 없는데, 오프라 윈프리도 사실 우리가 돈 엄청 지르면 올 수 있지. 물론 그 사람이 돈만 가지고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전원일기 시트콤 하려고 했던 것도 예산상 못 했잖아요.

    그래도 재미있는 거 많이 했어요. 김혜자 선생님이 이어령, 황석영, 김훈, 박완서, 임권택 선생님 이런 분들 초대해서 인생의 가치란 무엇인가 얘기하는 것도 좋았고. 김미화씨랑 내가 ‘문화전쟁’ 진행하면서 보통 TV에는 안 나오는 무대 공연 소개 많이 해서 재밌었고. 거기선 ‘돈 주앙’이란 뮤지컬 오디션도 진행하고, 미술, 국악 이런 거 재미있게 알리려고 했어요.

    나의 꿈은 TV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자신의 취미를 TV 시청이라고 밝히는 날이 오는 것이다. 많은 일반 시청자들이 떳떳하게 TV 매니아라고 말하는 세상이 그립다.

    - 주철환, ‘상자 속의 행복한 바보’ 중에서

    진실과 구라를 묶으면 좋겠다고 한 건 나지만 만든 건 PD죠, 물론. 그래도 진실이 때문에 이런 킬러 콘텐츠를 만드는 게 가능했죠. 근데 진실이가 죽었는데 시즌2를 어떻게 해. 나중엔 토크쇼처럼 됐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작가들이 진실의 의자란 걸 만들었는데 출연자가 거짓말을 하면 그 의자가 막 흔들렸거든요. 지금도 진실이한테는 고마워.

    신생방송 OBS 대표를 맡았다고 하니까 ‘빨리 드라마하세요. 바로 출연할게요’라고 약속했잖아. 난 엉뚱하게 오락프로 MC를 제안했고 넌 경험이 없다며 한동안 망설였지. 결국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어. ‘진실과 구라’는 그래서 탄생한 거야. MC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각오로 넌 열심히 해주었고 화요일 저녁은 늘 뜨거웠지. 네가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화요일 저녁마다 느낀다. 김구라와 함께 나온 포스터에서 넌 여전히 날 지켜보고 있구나. 죽기 전날 느닷없이 전화 걸어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말했지. 내가 할 말을 왜 네가 대신했는지 난 지금도 모르겠다. - 주철환, ‘주철환의 사자성어’중에서

    조언은 이렇게 해요. 프로를 판단하는 기준은 세 개야. 새롭고 유익하고 재미있느냐. 그래서 새롭게 해라 그래. 이게 뭐가 재미있니, 재미없는 걸 뭐라고 하니, 그래. 아, 3ㅅ 말했어. PD는 그게 있어야 해. 상상력 설득력 순발력. 이건 20년 전부터 얘기한 거고, 5성도 있어야 해. 개성 품성 지성 근성 정성. 7ㄱ도 있어야 하고. 관찰 경청 기억 기록 관리 결합 극기. 말장난처럼 얘기하지만 중요한 거잖아요. 이런 거 그러니까 ‘언어의 형제 찾기’는 내 주특기기 때문에 수없이 많아.

    내년도 캐치프레이즈도 만들어줬어요. 내년이 경인년이잖아요. ‘경인년에는 경인TV가 뜬다’, 괜찮죠? 좋죠? (웃음) ‘희망이 경쟁력이다’는 것도 내가 만든 거예요. 난 리더의 자질이 여러 개 있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아주 간결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공자도 그렇고 예수도 그렇고 성인들은 다 그랬잖아. 히포크라테스도 그렇고.

    표어를 가슴에 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잉태돼 생산까지 하게 하면 더 좋은 리더겠죠. 동기 유발을 해주고. 잠자고 있던 뭔가를 딱 깨우게 하는 것, 그게 인스퍼레이션이잖아요. 그 외 동기유발은 어떻게 했냐고요? 음… 아이디어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 준다고 했어요. 매달 20일날 상을 줬지. 내가 20일에 취임했으니 18번 상 준 셈이에요. 50만원씩 줬어.

    회사 분위기가 전보다 좋아진 거면 좋겠는데. 완전히 정착된 건 아니지만 따뜻한 인간관계 그런 건 조금 된 것 같아요. 처음엔 삭막했어. 화가 나 있는 얼굴이야 전부 다, 회사가 어려우니까. 알지 모르겠는데 우리 회사가 얼마나 어렵게 세워졌는데, 2년 반 있다가 그렇게 세워진 건데…. 전부 다 마음이 허하고 뭔가 삭막할 때 정이 넘치는 사장이 온 거지. 그래서 이 회사가 돈만 좀 벌고 그럼 더 오래 있으면서 사실 더 해보고 싶어요. 내가 옛날부터 부르짖었던 게 ‘행복한 사람은 일터가 놀이터’인데 난 여기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어.

    군대시절 그리워하듯 여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아…. 그동안 대표이사회랑 나랑 의견이 달라 괴로웠어요. 노동조합이 항상 나랑 의견이 같은 건 아니잖아. 그전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봐도 시간이 모자랐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요. 나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내가 괴로움으로 단련된 것 같아, 군인처럼….

    날 싫어하는 사람? 당연히 있겠죠. 아이도 자기를 불편해하는 사람 곁에 가면 그걸 느끼잖아. 그럼 난 그 사람 만나면 피해줘요.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거고. 날 싫어하는데 자꾸 가서 알은 체하고 그러는 건 찝쩍대는 거잖아. 그럼 내 자존심도 상하고. 난 억지로 그 사람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아요. 어쩔 수 없는 건 어떨 수 없어. 도전할 필요가 없지. 뭐 난 대체로 사람들이 날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나 같은 스타일을 싫어할 수는 있다고 봐요. 그렇지만 나를 적극적으로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걸 연구할 필요가 뭐 있어.

    난 그냥 착각 속에 살다가 착각 속에서 죽을래. CMO 알아?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겨라.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즐겁다. 죽을 걸 생각해봐. 지금 있는 현재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사실 내가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한다 정할 필요는 없어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게 강박관념이야. 난 과대평가된 부분만 부각돼 유명해진 사람이니까 그 부분은 봉사로 채워야 해요. 어디서 나한테 좋은 말을 해달라 그러면 가고 싶어. 돈은 줘도 좋고 안 줘도 좋고. 그게 내 달란트니까.

    잠이 안 와서 케이블 틀었더니 영화’죽은시인의 사회’가 나오던데 다시 보니까 키팅 선생님이랑 나랑 비슷해. 건방진 소리인지도 모르겠는데 그 선생님은 기성의 것을 거부하잖아요. 그 선생님은 나보다 더 용감하죠 물론. 난 책상 위에 올라가라고 하진 못했어. 그래도 난 교실에서 애들하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그랬~지. (방긋방긋 웃으며) 비슷하지 않아?

    선생님 사장님 교수님 PD의 공통점? 음… 사람들을 즐겁게 변화시키려는 것이 목표라는 거. 선생님은 지식과 지혜를 주면서 케어해주고, 사장은 직원들을 즐겁게 변화시키고, pd도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는 것 아냐. 내 게임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면 너무너무 좋잖아요.난 키팅 선생님 같은 신철수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살게 됐어요. 그분은 내 멘토야.

    난 최선을 다했어요. 그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어요.‘최고가 되고 싶다면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면 죽는 날 최고가 된다’는 게 내 지론이기도 하고. 최선을 다한 것을 진지함으로 결부시키면 안 돼요. 그걸 진짜 시리어스(serious)하게 하는 건 생산성이 떨어지지. 명~랑하게, 유~쾌하게, 신~나게 어떤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살아 있는데 죽은 사람처럼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사람이 가장 갈급하는 게 뭔 줄 알아요? 오래 살고 영원하게 사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게? 알아요? 아니, 아니.그 사람의 영원한 기억 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돈 많은 사람은 사람들이 기억 못해. 하지만 좋은 말과 좋은 행동한 사람은 지금도 살아 있어요.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 정 많은 사람이었다, 친구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기억으로 남는 게 목표야. 좋게 기억 되는 거, 그거면 충분해요.

    나는 지금도 낭만주의자로 대우받고 싶다. 조그만 이익보다는 인간적인 정을 순위에 두고, 이웃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남의 일로 흘려버리지 않는 사람, 교통 체증이 심한 거리에서 발이 묶여 있더라도 그 길가의 가로수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좀 바보스러운 듯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따스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싶다. - 주철환 , ‘30초 안에 터지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간다’ 중에서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