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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언론 농락한 북한의 ‘사진 정치’

사진 속 김정일 영화촬영용 특수조명으로 병색 숨겼다

  • 변영욱│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

세계 언론 농락한 북한의 ‘사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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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얼굴 사진만 작은 게 아니라 북한 신문에 나타나는 인물 사진 대부분에서 얼굴은 작게 표현된다. 이는 신문뿐 아니라 북한 영화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클로즈업은 북한의 영상 매체에서 드물게 나타난다. 이것은 김 위원장의 미학관과 밀접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부터 북한의 문화예술계에 영향을 끼친 김 위원장은 1973년 ‘영화예술론’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북한의 영화 전공자들은 이 책을 외워서 시험을 보아야 한다. 각 부문 촬영담당자들도 이 책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책에“촬영에서 특대사(빅 클로즈업), 대사(클로즈업) 화면들로 대상을 확대하기를 좋아하거나 인물들의 얼굴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보여주는 것은 다 형식주의적인 표현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영화를 전공한 30대 후반의 탈북자 C씨는 2006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교수 중 한 분께서 ‘특대사 많이 하는 연출가 중에서 성공한 사람 보았느냐’고 충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1967년 이전까지 북한 신문에 게재되는 인물 사진은 현재의 한국 신문 사진보다 훨씬 더 클로즈업된 형태였다. 북한 역사에서 1967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해 5월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은 당시 선전과 문화 분야를 담당하던 고위 간부들인 고혁, 김도만, 허석신 등을 유일사상에 위배되는 정책을 시행했다는 이유로 숙청했다. 이 일로 당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급격히 강해졌다. 많은 북한학 학자가 1967년을 김 위원장이 북한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시기로 본다. 또한 북한의 문학, 미술, 음악 등 거의 전 분야 예술 활동이 이 때를 기점으로 굴절을 겪는다. 북한에서 수령체제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북한은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수령의 영상을 화면에 모시는 촬영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넷째, ‘1호 사진’은 1967년 이후 비슷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이 현저하게 커지고 게재 빈도가 높아진 것도 이 시기부터다. 1946년 창간시기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노동신문’에 나타나는 김일성의 사진에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순간을 포착한 사진의 비율이 높았던 것이다. 1967년이 지난 뒤 김일성의 사진은 ‘연출된 사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출 사진이 증가한다는 것은 사진 속의 포즈와 줄거리를 누군가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신문 본사정치보도반



다섯째, ‘1호 사진’은 불필요한 정보를 드러내지 않는다. 북한 방송에는 당연히 김 위원장 관련 뉴스가 많이 나온다. 특기할 것은 방송에서도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사진 한 장을 화면에 몇 초씩 띄워놓고 아나운서가 멘트를 덧붙인다. 지난해 말부터 우리가 흔히 들어본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20장의 사진이 공개됐다”고 하는 것이 이런 맥락이다. 동영상 화면이 없는 TV 뉴스는 우리에게 낯설고 단조롭다. 집중해서 보기도 어렵다.

북한은 왜 김 위원장의 동정보도를 하면서 동영상 화면을 이용하지 않는 것일까? TV와 영화를 선전선동의 중요 도구로 여기는 사회에서 기술력이 뒤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사진이 통제 가능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글과 달리 동영상을 통해 기자들의 의도와 상관없는 다른 정보들이 독자 및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사진 역시 불필요한 정보가 외부로 노출될 수 있지만 동영상에 비해서는 훨씬 통제가 쉬운 매체이므로 최고 지도자의 행보를 보도할 때 유용하다. 북한은 김 주석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최고 지도자 관련 보도를 해왔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의 생활을 담은 동영상 화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화면을 영화처럼 편집해서 보여준다. 정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북한의 의도는 사진설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 위원장의 사진에는 시간과 장소, 촬영자 정보가 보이지 않는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간, 장소, 촬영자 정보가 기술됐지만 1967년부터 정보를 최소화해왔다.

여섯째, 전담 사진기자들이 촬영한다. 1967년까지만 해도 ‘노동신문’ ‘노동자신문’ 등 각각의 매체가 따로따로 김 주석을 촬영했지만 현재는 전속팀이 전담해서 촬영해 배포한다. 전담해서 찍는 사람이 모두 몇 명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들은 ‘노동신문 본사정치보도반’ 소속의 기록사진 전담 사진기자와 화보팀 소속의 예술사진 전담 사진기자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호 사진가’들은 평양연극영화대학 촬영학부 또는 김일성종합대학 신문보도학부에서 양성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聖畵, 佛畵 닮은 ‘1호 사진’

일곱째, 가장 중요한 사람이 화면 가운데에 서 있다. 김일성 생전에는 화면의 중심에 항상 김일성이 있었다. 김일성 사후에는 김 위원장의 얼굴이 지면의 한가운데에 있다. 2009년 1월18일 기념사진은 좌우의 인원이 다르다. 각각 4명과 5명이다. 그런데다 김 위원장은 가운데에 위치한다. 사진의 왼쪽 여백이 오른쪽 끝 여백보다 크기 때문이다. 또한 왼쪽 줄 배열을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느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을 화면 가운데 위치시키고자 북한이 꾸준히 써 온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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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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