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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중년의 사랑’ 연기하는 배우 최명길

“나이 들어도 모든 걸 거는 사랑에 대한 꿈은 멈추지 않죠”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중년의 사랑’ 연기하는 배우 최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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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랑’ 연기하는 배우 최명길

1월30일 ‘미워도 다시 한번’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전인화, 박상원, 최명길(왼쪽부터).

▼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흔히 연기자들의 진심은 진심이 아니라 연기라고 오해받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요. 연기자라는 직업의 숙명일 수도 있겠죠. 특히 남편의 선거를 돕는 과정에서 그런 경험이 있었을 것도 같고요.

“연기가 곧 거짓은 아니에요. 그 역할의 진심을 표현하는 거니까요. 지나온 시절을 얘기하자면 (웃음) 너무나 절절하게 지역주민들과 함께 생활한 시간이 있거든요. 사람들은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정말 잘 알아요. 건성으로 악수하는 것과 사랑을 담아 두 손으로 하는 건 느낌이 달라요. 아무리 뛰어난 연기자라도 그걸 속일 수는 없어요. 오히려 그걸 믿기 때문에 드라마 속 인물의 진심도 표현할 수 있는 거겠죠.”

▼ 간혹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속으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겉으로는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괴로움이랄까요. 적잖은 배우가 그런 상처 때문에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문제 때문에 공허감을 느꼈을 만한 20대 때에는 라디오를 하면서 음악의 위로를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이후에는 가정을 꾸리면서 덜 상처받았던 것 같고요. 워낙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거나 하지는 않아요. 마음 아픈 일이 있어도 그냥 지나가는 건가 보다 생각하죠. 얽매이면 사람이 힘들어져요.

일부러 밝은 모습만 비치려 애쓰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에너지를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데 더 많이 썼죠. 조바심내지 않았던 거죠.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후배가 있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은 게, 여배우가 관심을 쫓아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 날 주목하지 않는지 고민하면 안 된다는 거죠. 연기를 열심히 하면 관심은 따라오게 마련이니까요.



저는 현명함이란 상황판단이라고 생각해요.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조바심 내지 않고 접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최면처럼 어떤 끈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나는 마흔이 되면 어떤 연기를 할 거야, 이 다음에는 꼭 세계영화제에 나갈 만한 작품을 할 거야, 스스로 그런 다짐을 하는 거죠. 실현되지 않아도 중요치 않아요. 끈을 놓치지 않고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 거죠.

다행히 저는 제 남편의 안목이 꽤 높은 편이라고 믿거든요.(웃음) 남편이 인정하면 다른 사람들도 인정할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곤 해요. 결혼 전에는 부모님이 있었고요. 어떤 분은 제가 혼자 살아도 잘 살았을 거라고 하시는데, 저는 정말 혼자 못 있어요. 그랬으면 밖에서는 강하지만 안에서는 외롭기 그지없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죠.”

때가 아니면 엎드려 있어라

▼ 배우 못지않게 시선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 정치인일 테고, 역시 대중의 관심에 항상 목마른 직업입니다.

“직접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조하는 것뿐이니 잘은 모르지만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죠. 쉽지 않아요. 정치도 상황의 부침이 심하고 스트레스가 심하니까요. 선거만 해도 그렇죠. 남편은 서울시 최다득표를 할 정도로 인기가 좋은 정치인이었지만 탈당 같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적도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그 일이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결정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걸 빨리 깨달아야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잘 알기 때문에 저는 남편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사극할 때 기억에 남은 대사 중에 ‘때가 아니면 엎드려 있어라’는 게 있어요. 그런 정치적인 의미가 담긴 대사를 보면 ‘이 뜻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여배우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웃음) 앞으로의 시간도 잘 보내야겠다 싶은 게, 이제 아이들이 엄마가 배우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나이가 됐어요. 엄마가 어떤 드라마를 하는지,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최고라고 추켜가며 격려도 해줘요. 그걸 보면 정말 잘해야겠다 싶죠. 다른 말이 필요 없어요, ‘잘’ 해야 되는 거고 ‘잘’ 살아야 되는 거죠.”

한 발짝 한 발짝

▼ ‘중년의 사랑’이 지금 촬영하고 있는 드라마의 소재입니다. 그런 사랑에 동의하십니까. 부와 명예와 목숨까지 거는 그런 사랑이 그 나이에도 과연 가능할까요.

“솔직히 드라마 속에서 이정훈(박상원 분)과 은혜정(전인화 분)이 나누는 게 사랑이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말도 안 되죠. 아무리 첫사랑끼리라지만 유부남이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는 건 사기고 불륜이죠. 그럼에도 많은 분이 공감하시는 건 누구에게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는 첫사랑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모든 걸 다 거는 사랑이 그 나이에도 가능할까…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모든 것에 지치면 가능하겠죠. 부와 명예의 덧없음에 실망하고 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세상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분명한 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런 사랑을 꿈꾸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게 공감의 이유죠, 일종의 대리만족으로서. 어느새 나이가 들고 흰머리가 늘었지만 그래도 가슴 한구석에는 사랑이 남아 있다는.”

▼ 본인에게는 나이가 어떤 의미일까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결혼 전에는 예술성 강한 영화로 국제영화제에서 상도 받았지만, 정치인의 아내라는 길을 택한 후에는 대중적인 드라마에서 더 많이 연기한 게 눈에 띄더군요.

“그건 아니에요. 결혼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그런 영화의 배역 제의가 줄어들긴 했고 욕심나는 배역이 사정 때문에 뜻대로 안 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도 영화 출연을 하고 싶고 하려고 해요. 결혼과 영화는 전혀 별개였으니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죠.

저는 제가 현재의 나에게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 게 좋아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나이 든 배역을 맡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주도적으로 움직일 공간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믿어요. 이 다음에 더 나이가 들면 또 어떤 배역을, 그 다음에는 또 어떤 연기를 하고 싶다고 꿈꾸는 것도 좋아요.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쯤에서 눈치 챈 독자도 있겠지만, 지난 14년의 만만치 않은 삶에도 시간을 마주하는 그녀의 생각은 변함이 없는 듯했다. 대중에게 비친 이미지는 바뀌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대로였다. 어쩌면 다시 14년 뒤 환갑을 마주해도 역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남았다. 그것이 여배우 최명길이 세월의 흐름을 타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방식이니까 말이다.

신동아 200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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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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