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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특별함 ③

애플 CEO 스티브 잡스

위기, 그리고 기회

  • 전원경│주간동아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애플 CEO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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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CEO 스티브 잡스

최근 잡스의 건강 이상설로 애플의 주가는 대폭 하락했다. 사진은 2008년 3월 아이폰 관련 기자회견 모습.

마침 회사 경영실적도 하락세였다. 매킨토시에서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가짓수가 적다는 이유로 소비자는 매킨토시를 외면했다. 매킨토시 판매가 1984년 들어 월 1만대 이하로 떨어졌다. 스티브와의 갈등으로 유능한 엔지니어들은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그와 함께 애플을 창업했던 워즈니악마저 떠났다.

결국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진원지는 애플의 이사회, 그중에서도 1983년 스티브가 직접 펩시콜라에서 영입한 마케팅 전문가 존 스컬리였다. 이사회는 스컬리를 애플의 CEO로 임명하고 스티브에게는 ‘프로덕트 비저너리(Product Visionary)’라는 이상한 직함을 줬다. 실질적 권한은 없는 명목뿐인 직함이었다.

뒤늦게 반란을 눈치 챈 스티브는 사태를 되돌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사회 멤버들은 스티브의 독선과 아집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1985년 5월28일, 스티브는 회사 내 유일한 친구인 마케팅 이사 마이크 머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사회가 자신을 축출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머리는 스티브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가구 하나 없는 스티브의 집은-지금도 스티브는 집에 가구를 거의 들이지 않고 살고 있다- 어둠에 싸여 있었고 스티브는 매트리스 위에 누워 울고 있었다. 머리가 다가가 그를 안아주자 스티브는 한 시간 동안 말없이 눈물만 쏟았다. 아무리 천재 기업가라도 해도 스티브는 갓 서른의 청년이었다. 그는 10년 동안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온 회사를,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스티브는 유럽으로 갔다. 이탈리아와 스웨덴을 자전거로 돌면서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들을 모두 잊으려고 애썼다. 그는 막 시작된 민간인 우주왕복선 탑승을 NASA에 신청하는가 하면,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정치 컨설팅 회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NASA는 챌린지호에 탈 최초의 민간인으로 여교사인 크리스타 매콜리프를 선발했다(아이러니하게도 매콜리프가 탑승한 챌린지호는 1986년 1월28일 발사 73초 만에 폭발했다).

유럽을 떠돌던 여름, 스티브는 불현듯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제일 잘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뛰어난 인재로 작은 팀을 구성해서, 그들과 함께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파는 일, 이것이 내가 제일 잘하며 또 즐기는 일이다. 바로 애플II나 매킨토시를 만들 때처럼.”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자 눈앞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걷혔다. 스티브는 ‘뉴스위크’에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서른 살이다. 아직 뒤에 물러나 선생 노릇 할 때는 아니다. 나는 물건을 만드는 게 꿈이다. 애플에 그런 일을 할 자리가 없다면 내가 그런 자리를 찾아야 한다…. 애플에서 보낸 10년은 내 삶에서 최고의 날이었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내 인생을 살고 싶을 뿐이다.’ 스티브는 컴퓨터 회사 ‘넥스트’를 설립하고,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를 조지 루카스 감독에게서 인수해 ‘픽사(‘픽셀Pixel의 동사형)’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음’이라는 뜻인 ‘넥스트’라는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처음’은 언제나 애플이었다.

이후 10년간, ‘넥스트’는 고전했지만 ‘픽사’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스티브는 정말 중요한 것은 컴퓨터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꿈과 감동을 주는 ‘콘텐츠’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픽사’를 인수했던 것이다. 최초의 CG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가 개봉된 1995년까지 스티브는 파산 직전의 상황까지 몰리며 천문학적인 자금을 ‘픽사’에 쏟아 부었다. 1991년 디즈니와 후원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픽사는 진작에 파산했을 것이다.

1995년 ‘토이스토리’가 개봉됐을 때 스티브의 자금상황은 최악이었다. 빚잔치를 하기 위해서는 ‘토이스토리’가 최소 1억달러는 벌어주어야 했는데, 본격적인 영화도 아닌 애니메이션이 그 같은 수익을 올린다는 건 영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해 11월 개봉된 ‘토이스토리’는 3억58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 개봉된 픽사의 애니메이션 ‘벅스’‘몬스터 주식회사’‘니모를 찾아서’‘인크레더블’은 차례차례 전작의 흥행기록을 갱신해나갔다. 창조성과 기술을 결합하겠다는 스티브의 과감한 투자가 대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픽사는 2006년, 74억달러의 가격으로 디즈니에 매각됐다. 스티브는 디즈니 주식의 7%를 보유해 디즈니의 개인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왕의 귀환, 애플로 돌아오다

오 헨리의 작품 중에 ‘인생은 회전목마’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이 말은 스티브의 인생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스티브의 승승장구에 반비례하듯, 애플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 1995년, 즉 스티브가 애플을 떠난 지 10년 후 애플은 컴퓨터업계 시장점유율 8%의 초라한 기업으로 전락했다.

1997년 ‘타임’에 ‘스티브 잡스의 임무: 애플을 살려내는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애플 내에서도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잡스뿐’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는 애플의 요청을 거절하고 애플 주식 150만주를 팔아치운다. ‘나는 애플에 미련이 없다’는 제스처를 취한 셈이다. 그러나 속마음은 다르지 않았을까? ‘첫사랑’인 애플을 스티브가 버릴 수 있을까? 애플 CEO였던 길 어밀리오는 1998년 출간된 회고록 ‘애플에서 보낸 500일’을 통해 스티브가 이미 1995년 자신을 찾아왔다고 털어놓았다. 스티브가 어밀리오에게 자신이 애플에 복귀할 것이라며, 이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여론에 떠밀렸던 것인지, 아니면 3년에 걸친 치밀한 계획의 결과였는지는 미지수지만(어쩌면 둘 다였을지 모른다) 스티브는 1997년 ‘임시(Intern) CEO’라는 직함을 달고 애플에 복귀했다. 그리고 스티브는 다시 한 번 미다스의 손을 움직인다. 영원한 라이벌로 여겨졌던 마이크로소프트의 후원계약을 이끌어낸 데 이어(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맥에 탑재되었다), 컬러풀한 차세대 컴퓨터 ‘아이맥’, 디지털 음악네트워크 ‘아이튠’, 음악재생기기 ‘아이팟’ 등을 연달아 개발해냈다. 이를 통해 한물간 기업 애플은 디지털 시대의 총아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스티브가 복귀한 지 3년 만에 애플 주가는 여덟 배 이상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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