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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⑤

가족, 상처의 근원이지만 희망의 근원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가족, 상처의 근원이지만 희망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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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상처의 근원이지만            희망의 근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길버트 그레이프에게 가장 큰 고통은 이 지긋지긋한 일상이 반복적이라는 것이다. 길버트에게 골칫덩어리 가족으로부터 탈출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가족이라는 연대감은 엄마의 몸무게처럼 그를 무겁게 짓누른다.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듯이 살아가던 길버트는 캠핑카에 몸을 싣고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소녀를 만나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을 떠난 엄마와 무거운 엄마의 시신을 집밖으로 꺼내는 과정을 통해 길버트는 쳇바퀴 돌듯 희망 없던 골칫덩어리 가정으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마련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길버트 그레이프의 답답한 가정사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다. 감독 라세 할스트롬은 무겁고 갑갑한 길버트의 삶에 유랑과 자유의 가능성을 준다. 그는 가족이 주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그것을 지나친 절망의 원인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듯이 가족으로 인한 고통은 필연적이지만 보편적이기도 하다. 가족이란 그 모습을 달리할 뿐 어떤 개인에게든 짐스러운 비밀의 일부임에 분명하니 말이다.

대재벌의 사생아로 자란 아들이 마침내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매그놀리아’의 메시지도 여기서 멀지 않다. 사기꾼에 협잡꾼 가까운 아들은 자신을 외면했던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영화 ‘매그놀리아’의 백미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던 화해와 용서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그때, 개구리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매그놀리아’는 가족과의 화해라는 것이 개구리가 비가 되어 내리는 일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화해는 가족이기 때문에 더욱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하다. 나의 부모이고, 나의 자식이기 때문에 보편적 관대함이 어려워진다. 가족이란 최소한의 요구와 최대한의 필요라는 모순 속에 놓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부자관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인륜이라고 표현한다. 인륜이란 인간을 동물로부터 격상해주는 근본적 윤리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윤리가 그저 본능의 힘을 빌린 자연발생적 감정만으로는 지탱될 수 없는 것임을 짐작케 한다. 가족이라는 관계, 그 안에는 인간이기에 참고 견뎌야만 하는 윤리가 있다.

가족은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발명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가족은 친밀성과 연대, 그리고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존의 관계다. 우리가 전통적 가족의 요건으로 생각해왔던 혈연관계나 위계질서는 가족의 하위 개념이기는 하지만 필수 조건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제 가족의 정상성은 그 형태가 아닌 신뢰 관계와 기능에 의해 판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과 행복의 양가적 역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은 그런 점에서 가족의 이상적 의미를 제시하는 작품이다. 여성학 교과서처럼 선언적인 부분이 있지만 김태용 감독은 영화를 통해 결국 가족이 상처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희망의 시작일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영화에는 두 명의 여자를 모두 ‘엄마’라고 부르는 채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채현은 자신을 보호하고 키워준 두 여인을 큰엄마, 작은엄마 혹은 친엄마, 새엄마로 구분하지 않고 그냥 ‘엄마들’로 부른다. 삼촌이라는 통칭을 두고도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를 엄연히 구분하는 한국의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채현의 호명법은 이채롭다 못해 혁명적이다. 영화 속에서 가족은 남자 아버지, 여자 어머니라는 생물학적 구성이 아닌 부성과 모성이라는 본질적 기능으로 운용된다. 권위로 억압하는 아버지나 집착을 애착과 혼동하는 어머니가 아닌 이해하고 사랑하고 보호해주는 부성과 모성의 공간, 그곳이 바로 가족인 셈이다.

기든스나 벡의 말처럼 이제 가족을 가족으로 통합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위계나 권위가 아닌 친밀성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아닌 사랑, 어머니의 애착이 아닌 보호가 부부단위의 친밀성을 근간으로 가족이라는 체제를 유지하고 보존해주는 것이다. 생물학적 혈연이나 권위가 아닌 친밀성이야말로 현대 가족의 필수 요소다.

가족, 상처의 근원이지만            희망의 근원
강유정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국문학)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선(영화평론),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문학평론),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문학평론)

現 고려대·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서정주는 시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라고 돌이킨다. 애비가 종이었기에 그 수치심은 시인의 생애에 바람을 불러온다. 가족이란, 그렇다. 부끄럽고, 부담스럽지만 또 한편 애틋하고 애잔하다. 예술가는 한 번쯤 자신의 가족에 대해 고백해야만 진정한 자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한다. 가족에 대해 낱낱이 고해하는 것, 그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곧 나의 내밀한 상처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벗겨내는 것과 같다. 가족에 대한 비밀, 상처는 자존심의 근원이자 영원한 비밀이기도 하다. 예민한 영혼을 가진, 누구에게나 가족은 고통과 행복의 양가적 역설이다.

신동아 200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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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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