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노동문제 전문가 제언

“숫자 늘리기보다 절실한 건 ‘좋은’일자리 만들기”

  •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bhlee@cau.ac.kr│

    입력2009-05-07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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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문제 전문가 제언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유령처럼 전세계를 휘감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유럽을 넘어 아시아로 옮겨와 100년 만의 공황 조짐을 안겨주었다. 세계적 불황이 닥친 요즘 일자리 문제가 많은 나라의 큰 걱정거리로 대두됐다. 미국의 경우 올 3월 말 현재 실업자가 1967년 조사 이래 최대 규모인 572만8000명으로 실업률 8.1%를 기록했으며, 영국(6.5%)을 포함해 유럽(8.2%) 전역에서 높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일본 역시 실업률 4.4% 실업자 수 299만명으로 보고됐다. 러시아는 실업자 수가 640만명에 달했는데 경제위기가 지속될 경우 연말에는 700만명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08년 전세계 실업률이 6.0%에 달해 2007년의 5.7%보다 0.3%포인트 상승했으며 경제 불황이 올해에도 지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낮게는 6.1%에서 높게는 7.1%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에 발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는 G7(선진 7개국)의 실업자 규모가 2010년 후반에는 2007년 중반의 2배 수준인 3600만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업자 100만, 잠재실업자 400만 시대

    한국도 지난해 10월부터 급속한 경기하강으로 4/4분기에 3.4%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12월에는 일자리가 증가하기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경제상황은 올 1, 2월에 더욱 악화돼 실업률이 4%대에 육박했고 실업자 90만명을 바라볼 정도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올해 정부 전망대로 마이너스 4% 성장을 할 경우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고 실업률이 4.4%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공식 실업률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우리 사회의 일자리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사실은 400만명에 달하는 구직단념·취업준비·불완전취업 등의 잠재실업자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OCE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세자영업자도 최근 경기불황에 직격탄을 맞고 17만명이 줄어들어 511만6000명 수준으로 하락했고, 청년층의 일자리난이 심각해 2006년 이후에는 취업준비자가 실업자 수를 초과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 실업급여와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자 수는 2008년 11월 이후 크게 증가해 2009년 2월 현재 각각 10만8000명과 14만3000명을 기록했다.

    제레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사실 일자리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로서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의 걱정거리였다. 특히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다 보니 매년 45만~46만명의 대졸 청년이 노동시장에 신규 진입하지만 그들의 기대수준을 충족할 만한 일자리가 없어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일자리 문제가 크나큰 사회문제로 제기됐다.

    미국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이미 1995년에 서구 사회에서 성인인구의 다수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빗대어 ‘노동의 종말’이 도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서구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기술혁신을 통해 20%의 전문기술인력이 인구 100%의 소비욕구를 충족하고도 남을 만큼 생산력을 확보함에 따라 80%의 인구가 더 이상 일할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프킨의 암울한 전망과는 달리 노동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내다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는 250년 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왕성해진 기술혁신에 의해 노동자들이 필요에 따라 소비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는 ‘노동 해방’의 공산사회를 이룰 것이라 희망 섞인 예언을 남겼다. 또한, 저명한 미래학자인 다니엘 벨 역시 저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기술발전과 산업구조 고도화에 의해 탈산업사회로 바뀜에 따라 대부분의 노동자가 보다 인간적인 노동환경에서 지적인 일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기술혁신과 생산력 발전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상반된 예측이 교차하지만 이들의 전망은 공통적으로 기술결정론적인 경향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들이 국가별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제도, 고용정책기조에 따라 노동 환경에 상당한 편차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 동안 전세계의 일자리는 어떤 변화 추세를 보였을까. ‘표 1’에서는 세계 및 주요 경제권역별 고용률(15세 이상 인구대비 취업인구 비율)을 예시하고 있는데, 노동에 대해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전망 모두 현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세계적 고용률은 경기 변동을 반영해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1998년의 61.8%로부터 2008년(추정치) 61.2%로 전반적인 하락세를 드러내고 있다. 세계 전체의 고용률 변동추이에서 일자리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별로 살펴보면 일자리의 감소세가 공통적인 것은 아니다.

    1998∼2008년 중남미(+3.3%)와 북아프리카(+2.2%), 그리고 동유럽(+1.2%)에서는 고용률이 일정한 증가세를 보였고 동아시아(-2.7%)와 동남아시아(-0.4%)에서는 감소세를 나타냈으며 북미와 EU의 선진국들과 중부와 남부아프리카에서는 별 변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역별 고용률 증감추세에서 산업화 수준과 경제체제 그리고 사회문화에 따라 상당한 편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경제수준이 높은 선진국 경제권의 고용률이 평균 56.4∼56.5%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고용의 양(일자리 수)만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노동의 미래를 단순히 비관적 또는 낙관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세계 전체의 고용률 추이를 성별로 구분해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 1998년의 74.6%에서 2008년에는 73.1%로 하락한 반면, 여성은 같은 기간에 49.0%에서 49.3%로 상승해 성별에 따라 상이한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별 고용구성에서는 1998∼2008년 1차산업(농림어업)의 고용비중은 전세계적으로 40.8%에서 33.5%로 감소한 반면, 3차산업의 서비스부문이 38.1%에서 43.3%로, 그리고 2차산업의 제조업부문이 21.1%에서 23.2%로 각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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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률은 전세계적으로 1998년 6.1%에서 2008년 6.0%로 다소 감소했으며, 동남아시아(+0.9%)와 중부·남부아프리카(+0.2%)를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 대부분에서 하락세를 보였다. 남녀 모두 이 기간에 0.1∼0.2% 실업률이 낮아졌다. 전세계적으로 실업자 수는 1998∼2008년의 기간에 1억6590만명에서 1억9020만명으로 약 2430만명이 증가했는데 경제활동인구가 전반적으로 더 빠르게 늘어나 실업률은 감소 추세를 보이는 것이다. 성인과 청년의 경우 같은 기간에 각각 전세계적으로 1640만명과 790만명이 늘어났으며 성인실업률 대비 청년실업률은 이 기간 내내 2.8배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에 국한해 살펴봐도 일자리 숫자만 봐서는 위기라고 할 만큼 고용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1999년에 실업률이 한때 7.0% (149만명), 6.3%(137.4만명)로 상승했지만 2000년 이후 경기회복으로 2008년까지 연평균 3.43%의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고용률 역시 1998∼1999년에 56%대로 떨어졌으나 2000년 이후 2008년까지 평균 59.5%로 상승해 세계 전체 평균에는 못 미치지만 서구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최근 경제 불황 탓에 고용상황이 악화됐지만 지난 10년 동안 고용률이나 실업률과 같은 고용지표의 변동추이를 살펴보면 전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 노동의 종말을 예언하던 리프킨류의 비관적인 전망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문제 전문가 제언

    전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 문제 역시 전세계적인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노동위기와 양극화

    그렇지만 고용의 질 면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분배구조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따라서 노동의 위기는 소득양극화의 추세에서 찾을 수 있다. 2008년에 발간된 ILO의 ‘노동세계 보고서: 금융세계화시대의 소득불평등’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에서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 세계 전체의 고용 총량이 약 30% 늘어난 가운데 조사대상 73개 국가 중 3분의 2에서 고소득가구의 총수입이 저소득가구에 비해 훨씬 빠르게 증가했으며, 51개 국가에서는 전체 소득 중 임금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 또한 조사대상 국가의 70%에서 최상 10분위와 최하 10분위 간의 임금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영세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로 구성된 취약노동계층의 비중이 1997년 53.6%에서 2007년 50.6%로 감소했고, 하루 미화 2달러를 버는 빈곤노동인구가 13억6000만명에서 12억명(40.6%)으로 줄었다. 하지만 상위소득자와 중·하위소득자 간의 상대적 격차 역시 갈수록 벌어졌기 때문에 노동양극화 위기가 심화됐다고 할 수 있다. 비근한 예로 미국의 경우 2003∼2007년 기업 임원의 실질소득이 총 45% 상승해 종업원의 임금이 15% 인상된 데 비해 3배 높았으며, 2007년 기준 미국의 15대 기업은 임원들의 급여수준이 일반 종업원 급여의 500배 이상 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같은 기업 내 급여격차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독일·홍콩·네덜란드·남아공화국 등의 선진국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양극화 경향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표 2’에서 예시하듯 198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확대됐다. 5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100으로 삼을 경우, 30∼99인 규모의 중소기업에 속한 근로자의 임금은 1986년의 92.4에서 2007년에는 65.3으로 떨어졌으며, 10∼29인 규모의 영세기업에서는 임금수준이 같은 기간에 90.0에서 59.2로 하락했다. 이처럼 지난 20여 년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들 사이 임금격차는 날로 확대됐다. ‘표3’에는 우리 사회 고질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상대적 임금수준이 정규직에 비해 최근 수년 동안 계속해서 떨어져 절반 수준(50.2)에 그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같이 근로자의 임금격차가 갈수록 확대됨에 따라 소득분배의 불평등구조는 더욱 심화됐다. 근로자가구의 소득분배 구조는 1993년까지 개선되다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소득불평등지표로 활용되는 소득5분위배율(상위20%와 하위20%의 소득격차)과 GINI계수(소득분배의 불균형 수치. 0~1 사이의 값을 가지며, 0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낮다)를 살펴보면 각각 1993년에 4.13배와 0.277이었다가 2007년에는 5.12와 0.306으로 증가했다. 한국의 2인 이상 근로자(도시)가구에 있어 중위소득의 50% 미만에 해당되는 OECD 기준 상대적 빈곤율이 1996∼2007년 9.40%에서 12.53%로 늘어나 역시 소득격차가 확대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노동의 위기는 일자리의 소멸에 따른 노동의 종말에서 야기되기보다는 근로자 간의 소득격차와 차별이 날로 확대되는, 이른바 양극화에 의해 빚어졌다고 진단할 수 있다. 그러면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노동양극화가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국가 간 정치·제도·문화규범 등에 있어 고유한 조건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양극화의 확대 정도가 나라마다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노동양극화가 20여 년 동안 심화돼왔다는 점에서 그 배후에 작동하는 세계적인 차원의 메가트렌드(mega trends), 즉 거시적인 사회구조변동을 그 주범으로 지목할 수 있다.

    심화되는 양극화의 원인들

    첫 번째 구조변동으로 국가 간 그리고 기업 간 무한경쟁(race-to-bottom com-petition)을 가속화하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물결을 들 수 있다. 1980년대 말 동구권의 몰락과 더불어 자본주의적 경제질서가 범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된 가운데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과 자유무역질서의 확립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가 전면 개방체제로 전환했고 예외 없이 세계화의 시장전제주의(market despotism)에 시달리게 됐다. 이에 더해 한국을 포함한 상당수의 개도국은 경제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IMF의 구제금융 차입조건으로 시장개방과 투자자유화를 보장하는 규제완화를 강요받았다.

    또 다른 메가트렌드의 구조변동으로는 정보·지식경제로 이행하면서 생력화(省力化·laborsaving)를 구현하는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두드러지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정보재의 생산, 유통에 있어 승자독식의 게임법칙(winner-take-all game rule)이 지배하게 됨에 따라 고급지식노동과 단순육체노동 간의 근로환경 격차가 현저하게 확대됐고 이른바 ‘20:80의 사회’가 도래했다. 아울러 탈산업화와 고학력화는 노동의 개체화를 강화해 이들 노동자집단 내부의 연대의식 토대를 크게 약화시켰다. 그리고 이는 산업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노동조합운동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좋은 일자리’ 줄고 ‘나쁜 일자리’ 늘고

    이 같은 사회구조변동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정규인력을 대폭 줄이는 한편 비정규직 노동으로 대체해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사업부문의 외주화(outsourcing)와 분사화(spin-offs) 등을 통해 다양한 협력업체와의 가치사슬(value chain)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기업들의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의해 ‘좋은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비정규직 등 ‘나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다. 변화된 경영환경에 발맞춰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하면서 핵심인력에게는 엄청난 급여보상과 복지혜택을 안겨준 반면 주변업무의 비정규인력과 국내외 하청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는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을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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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변화(세계화와 정보·지식경제로의 전환)와 함께 전후 포드주의의 번영기 당시 외형성장을 통해 수익 일부를 중소협력업체들과 소속근로자, 지역공동체와 공유하며 수익환류(trickle-down)효과를 만들어냈던 기업들이 오로지 자신의 수익성 증진을 위해 하청업체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를 수탈하는 수익독식(squeeze-up)기제를 살벌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업들에 의한 단기수익 중심의 고용관리 및 사업관행이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낳는다는 문제의식이 조성돼,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규율·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1980년대 초 이래 전세계적으로 유연화·탈규제화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담론이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함에 따라 기존의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체제가 약화·해체됐다는 사실이다. 시장만능적 경쟁논리에 의해 근로자 대중의 사회경제적 생활기반이 침식됐고, 취약노동계층이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으며 그들의 생활 조건이 상당히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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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넘어

    따라서 오늘날의 진짜 노동위기는 다수의 노동자가 양극화의 덫에 갇혀 계층상승을 꿈꾸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자리의 질마저 불안정하고 열악하다는 데 있다. 물론 당면한 노동양극화 문제가 세계화·정보화·지식경제화·탈산업화·고령화 같은 거대한 지구적 변동에 의해 야기된 측면이 있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담론에 의해 노동시장 유연화와 시장경쟁논리가 일방적으로 추구됐다는 점에서 각국 정책당국자의 주체적 선택에 의해 빚어진 산물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현재의 세계적 불황은 금융위기에서 촉발됐지만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그 본산지라 할 수 있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기존 경제기조에 대한 전면수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궤도수정은 당면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양극화의 노동위기를 완화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노동문제 전문가 제언

    일자리 문제는 청년층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중장년층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MB 정부의 ‘땜질’ 일자리 대책

    한국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에 의해 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산됐고 하청업체들의 고용조건이 악화됨에 따라 양극화의 노동위기가 고착화됐다. 이제는 그러한 노동현실을 강요해온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정책담론이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더불어 민간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더 많은 근로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유도·촉진하는 정부정책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당면한 실업문제를 대처함에 있어 그저 한시적인 일자리 늘리기에만 치중할 뿐, 제대로 된 일자리 만들기에는 무관심하다. 이를테면 청년실업대책으로 추진되는 청년인턴제는 길어야 10개월 지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땜질식 일자리일 뿐이고, 취약서민층 40만가구를 위해 6개월짜리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희망근로프로젝트 역시 지난 외환위기 당시 실패했던 공공근로사업을 재탕하려는 것이다. 녹색성장뉴딜 정책 또한 토목공사 위주로 추진돼 한시적 건설일용직 일자리 창출효과만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문제 전문가 제언
    이병훈

    195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美 코넬대 노사관계학 석·박사

    現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저서: ‘양극화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서비스사회의 구조변동’ ‘Strikes around the World: 1968-2005’ ‘Employment and Industrial Relations in Korea’


    이처럼 당장의 화급한 실업문제를 피하려는 정부의 단기처방은 오히려 그동안 고착화되어온 양극화의 노동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당면한 실업대란에 대처함과 동시에 노동양극화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공공적 서비스부문의 확충, 근로시간의 단축, 청년고용의무제의 도입, 사회적 일자리 확대와 고용의 질 개선 등이 필요하다. 이 같은 일은 좋은 일자리의 창출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부분이다. 요컨대 나쁜 일자리를 양산해온 신자유주의 경제패러다임에 의해 노동의 종말이 현실화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나누기를 지향하는 정책담론의 발상전환과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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