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MB의 대운하 자문위원’ 한병훈 직격탄

“지난 대선 MB캠프 ‘대운하 엉터리’ 알고도 밀어붙였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9-05-09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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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의 대운하 자문위원’ 한병훈 직격탄

    2007년 대선 당시의 한반도대운하 조감도.

    식수의 대부분을 강에서 조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수원지(水源池)에 운하를 건설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정밀한 기술을 자랑하는 독일에서도 최근 운하 내 선박 침몰사고가 났는데, 한국에서 운하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에요.”

    2007년 5월29일 광주5·18기념문화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경제분야 정책토론회.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간 첫 TV토론 성격의 이 자리에서 홍준표 의원이 이명박 경선후보에게 한 말이다. 오스트리아 ‘빈 동아시아연구소’의 한병훈(47) 부소장은 “독일 운하에서 선박 침몰 사고가 났다는 이 말에 이명박 후보와 그의 선거 캠프는 당시 내색은 안 했지만 거의 뒤집혔다”고 술회했다.

    “첫 TV토론 후 뒤집혔다”

    한 부소장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자문위원’ 역할을 했으며 이 후보 캠프 대운하팀의 일원으로 운하 관련 내부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 당시 그가 직접 보고 들었다는 대운하 관련 이명박 후보 측 내부 동향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 측은 운하를 잘 몰랐다” “대운하 공약은 오류였다” “이 후보 측도 허구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대운하 논쟁은 지난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이어 본선에서도 최대 쟁점이었고 국민의 후보 선택 기준 중 하나였다. 이 논쟁은 현재도 경인운하, 4대강 정비 등 초대형 프로젝트의 실행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 부소장의 주장은 2007년 대선 및 대운하 논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그의 말이 대부분 사실이라면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데 참고할 만한 증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공식 발표나 기존 언론보도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한반도대운하 ‘야사(野史)’로 평가될 수는 있을 것이다.



    ‘신동아’ 취재결과 한 부소장이 이 후보에게 직접 운하 브리핑을 하고 대선 캠프 운하팀에서 활동한 점은 사실로 확인됐다. 당시 이 후보 측 인사는 한 부소장에 대해 “캠프 내에서 운하에 대한 전문식견을 꽤 인정받았다”고 높게 평가했다. 한 부소장의 주장은 그의 주관적 시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은 접근하지 못하는 이 후보 측 내부 동향을 자신의 경험과 구체적 정황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고 대운하 문제는 공익적 가치와 알 권리가 큰 사안이므로 보도에 무리가 없다고 ‘신동아’는 판단했다. 한 부소장의 주장에 대한 반론과 추가적 논쟁의 장은 계속 열려 있을 것이다.

    한 부소장과의 만남은 그가 먼저 연락해와 이뤄졌다. ‘신동아’ 3월호 ‘경인운하, 서울- 중국 뱃길 못 연다’ 기사를 읽은 뒤 “이명박 정부가 올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경인운하와 4대강 정비의 위험성을 경고해야겠다”는 취지에서 인터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 2007년 대선 이전부터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었나요.

    “그렇죠. 볼일이 있으면 한국을 오갔죠.”

    ▼ 빈 동아시아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오스트리아 연방정부 등록 연구소인데, 빈 국립대 한국학과 학과장인 라이너 돌멜스 교수가 연구소 소장으로 있어요. 이 대학 한국학과 재학생들과 프로젝트 연구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운하사업에 관여하게 된 계기는 뭡니까.

    “연구소 특성상 한국 이슈에 관심을 갖는 편이었죠. 연구소장이 지리학과 출신이라 당시 한국 대선에서 크게 이슈가 된 대운하 문제에도 흥미를 느끼고 있었어요. 2007년 초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의 측근인 권철현 현 주일대사(당시 한나라당 의원)가 내게 여러 번 전화를 해왔어요. 권 대사와는 그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권철현 요청으로 유럽자료 수집

    ▼ 권 대사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특보단장 등 중책을 맡았었는데요. 뭐라고 하던가요.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MB(이명박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가 운하 하는데, 자료 좀 조사해달라고 했어요.”

    ▼ 왜 그런 일을 한 부소장에게 요청한 거죠.

    “운하가 가장 발달한 곳이 유럽이고, 내가 유럽에 있으니까…. 자기들보다는 자료 구하기가 용이할 것으로 보고 도움을 구한 거겠죠.”

    한 부소장은 라인-도나우 운하,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관련 자료를 수집-분석한 뒤 권 의원에게 첫 번째 보고서를 발송했다고 한다. 보고서는 “이명박 후보 측은 ‘경부운하’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사용해왔다. 해외 사례에 따르면 경부운하는 운하 명칭으로는 부적절하니 사용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한 부소장은 경부운하라는 명칭을 써온 것부터 전문성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2007년 5월29일 광주에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간 첫 TV토론이 열린 직후 권철현 대사는 한 부소장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왔다. 권 대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고 한다.

    ‘MB의 대운하 자문위원’ 한병훈 직격탄

    2007년 9월18일 환경운동연합 등 18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경부운하저지국민행동’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경부운하공약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이번엔 권 대사가 무엇을 자문하던가요.

    “TV토론에서 한나라당 경선주자 간에 오간 얘기를 설명하더군요. 홍준표 의원이 ‘독일 운하에서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났다’면서 ‘금년에 해상사고가 355건있었다. 해상 오염사고도 26건 있었다. 만약 낙동강 운하에 배가 다니다가 안개 로 말미암아 충돌해 침몰하면 부산 대구 시민은 두 달간 생수 먹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내게 전해줬어요.”

    ▼ 홍준표 의원의 TV토론 발언에 대해 당시 이명박 캠프 내부에선 어떤 반응이었는지 권 대사가 말해주던가요.

    “권 대사의 목소리가 심각했어요. 이 후보는 이날 TV토론에서 홍 의원의 질문에 대해 ‘2015년 한강수계 오염을 막기 위해 10조원 가까운 돈이 투입된다. 2015년까지 20조원 가까운 돈을 낙동강, 한강에 투입한다. 20조원 가까운 그 돈을 가지고 운하를 만들면 수질 개선의 근본적 대책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홍 의원의 ‘운하 침몰사고’ 질문과는 상관없는 답변이었죠. 권 대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후보와 이 후보 캠프는 당시 내색은 안 했지만 깜짝 놀랐대요.”

    ▼ 왜 놀란 거죠?

    “독일 운하에서 침몰사고가 났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당한 거니까. 이후 이명박 캠프는 거의 뒤집혔고 패닉 상태였대요. ‘부산 대구 시민이 두 달 동안 생수 먹어야 한다’는 표현에 노심초사하게 된 거죠. 심지어 MB캠프에서는 운하 이슈 포기론까지 나왔어요.”

    “우리 내부에 혼란 왔다”

    ▼ 그쪽에서 그렇게까지 당황했었나요.

    “권 대사가 국제전화로 내게 말한 내용을 그대로 전하면, ‘우리 내부에서 운하 이슈를 계속 밀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부적으로 혼란이 왔는데 해결책이 있는가’ 였습니다.”

    ▼ 그래서 자문을 해줬나요.

    “네. 즉시 답변을 줬어요. 홍준표 의원 주장은 별거 아니라고 말해줬죠. ‘심각한 사고가 아니었다. 독일 쪽에 알아보니 사고 직후 바로 수습돼 운하는 정상 운영됐다. 수질 오염은 없었다. 운하에서 사고 나면 부산 대구 시민이 두 달 동안 생수 마시게 된다는 건 전혀 사실과 다르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했죠.”

    ▼ 권 대사의 반응은?

    “‘그러냐’며 반색하더라고요. 권 대사는 다 듣더니 ‘중요한 포인트다. 우리 쪽에 도움이 된다. 전화로 이럴 게 아니라, 방금 한 말을 문서로 정리해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얼른 하나 만들어 보내줬습니다.”

    첫 번째 한나라당 경선주자 TV토론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 전국에 생중계됐고 신문도 대서특필했다. 이 당시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대다수 언론은 △홍준표 의원의 대운하 공격이 상당히 매섭다, 대운하 논쟁이 완전히 불붙었다고 보도했다. 진보 성향 일부 언론은 △이명박 후보가 홍준표 의원의 대운하 공격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다른 언론은 △TV토론 후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 ‘대운하 공격에 대한 대처가 다소 안이했다’는 자기비판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후 이 후보 진영이 대운하 논쟁을 피하지 않고 적극 대처하는 모습을 전했다.

    롯데호텔서 MB에게 운하 브리핑

    이 대목에서 의문점은, 한나라당 경선 주자들은 왜 이명박 후보 진영을 계속 몰아붙일 수 있는 큰 호재인 ‘독일운하 선박 침몰’ 이슈를 첫 TV토론 이후엔 전혀 거론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당시 언론에는 그 이유를 밝혀주는 보도가 없었다. 한 부소장은 자신이 이명박 후보 진영에 보낸 보고서 내용이 한나라당 내부에도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그의 보고서가 전한 ‘독일운하 선박 침몰’의 진상이다. 운하에 빠진 건 배가 아니라 컨테이너였다.

    “2007년 3월25일 중부독일 쾰른에서 발생. 2630t 컨테이너 운반선. 선장 64세. 컨테이너 몇 개가 물에 빠짐. 이를 건지는 데 5~6일 걸림. 사고지점 주변 봉쇄. 독일운하협회 대변인 Rusche, ‘이런 사고는 전체 유럽 노선에서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라인강에 배가 침몰해 두 달간 라인강에서 배 운항이 중지되었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름. 운하에 배가 침몰하면 경상도 주민이 두 달간 생수를 마셔야 한다는 가정은 억지임.”

    한병훈 부소장에 따르면 그의 보고서는 운하 사고 및 오염 문제에 대한 유럽 현지의 정확한 정보를 이 후보 진영에 제공함으로써 이 후보 진영이 수세→전열 정비→적극 방어로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한 부소장은 자신의 조언이 당시 위기에 처했던 이 후보 본인에게도 강한 인상을 주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이 후보가 자신에게 ‘한국에 와달라’고 요청해 만난 사실을 제시했다.

    ▼ 보고서에 대해 반응이 있었나요?

    “며칠 후 권 대사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는 ‘MB가 한 부소장의 보고서를 직접 보셨다. 내용이 참 좋다고 평가하시더라. 한 부소장을 불러 직접 들어보고 싶어 하신다’고 했어요.”

    ‘MB의 대운하 자문위원’ 한병훈 직격탄

    한반도 대운하 조령터널 조감도. 터널폭이 상당히 좁게 되어 있다.

    ▼ 그래서 한국으로 갔나요?

    “네. 전화받고 바로 갔죠. 권철현 의원실 관계자 등 이 후보 캠프 인사들을 먼저 만나 이 후보에게 브리핑할 보고서를 작성했어요. 내가 구술하면 그쪽에서 자기들 내부 문서양식에 맞게 정리하는 방식으로요. 그래서 나온 게 ‘한반도 운하 대응방안 및 향후 전략’이라는 대외비 보고서입니다.”

    ▼ 그 보고서를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에게 보고했습니까?

    “한나라당 경선주자들의 2차 TV토론회가 열리기 전 오전 10시경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 후보께 보고드렸죠. 이 후보의 핵심 측근이자 대운하 공약 책임자인 권철현 박승환 윤건영 의원,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 장석효 전 서울시 부시장이 배석했습니다. 1시간 정도 브리핑했는데 이 후보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셨죠.”

    ▼ 그렇다면 이 보고서의 성격은….

    “MB캠프 관계자들이 작성해 MB에게 직접 보고한 내부문서죠. 동시에 대운하와 관련해 내가 수집한 정보와 분석결과가 담긴 문서이기도 하고요.”

    ‘한반도대운하 대응방안 및 향후 전략’ 보고서는 표지에서부터 “한반도대운하 공약은 이슈는 선점했지만, 방어논리의 부족과 연속적인 이슈 부족으로 인해 지지율을 하락시키는 계륵(鷄肋)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이 보고서의 가장 큰 특징은 “한반도대운하로 서울-부산 간 대규모 물류를 수송해 엄청나게 큰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겠다”는 이 후보 진영의 ‘물류 중심’ 대운하 공약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대운하 기능의 핵심은 수자원 확보-관리여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제안했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

    “대운하 중심개념은 물류가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고 민족의 생존이 달려 있는 석유보다 더 중요한 수자원 확보라는 어젠다에 두어야 함”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자원 확보 개발이라는 점에 초점”

    “대운하의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점-수자원 관리 및 가뭄과 홍수 관리”

    “댐 갑문 보를 만들면 수질이 악화된다는 주장은 현대 환경공학에 대한 근본적 무지”

    한 부소장은 유럽의 여러 사례를 이 후보에게 보고하면서 “운하에서 물류 기능은 별로 없다. 20%다. 중요하지 않다”고 재차 강조했다. ‘물류 기능 20%’는 1차 TV토론 이전에도 이 후보 진영에 전달된 것으로 그는 기억하고 있다. 이 후보는 그에게 “그렇다면 유럽은 왜 운하를 만들어 운영하는가”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이에 한 부소장은 “처음엔 유럽도 물류 목적으로 운하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21세기 들어 유럽은 다시 ‘운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운하는 수자원 확보에 좋다. 수질도 좋아지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 비중이 가장 높다. 그 다음은 친수공간으로서 레저, 관광 등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고 답했다.

    안국포럼- GSI, 운하로 갈등

    이 후보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운하에서 물류 기능은 20%이며 수자원 확보, 레저 기능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엄청난 공격에 직면했다. 이 후보 진영은 오랫동안 ‘대운하의 서울- 부산 물류 혁명’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왔었다. 그러다 “운하의 물류 기능이 20%”라고 하니 상대편은 “말 바꾸기”라고 집중 포화를 퍼부은 것이다. 이후 이 후보 진영은 이 관점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 부소장은 이 후보 면전에서 브리핑하면서 ‘한반도대운하’를 ‘계륵’으로 격하한 바 있다. 쓸모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는 당시 이 후보 진영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후보 진영은 처음부터 대운하의 콘셉트를 ‘물류’로 잘못 잡았어요. 태생적 오류죠. 그리고 수개월을 ‘물류’ 중심으로 홍보했습니다. 그러다 경선 돌입 무렵 내가 나타나 ‘물류는 아니다. 수자원 확보’라고 올바른 방향을 이 후보에게 제시해준 겁니다. 그러나 이 후보 진영은 이미 ‘물류’ 쪽으로 너무 ‘나가버린’ 상황이었어요. ‘수자원 확보’로 방향을 틀기 어려웠습니다.‘말 바꾸기’라는 상대편 공격과 비판 여론을 감당해낼 수 없었던 거죠.”

    ▼ 이 후보에게 운하 브리핑을 한 후 유럽으로 돌아갔나요?

    “아뇨. 이 후보께서 캠프에서 계속 일하게 했어요. 대운하를 담당해온 김영우 국장(현 한나라당 의원)이 내게 ‘이 후보 지시로 신문로 GSI(국제전략연구원)에 데스크 하나 받아놨다. 거기서 일해달라’고 했습니다. 류우익 전 대통령실 실장이 운영하던 MB 싱크탱크 연구소 말이죠. ‘한반도대운하연구회 해외자문위원’이라는 직함도 받았습니다.”

    ▼ 자문위원으로서 어느 정도 관여했습니까?

    “캠프에서 저를 신뢰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계속 국내에 머물며 대운하 공약을 도왔어요. 한반도대운하추진단(단장 박승환 당시 의원, 부단장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구성된 뒤엔 여의도 용산빌딩에서 대운하 관련 핵심 참모 회의에도 여러 번 참석했고요.”

    ▼ 회의에선 어떤 점이 다뤄졌나요?

    “10여 명이 돌아가면서 얘기하는데, 내용이 중구난방이었습니다. 일반론적으로 자기 관심사만 말해요. 3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회의가 생산적이지 못했습니다. 홍보를 어떻게 하자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죠.”

    한 부소장에 따르면, 대선 당시 이 후보 진영에서 대운하 공약은 ‘권력의 척도’였다. 이 후보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핵심 공약이 대운하 공약이고 선거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는 쟁점인 만큼 캠프 내에서 누가 이 공약 업무에 이니셔티브를 쥐느냐는 중요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 후보의 양대 조직인 안국포럼과 GSI의 운하담당자들은 경쟁관계로 보였으며 서로 잘 소통하지 않았다는 게 한 부소장의 얘기였다.

    이런 모습은 집권 후에까지 이어져 안국포럼과 GSI 측이 청와대 요직을 차지한 후 GSI에서 운하를 다뤄온 청와대 고위인사와 안국포럼에서 운하를 맡았던 청와대 고위인사 간에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한 부소장의 얘기.

    “지난 대선 때 내가 오랫동안 이 후보 캠프와 접촉하고 또 그 캠프에 몸담고 있으면서 느꼈던 건 캠프에 계신 분들이 운하를 잘 모르더라는 점이었습니다. 유럽 운하를 벤치마킹해 우리나라에 운하를 만들겠다는 건데, 유럽 운하를 대충 알고 우리 현실에 적용하려는 것 같았어요. 그 때문에 ‘오류’인 한반도대운하 공약이 나온 것이고요.”

    “서울~부산 26시간은 거짓말”

    ▼ 왜 오류라고 보는 거죠?

    “이 후보 캠프는 대선 과정에서 ‘대운하의 서울- 부산 간 물류 수송에 26시간이 소요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캠프 내부 회의 때 내가 ‘절대로 26시간 만에 수송할 수 없다’고 했어요. 이 후보 캠프가 유럽 운하를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조사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공약은 발표하지 않았을 거예요. 유럽 운하는 시간표대로 움직입니다. 터미널에는 선박의 출발시간, 도착시간이 적혀 있어요. 화주들에게 중요한 건 약속된 시간에 정시에 도착하는 일입니다. 이게 안 되면 비즈니스를 할 수 없으니까.”

    ▼ 구체적인 비교사례가 있나요.

    “시간표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유럽 오스트리아 빈-헝가리 부다페스트 구간 280km 운하에 2000t급, 4000t급 선박이 운항하고 있어요. 갑문은 1개뿐이고요. 시간표에 기록되어 있는 운항시간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24시간입니다. 그것도 상류에서 하류로 물길을 따라 운항할 때 말이죠.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 때는 40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 잠깐만요. 당장 그걸 오스트리아 터미널에 가서 확인할 수도 없고….

    “빈▼ 부다페스트의 운항시간은 ‘오스트리아운하공사’의 자료(Calculating Travel Time)에도 나와 있습니다. (기자에게 자료를 보여줌) 그런데 서울-부산 구간은 무려 560km입니다. 고저(高低) 차이가 심해 갑문은 13, 14개나 되고요. 갑문에 물 채울 때까지 기다리므로 갑문이 많으면 시간이 훨씬 더 걸리죠. 운하에 띄우는 배의 속도는 비슷해요. 결론적으로, 24시간 걸리는 빈-부다페스트 구간보다 두 배나 길고 갑문은 12개 이상 많은데 서울-부산 구간을 어떻게 26시간에 주파하죠? 대선 당시 이 후보의 반대 진영은 ‘경부운하 운항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50시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낙동강의 구불구불한 정도까지 감안하면 70시간 정도 걸립니다.”

    대선 당시 ‘26시간’이라는 숫자는 ‘정치적 이유’에서 나왔다는 의심이 제기됐었다. 2007년 10월17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통합신당 홍재형 의원은 “부산-- 인천 간 연안운송시간인 28시간보다 빨라야 경제성이 생긴다는 이 후보 측의 조바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언을 막기 위해 의사진행발언을 요구하는 등 소란이 났었다. 한 부소장은 그런 의심이 사실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선 후 이 후보 진영은 언론에 공개된 공식보고서에서 “한반도대운하 서울-부산 운항시간은 27시간40분”이라고 적시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부산에서 인천까지 바다로 가도 도달하는 시간’인 ‘28시간’ 보다 조금 덜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운하 물릴 수 없었던 이유는…”

    한반도대운하의 물류 편익은 곽승준 현 대통령 산하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대선 당시 제시한 대운하의 편익/비용 비율(2.3) 계산에 근거하고 있다. 한 부소장은 “곽 위원장의 계산도 소설”이라고 비판했다. “곽 위원장은 대운하의 물류 편익을 4조9000억원으로 잡았습니다. 운항시간이 오래 걸리면 처리할 수 있는 물량도 적어지죠. ‘경부운하의 운항시간 26시간’이라는 대전제부터 크게 잘못됐으니 이 물류 편익은 실제로 나올 수 없는 수치인 거죠.”(한 부소장)

    ▼ 운하 시간표라든지, 이런 것을 대선 때 캠프에 있으면서 보고하지 않았나요.

    “했죠. 알고도 밀어붙인 겁니다. 보고도 억지를 부린 거죠. 조금 전에도 설명했지만, 이 후보 진영은 운하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안돼 있었어요. 국내에 운하에 정통한 관료나 전문가가 있었습니다만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상한 작명에다 홍준표 의원으로부터 공격받을 때처럼 사실을 알면 간단한 사안인데도 당황하고…. 이런 연구 부족 상태에서 운항시간이라든지 구체적 수치까지 공약으로 발표해버렸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었던 거예요. 대선 때 부산 대구 등 영남권 시민의 식수 오염 우려가 제기되자 이 후보 진영은 ‘강변 여과수’로 해결하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캠프에서 ‘강변 여과수는 취수량이 많지 않다. 유럽에서는 소도시의 식수원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수백만명의 식수 취수는 감당할 수 없다. 그건 대안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 대선 때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조령터널 문제도 상당한 논란이 됐었는데요.

    “내가 캠프에서 ‘조령터널, 협소한 이곳에서 배가 어떻게 속도를 낼수 있느냐 왜 자꾸 물류를 고집하는가’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대운하 공약의 중추역할을 맡고 있던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이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말했기에 뒤집을 수 없다. (대선이) 끝나고 난 뒤 바로잡자’고 했습니다.”

    ▼ 한 부소장이 대선 당시 이 후보 캠프에서 보고서와 구술로 그렇게 강조했다는 ‘대운하는 물류 중심이 아닌 수자원 확보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추진하는 ‘4대강 정비’ 사업과 동일한 것 같은데요.

    “끝나고 난 뒤 바로잡은 거죠.”

    김영우 한나라당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한병훈 부소장을 잘 안다. 그는 대선 당시 캠프에서 대운하 공약과 관련된 직책을 받아 일했다. 운하에 대한 식견이 뛰어나고 특히 유럽 운하에 대한 자료와 지식이 풍부해 캠프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한 부소장이 롯데호텔에서 당시 이 후보에게 대운하 브리핑을 했는지에 대해선 “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한 부소장은 4대강 정비와 관련, “자칫 우리나라의 ‘사막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4대강 정비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뭐죠?

    “4대강 정비와 동시에 추진하는 경인운하 사업을 보세요. 여기에도 1조원이 훨씬 넘는 돈을 들인다고 합니다만, 수맥(水脈)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은 주변 토지의 사막화를 부를 위험이 큽니다. 실제로 수십년 전 콘크리트 옹벽을 쌓아 건설된 유럽의 운하들은 주변 지역이 메말라가고 심지어 운하의 물조차 고갈돼가고 있어요. 낙동강 주변 토지의 물 부족 현상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 자연친화적 운하나 수로는 돈이 더 들죠? 편익/비용 계산도 다시 해봐야 하고?

    “그렇죠. 정부는 곧 경인운하, 4대강 정비 사업을 시작하겠다는데 그래선 안 됩니다. 1960년대 착공한 라인-도나우 운하의 경우도 지하수가 고갈되어 주변이 황폐화되는 현상이 벌어졌어요. 수맥 관리에 예산의 20%를 더 썼어요. 21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운하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을 도로 뜯어내고 있습니다.”

    ▼ 정부에서는 경인운하 건설에 대한 여론수렴은 충분히 거쳤다는 태도인데요.

    “운하가 활성화되어 있는 유럽에서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만들지 않아요. 반드시 위원회에서 충분히 토의를 거치게 하고 시민단체, 환경단체 요구를 최대한 수용합니다. 예산이 더 들더라도 말이죠. 지난 2월 경인운하 설명회에 환경단체는 입장도 못하게 했잖아요. 몸싸움까지 하면서요.”

    4대강 정비는 4대강 폭파?

    한 부소장은 엽서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오스트리아 녹색성장위원회가 2008년 11월27일부터 12월8일까지 도나우운하 공청회를 개최하니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엽서가 전 주민에게 배포된다고 한다. 그는 ‘자기 전공’인 4대강 정비 대목에선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야당과 환경단체는 “강바닥의 오염물질을 걷어내고 더 깊게 준설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뜨게 되어 수질이 더 나빠진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여권은 “최첨단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 부소장은 여권의 설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강바닥의 오염물질이 물에 뜨지 않도록 흡착하면서 준설하는 최첨단시설이 최근 대표적인 해법으로 제시됐죠. 그러나 그걸로 4대강 정비 못 할 겁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외국에선 소형 지천에서나 쓰이고 있어요. 강폭이 광활한 낙동강에다 그걸 들이대어 언제 다 끝내죠? 강바닥이 암석으로 된 부분도 꽤 있어요. 현 정권 임기 내 4대강 정비를 마무리하려면 아마 ‘폭파’ 방식이 가장 현실적일 겁니다. 방대한 면적의 강바닥을 파내고 정비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 같은 것으로 강을 폭파시키며 나아가는 거죠.”

    ▼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은? 생태계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니 그 문제는 어떻게 될지 모르죠. 4대강 정비라는 어마어마한 사업을 곧 시작하겠다면서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 정비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얘기를 하지 않잖아요.”

    ▼ 정부도 여러 각도에서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않을까요.

    “사람은 물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말라 있던 강이 풍부한 수량과 맑은 물이 흐르는 상태로 회복한다면 강을 중심으로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될 거예요. 4대강 정비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지구온난화의 시대, 국제사회에서 수자원 확보는 정말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어요. 물을 가둬두며 조금씩 흘리는 방식은 수량을 늘리고 수질도 향상시킬 수 있어요. 정부가 이 사업을 국정 어젠다로 잡은 것은 잘한 일입니다. 필요하면 강의 수심도 더 깊게 해야겠죠. 요트 같은 레저, 관광용 선박은 허용해도 될 겁니다. 내가 주장하는 건 이 사업의 목적을 ‘수자원 확보’로 분명히 하라는 겁니다. 자연친화적으로 추진하고 어떤 방식으로 정비할 것인지 공개하라는 거죠.”

    MB, 콜럼버스 된다?

    한 부소장은 대운하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란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콜럼버스에 비교했다.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빠른 항로를 찾으려다 뜻하지 않게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라는 업적을 이뤘습니다. 이 대통령은 애초엔 운하의 ‘물류 기능’에 매료돼 대운하를 밀어붙이다 뒤늦게 ‘4대강 수자원 확보’라는 시대적 가치를 발견한 거예요. 4대강 정비를 자연친화적으로 성공리에 성사시킨다면 이 대통령은 대단한 일을 해낸 지도자로 높이 평가받을 겁니다.”

    한편 여권 일각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독일 유학 시절 공안사건에 관련된 일을 문제 삼아 한 부소장을 발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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