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외

  • 담당·이혜민 기자

    입력2009-05-09 12: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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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_ 홍지웅 지음, 열린책들, 848쪽, 1만9500원

    끝까지 망설였다. 편집과 디자인이 다 끝난 뒤에도, 인쇄가 돌아가고 제본이 되는 그 순간까지도, 과연 이 책을 내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망설일 이유는 너무 많았다.

    이 책은 2004년 한 해 동안 내가 만나고 짓고 다니고 쓰고 찍은 기록, 즉 ‘일기’다. 이런 기록이 나말고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딱히 어떤 사회적 요청도 명분도 없었다. 게다가 공적인 일에서 사적인 일까지 내 일상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한몫했다.

    이 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앤디 워홀의 ‘일기’였다. ‘일기’는 당대 유명 예술인들과의 교유록이면서 지출한 밥값, 교통비 등 일상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담아 하루하루의 완벽한 재현에 도전한 책이다. 2003년 나는 아들 딸에게 그 책을 함께 번역해 출간하자는 약속을 했는데, 내가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바람에 약속도 깨지고 아빠 체면도 깨졌다. 그래서 대신 나 스스로 그런 일기를 쓰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한 해 꼬박 일기를 썼다.



    공적인 기여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면 결국 책으로 내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의 기록이지만, 어느 면에서는 우리 모두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어느 시기 한 출판인의 일상을 통해서 출판계 전체의 일상이 복원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개인적인 기록이 큰 역사의 디테일을 채우는 작은 부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다. 출판협회에서 매년 출판연감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거기에 이런 사소해 보이면서도 중요한 내용은 담아내지 못하기에, 사실상 우리 사회는 출판의 온전한 진실을 기록해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앤디 워홀을 본받자는 생각도 있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지나칠 정도로 소상한 내용들을 밝혀 적게 되었다. 책의 기획 내용, 책의 생산 원가에서부터 영업 방식과 비용, 출판사의 매출 규모, 저자나 번역가, 지인들과 만나 나눈 대화 내용과 점심 밥값, 마침 그해는 내가 한국출판인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라 단체의 건물 건축, 출판 교육기관의 설립에 따르는 세부사항까지…. 그러다 보니 공개되면 내가 다소 불편해질지도 모를 기록도 꽤 포함됐다. 특히 영업부에서는 이런 ‘기밀’을 노출하면 안 될 것 같다며 나보다 더 망설이는 눈치였다.

    내고 보니 소득이 없지 않다. 일기는 그날그날의 일을 기록하는 것이지만, 다시 말해 있었던 사건을 자신에게 ‘보도’하는 것이지만, 기록하지 않았다면 휘발되고 말았을 미묘한 순간, 명멸하는 생각들을 어느 정도 포착해놓을 수 있다. 그것을 통해 당시의 흐름을 섬세하게 재구축할 수 있게 된다. 책이 되어 나온 일기를 다시 읽으며 느낀다. 2004년이라는 시간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게 됐다고.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

    행복해지는 가장 간단한 방법 _ 헬렌 켈러 지음, 안기순 옮김

    ‘나는 위대하고 고귀한 일을 이루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위대하고 고귀한 일처럼 이루어내는 것이 나의 중요한 역할이자 기쁨이다. 어떻게 해야 내가 매일매일 할 일을 가장 잘 이루어낼 수 있을지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것이 나의 본분이다.’ 헬렌 켈러에게는 이 같은 낙관주의 신앙이 있었다. 남이 보기에 힘겨운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녀의 낙관적 세계관은 도리어 나날이 강화됐다. 독서하고 생각하며 문학, 철학, 역사에서 그 신념을 뒷받침해줄 만한 증거를 찾았기 때문이다. 책의 말미에는 행복해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여럿 제시돼 있다. 또한 행복의 의미도 담겨 있다. ‘행복은 마법 같은 요행이 아니다. 삶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늘 가까이에 행복이 있다.’ 공존/ 304쪽/ 1만3500원

    하버드 의대가 당신의 식탁을 책임진다 _ 월터 C. 윌렛 지음, 손수미 옮김

    ‘건강한 식생활은 우리를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저는 20여 년 동안 연구해온 건강식의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 알리고자 합니다. 이 책은 미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보건대학원 영양학과 학과장이자 의과대학 의학과 교수인 월터 윌렛은 ‘먹을거리와 질병의 연관성’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바람직한 식생활을 알리는 저자의 강점은 이런 데 있다. ‘우유는 많이 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하루 3잔 이상 마시지 말아야 할 이유가 6가지가 된다.’ ‘콩을 너무 많이 먹을 경우 치매 및 기억력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 항에스트로겐 물질이 과다하게 생기기 때문이다.’ ‘감자는 완전식품이 아니다. 감자는 매일 먹어야 하는 채소가 아니라 가끔 적당한 양을 먹어야 하는 식품이다.’ 동아일보사/ 363쪽/ 1만3000원

    바보 별님 _ 정채봉 지음

    이 책은 1993년 5월부터 8월까지 ‘저 산 너머’라는 제목으로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된 글을 엮은 것으로,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에 따라 선종 이후에 발간됐다. 동화작가 정채봉은 ‘이분이 걸어오신 길을 따르다 보면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용기의 씨앗, 희망의 씨앗을 뿌려줄 수 있을까’ 싶어 김 추기경의 추억을 글로 옮겼다. 이 책은 병인박해 때 순교한 추기경의 할아버지 때부터 추기경이 군위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이야기, 성 유스티노 신학교 시절부터 구술하는 시점인 1993년까지 이야기로 나눠져 있다. 추기경은 “하늘 아래에서 숨어보려고 한 내가 바보”라고 했다. ‘하늘 아래인데 어디로 숨겠다는 말이냐. 모래알 하나 밑, 검불 하나 뒤까지도 모두 알고 있는 하늘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게도 병원 홑이불 밑으로 숨고자 하였다’고 고백한다. 솔/ 190쪽/ 9500원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외
    ▼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버블붕괴와 장기침체 _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Human·Books, 304쪽, 1만3000원

    코스피 지수 1300 돌파, 원 달러 환율 1300원대로 하락, 강남 재건축 등 일부 지역 집값 반등, 3월 무역수지 46억달러 흑자…. 최근 발표되는 각종 경제 지표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 경제의 위기는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인식은 일부 언론의 ‘바닥을 쳤다’는 성급한 보도들과 맞물려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버블붕괴와 장기침체’는 그 같은 인식이 잘못된 판단이며, 궁극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다.

    경제의 큰 흐름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세계 경제의 위기는 대공황 이후 초유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길게 보면 1970년대 변동환율제에 기초한 달러기축통화제의 모순과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금융경제화에 따른 온갖 문제점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생겨난 경제위기라고 할 수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소득 양극화 등 IMF 외환위기 이후 누적된 문제점들이 부동산 버블 붕괴로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양상이다.

    우리 연구소 경제시평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인 ‘버블붕괴와 장기침체’는 국내외 거시경제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통해 왜 섣부른 낙관론이 상황을 오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외화수급의 구조적 문제점을 통해 한국 경제가 왜 지난해 9월 이후 지속적인 환율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이 같은 원 달러 환율 폭등으로 제조업체의 재료비가 상승하고 이에 따른 생산 중단으로 지난해 말부터 급속한 경기 하강이 이어질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이 같은 경고는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5.6%에 이르고 올 초부터 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제조업 가동률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현실화했다. 그리고 현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이념론과 자신들의 지지 세력을 위한 부동산 떠받치기에 올인한 결과 한국 경제가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 연구소는 이미 프레디맥과 페니메이의 사실상 파산과 국유화, 모노라인 기관의 연쇄 파산, 투자은행에 이은 상업은행의 부실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가능성 등 세계 경제위기의 큰 흐름을 국내 어떤 기관보다 앞서 정확히 감지하고 경고해왔다. 이처럼 정확한 분석과 경고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에서는 미국 정부의 종합구제금융대책과 자본투입 효과, 양적 통화확대 정책 등의 실효성을 분석했다. 그 같은 분석의 결과 세계가 조기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가계 부채와 단기 외화 차입을 통해 막대한 부동산 버블을 쌓아올린 한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오히려 무리한 부동산 올인 정책과 수출대기업 위주의 환율 정책 등이 한국 경제를 장기침체의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음을 경고한다.

    김광수│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

    김정일, 공포를 쏘아 올리다 _ 황일도 지음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정교하게 해부한 책이 나왔다. ‘신동아’에서 7년간 군사안보 기사를 담당하며 자료수집과 수많은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해온 필자는 이 책의 목적이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이들 무기체계의 위협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와 함께 이러한 무기체계가 실제로 한반도 전쟁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북한의 군사교리를 분석하며, 북한 대량살상무기가 서울의 민간피해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배치, 운용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른바 ‘공포효과 극대화’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북한 무기체계의 최대피해 예상치를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그에 대응하는 대화력전과 미사일요격체계, 핵우산 등 한미연합군의 ‘방패’도 해부하고 있다. 플래닛미디어/ 258쪽/ 1만5000원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 _ 가노 마사나오 지음, 이애숙 하종문 옮김

    와세다대학 명예교수로,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사학자인 저자는 사상가를 가리켜 ‘꿈을 좇는 사람’이라 말한다. ‘질서와의 갈등을 감수하고, 그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이들의 활동이 의미 있는 것은 그러한 ‘창조적 노력’이 사회의 저변을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근대의 선구자들’에서는 어려운 시기를 진단하며 바람직한 미래상을 꿈꿔온 선구자들이 등장한다. ‘국민 형성을 목표로’에서는 근대 일본의 완성을 이끄는 국가 구상안이 담겨 있다. ‘아시아와 세계 속의 일본’에서는 무력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본의 위상을 주창한 사상가들의 고민을, ‘체제의 변혁에 뜻을 둔 사람들’에서는 혁명을 기도했던 사람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국가의 본성을 들춰볼 수 있다. 삼천리/ 415쪽/ 1만8000원

    천추태후 역사 그대로 _ 김창현 지음

    고려를 고려답게 만든 천추태후. 그녀는 ‘태조 왕건의 손녀로서 연인을 되찾기 위해, 고려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권력을 잡아야 했다. 마침내 섭정을 하게 되면서, 연인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고구려 계승의식을 회복했고 성종 때 흔들린 황제국 체제를 바로 세웠다.’ 역사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그녀는 선덕여왕처럼 정치를 했고, 진성여왕처럼 사랑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조카 현종에게 쫓겨났을 뿐 아니라 나쁜 여자로 역사에 각인됐다. 근래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다시금 조명받고 있지만, 이렇듯 과장된 해석은 무관심만 못하다. ‘천추태후 관련 자료가 많이 왜곡돼 있어 반드시 재해석은 필요하지만 기록과 유물에 근거한 해석이어야 하기 때문’에 저자는 역사 그대로의 그녀를 만나보고자 사료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푸른역사/ 336쪽/ 1만5000원

    ▼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외
    프라이버시의 철학 _ 이진우 지음, 돌베개, 282쪽, 1만2000원

    내가 머물고 있는 독일 베를린의 중심 빌헬름 기념교회 옆에는 대형서점 ‘후겐두벨’이 있다. 서점 안 카페의 커피 맛이 일품일 뿐만 아니라 값도 싸서 커피 한잔에 이런저런 책을 뒤적거리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어느 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좋지 않은 냄새가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남루한 노숙자가 앉아 서점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노숙자의 출현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노숙자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유독 나만이 왜 그 사람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한 동료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런 경험을 전해주면서 내게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을까요?”“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공동체에 기여할까요? 아니면,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까요?” 바로 이 질문이 내가 ‘프라이버시의 철학’을 쓸 때 고민한 문제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가 개인에게 자유와 복지를 보장해주는 민주사회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를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민주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양의 길과 동양의 길이 다르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서양이 개인으로부터 출발해 공동체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면, 우리 동양은 공동체로부터 출발해 개인의 가치와 의미를 인식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프라이버시라는 낱말은 우리에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외래어로 남아 있으며, 개인과 개인주의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인권이란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개인과 프라이버시를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가 여전히 공동체 지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없다면, 즉 개인의 삶이 이루어지는 프라이버시가 없다면 자유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명제다.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외래어처럼 우리 삶에서 겉돌고 있는 ‘개인주의’‘프라이버시’를 긍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삶의 민주화를 실현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프라이버시의 개념, 역사, 구조 그리고 정치적 윤리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를 조화시킬 수 있는 우리의 길을 찾고자 한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 우리는 이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프라이버시의 철학’의 대답은 간단하다. “다른 사람의 개인적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개인과 프라이버시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 사적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과 함께 자유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진우│계명대 철학과 교수│

    기억을 찾아서 _ 에릭 캔델 지음, 전대호 옮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강조하는 것은, 독창적인 문제에 대한 과감하고 창의적인 도전이 획기적인 발견을 낳는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개인의 유년기와 교육 경험이 과학에 대한 접근법과 기나긴 인생행로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이 책은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컬럼비아대 교수 에릭 캔델의 자서전이다. 그는 카블리 뇌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정신분석에 의존하는 정신의학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인간 정신의 생물학적 본성을 이해하기로 했다. 이 책에는 지난 50년 동안 정신 연구에서 일어난 과학적 성취와 그 50년을 함께한 저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기억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개인적인 여정이 가장 위대한 과학적 노력들 중 하나와 어떻게 교차했는가에 대한 서술”이다. 랜덤하우스/ 560쪽/ 2만5000원

    중년예찬 _ 한근태 지음

    ‘세월이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따지던 사람도 분노 대신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뿌린 대로 거두지만 때로는 세상사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던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해되는 것을 보며 인생지사 새옹지마를 느낀다.’ 중년예찬론자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저자가 중년을 위한 책을 냈다. 중년이란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처럼 마무리하는 시간인데, 우아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해서다. ‘부부 간 대화는 젊어서부터 해야 한다. 얘기는 자꾸 해야 할 얘기가 생기고 그러면서 대화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너그러워진다.’ ‘그동안 처자식 건사하면서 잘 살았으니 지금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아라. 그동안 못 가본 봄꽃놀이, 단풍놀이도 가고….’ 미래의창/ 224쪽/ 1만원

    창조자들 _ 폴 존슨 지음, 이창신 옮김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으며, 실제로 대부분이 창조 행위를 한다. 우리는 아무리 하찮고 초라한 것이라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순간에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누구나 자신의 삶과 일에 창조적 요소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창조를 행복의 근원이라 여긴 저자가 창조자의 면모를 정리한 이유는 간단하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앞선 사람의 성취를 기반으로 삼기’ 때문에 그 기반에 관한 정리가 필요해서다. 누구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뒤러, 셰익스피어, 바흐, 제인 오스틴, 비올레르뒤크, 빅토르 위고, 마크 트웨인, 티퍼니, T.S. 엘리엇, 발렌시아가, 디오르 등을 보며 창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거릿 대처의 고문 겸 연설문 작성자를 지낸 저자는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황금가지/ 496쪽/ 1만9000원

    ▼ 저자가 말하는‘내 책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외
    소설 토정비결 1, 2, 3, 4 _ 이재운 지음, 해냄, 470쪽, 각권 1만3000원

    ‘소설 토정비결’을 쓴 지 어느덧 18년이 지났다. 하도 긴장하며 쓴 소설이라 원고 말미에 ‘끝’이라고 적으며 시원해하던 게 엊그제인 양 기억이 생생한데, 그러고도 오랜 세월 거듭 되새김질을 하다 보니 글도 세월에 휘어지는지 그새 다듬고 고쳐 1부에서 2부까지 늘어났다.

    처음 이 소설을 기획할 때는 토정 이지함이 누군지, 그가 쓴 토정비결이 무슨 책인지 잘 알지도 못했다. 무식이 용기라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 보니 어렴풋하게 그려지는 게 있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열심히 쓰고, 겁 없이 세상에 내놓았다. 1991년에 1부를 펴내고, 훨씬 더 지난 2000년에 ‘당취’란 제목으로 경향신문 연재를 끝내고 2부까지 펴냈으니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소설이 그저 재미있고 약간의 감동을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길고 긴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심스럽고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미라 두고두고 되씹고 또 생각해보고, 뒤적거리다 보니 오늘에는 엉뚱한 결과물까지 덤으로 얻었다. 칭기즈 칸이나 여불위, 삼국지 같은 대하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도 결코 놓지 않은 의심이 있었으니, ‘소설 토정비결’을 쓰면서 품었던 ‘운명’이라는 게 혹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의심을 풀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비교 분석한 결과 약 5년 만에 그런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 종지부를 찍고, 이 의심의 끝에서 성격이 형성되는 원리를 발견, 바이오코드라는 성격분석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그간 내가 다뤄온 소설 속 인물들이 제대로 그려져 있는지 궁금했다. 옛 문헌과 자료 등을 종으로 횡으로 살펴 인물 성격을 들여다보니 잘못된 것이 하나둘 드러났다. 물론 내 소설에서만 잘못 그려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실존 인물 묘사를 자의적으로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그림을 그리면서 주인공을 화가 자신의 얼굴과 비슷하게 그려내는 일이 많은 것처럼, 작가들도 주인공의 성격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많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왜 태평양전쟁으로 한창 공출이 심할 때 누군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을 보고, 같은 시기에 누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했을까. 이와 같은 의심이 다다른 마지막은 그들의 성격이 다르며, 이 성격이란 방어기제의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이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성격이 운명을 이끈다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띄었다.

    이후 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성격 묘사부터 바로잡기 시작했다. ‘소설 토정비결’도 그런 관점에서 더 다듬었다.

    20여 년 전 그 시절, 젊음만 믿고 큰 고민 없이 다가간 작품이지만 ‘소설 토정비결’이 도리어 내게 큰 화두를 안겨준 셈이다. 인생의 어느 하루, 어느 한 시각인들 귀하지 않으랴만 이 작품에 몰두한 1990~91년은 내겐 매우 특별한 시절이었다.

    이재운│소설가·한국지식문화재단 이사장│

    심리 게임 _ 에릭 번 지음, 조혜정 옮김

    1964년 출간된 이후 500만부 넘게 팔리며 심리학의 열풍을 불러온 이 책에는 많은 게임이 정리돼 있다.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는 유혹 게임부터 사회 조직에서 벌어지는 권력 게임까지 다채롭다. 저자는 ‘당신 때문이야’ 게임, ‘완벽한 주부’ 게임, ‘난 죽도록 노력했어요’ 게임, ‘닭살 커플’ 게임, ‘저는 그저 도와드리려는 것뿐입니다’ 게임, ‘순박한 시골 여자’ 게임, ‘궁핍이 좋아’ 게임, ‘흠집 찾기’ 게임 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계(게임)의 의미를 풀어낸다. 에릭 번은 교류분석이론을 세운 정신의학자로 인간의 사회적 교류에 관심이 많았다. ‘가장 큰 만족을 주는 사회적 접촉 형태는 게임과 친밀함이다. 중요한 사회적 교제에서 가장 흔한 형태는 게임이며, 우리가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도 바로 게임이다.’ 교양인/ 284쪽/ 1만3000원

    상생의 경제학 _ 김선빈 외 지음

    ‘상생의 시장경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저자들은 “경제제도가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양립되어야 경제 주체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모방과 이식으로 인해 발생한 제도 간 부조화를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제도부터 복지제도까지 경제제도 전반을 다루면서 경제 시스템 전환을 모색한 것도 그래서다. 이 책의 특징은 상생의 시장경제 실현을 위한 18대 핵심과제(‘중소기업 대상 관계형 금융을 제공할 지역금융 육성’ ‘합리적 워크아웃을 활성화해 신속하고 원활한 사업 전환 도모’ ‘의무공개매수 확대 등 경영권 보호 강화로 대기업의 장기 투자 유도’ ‘직능급제와 통합형 인사제도를 도입해 근로자의 숙련 향상 도모’ 등)를 정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데 있다. 필자 대부분은 삼성경제연구소 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이다. 삼성경제연구소/ 709쪽/ 2만8000원

    팔레스타인 현대사 _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느 하나의 해석이 역사적 진실이라면 다른 것은 거짓이 되는 상황이다. 저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삭제되고 망각된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역사를 구해내야 한다는 시각’에서 현대사를 썼다. 1948년을 지나면서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이 상위 정치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초점을 둔 글을 읽다 보면 ‘현대사에 관한 새로운 설명이 가능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필자인 일란 파페는 유대인임에도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의 공식 역사에 도전하는 대표적인 학자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행동하는 지성’으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망각되고 주변으로 밀려난 팔레스타인 공동체 출신 역사가들의 선구적인 작업을 통해 팔레스타인 역사의 그림을 다시 그리는 현재의 기획을 시도할 수 있었다.’ 후마니타스/ 524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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